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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7.08 21:23 수정 : 2012.01.25 12:01

소설가 김중혁의 추천서
20가지 낭만루트 ‘세계…’
철도 마니아의 ‘홋카이도…’
일본 경로 담은 ‘드로잉…’

기차와 인연이 깊다. 어린 시절부터 기차역 근처에 살아서 그런지 기차만 보면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자꾸 어디론가 떠나고 싶던 고등학생 때는, 친구와 함께 기차에 무임승차해 고향 김천에서 부산까지 다녀온 적도 있다. 그 시절 기차역은 경비가 허술해서 기차에 쉽게 올라탈 수 있었다. 친구와 함께 부산역에 도착했지만 역 계단에 쪼그려 앉아 소주 한 병을 나눠 먹은 다음 다시 무임승차로 돌아왔다. 도대체 왜 간 건가, 싶지만 그때는 기차를 타고 부산에 다녀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세계여행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친구와 나는 비둘기호 의자에 다리를 걸치고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끔 창밖을 내다보면 강과 산과 들이 아무 말 없이 우리를 환영했다. 기차는 느려서 풍경은 천천히 흘러갔고, 우리는 급할 게 없었다. 학교는 땡땡이쳤고, 기차에는 사람이 없었고, 부산은 멀었다. 기차로 지나가는 풍경을 볼 때면 그 시절이 떠오른다. 요즘도 기차를 타기 전이면 마음이 설렌다.


세계기차여행 윤창호 외
기차를 좋아했던 가장 큰 이유는 좌석의 배치 때문이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탈것들은 앞을 향하도록 좌석이 고정되어 있다. 하지만 기차는 그렇지 않다. 예전의 비둘기호는 ‘무조건’ 마주보는 자리였다. 설계한 사람은 왜 이런 구조를 선택한 것일까. 기술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기차란 단순히 이동하는 수단이 아니라 함께 이야기하고 즐기며 이동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버스나 비행기나 자동차와는 달리 기차의 속도와 풍경에는 드라마가 내장돼 있다.


홋카이도 보통 열차 오지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의 유명한 첫 장면, “국경의 긴 터널을 지나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까지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췄다”를 읽었을 때는 그저 좋은 문장으로만 생각했지 그 풍경을 실감하지 못했는데, 몇 년 전 노르웨이의 뮈르달로 가는 기차 속에서 <설국>을 느꼈다. 해발 2m의 플롬에서 해발 866m의 뮈르달로 가기 위해서는 눈 쌓인 계곡을 통과해야 했는데,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나는 그게 눈의 터널이라고 생각했다. 어디를 보아도 눈뿐이었다. 눈의 터널을 지나고 나면 어떤 나라가 나올까.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기차를 타보았지만 노르웨이의 산악기차는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세계기차여행>(윤창호 외 지음, 터치아트)이라는 책이 있는데, 노르웨이의 산악기차를 포함해 스무 개의 낭만적인 기차여행이 나온다. 사진이 아름답고 풍경은 너무 아득해서,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차의 덜컹거림이 느껴지는 것 같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스무 개의 루트를 모두 다녀볼 생각이다.


드로잉 일본 철도 여행 김혜원
기차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쩐지 반갑다. 가수이자 글도 잘 쓰는 오지은씨의 책 <홋카이도 보통 열차>(북노마드)를 보고 동지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책에서 ‘철덕후’라는 단어를 처음 보았는데, 철덕후란 ‘철도를 사랑하는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철덕후 중에서도 철도 여행을 사랑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철도 노선과 기차 시간표, 차량 부품 등을 사랑하는 부류도 있다는데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랑이 있구나 싶었다. 나는 철도 노선을 사랑하긴 힘들 것 같고, 기차 여행을 사랑하는 철덕후로 남을 것 같다. <홋카이도 보통 열차>에는 제목과 달리 열차에 대한 얘기가 많지 않다. 당연하다. 열차여행이란 열차를 보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열차를 통해 창밖의 ‘나’를 보기 위한 것이니까. 기차를 사랑하는 이유는 느리게 달리는 기차 창밖의 풍경을 통해 무수히 많은 나를 만나게 되고, 나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기차가 타고 싶어 엉덩이가 근질거린다.


일본, 기차 그리고 여행 심청보
책을 읽으며 알게 된 건데 일본에는 ‘청춘 18티켓’이란 게 있다고 한다. 7월 초부터 8월 말까지 발매되는, 5일간 무제한으로 보통열차를 탈 수 있는 기차표다. 청춘이 아니어도 18살 이상이어도 표를 살 수 있단다. 이름이 너무 멋져서 소설 제목으로 쓰고 싶을 지경이다. ‘청춘 18티켓’ 외에도 일본에는 다양한 종류의 기차표가 있어서 다양한 경로의 여행이 가능하다. <드로잉 일본 철도 여행>(김혜원 지음, 씨네21북스)이나 <일본, 기차 그리고 여행>(심청보 지음, 테라출판사) 같은 책을 읽어보면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소설가 김중혁
한국에도 연속 7일간 기차를 탈 수 있는 ‘내일로’라는 기차표가 있지만 이건 25살 이하만 이용할 수 있다. 우리도 ‘내일로 가는 청춘’의 연령을 좀 확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마흔이 넘었는데 기차 타고 싶은 한가한 청춘은, 기차를 타고 자신을 돌아보고 싶은 진지한 청춘은, 생각보다 많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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