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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14 18:27 수정 : 2011.08.05 22:53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문학에서 웃음이란 그닥 환영받는 존재는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중 희극론 필사본의 존재를 상정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도 웃음은 종교와 예술의 이름으로 금지해야 할 사악한 자질로 치부된다. 웃음은 흔히 경박함과 비천함의 증거로 이해되곤 한다. 비극이 진지함과 숭고함이라는 덕목을 독점해 온 것의 반대급부라 하겠다.

그럼에도 문학의 이름으로 웃음을 끌어안으려는 작가들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멀게는 ‘최초의 소설’로 일컬어지는 <돈키호테>에서부터 가깝게는 김유정·채만식에서 성석제·김종광으로 이어지는 우리 작가들의 소설에서까지 웃음은 종종 핵심적인 서사 전략으로 동원되었다. 그러나 이런 작품들에서 웃음은 ‘순수한’ 웃음이 아니라 비판과 슬픔을 내장한, ‘불순한’ 웃음이기 십상이었다. 젊은 작가 박형서(34)가 <현대문학> 9월호에 발표한 단편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 - 달걀을 중심으로>는 ‘불순한’ 의도가 배제된, 웃음 그 자체를 위한 웃음의 문학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서론, 본론, 결론의 삼분할 구조에다 그럴듯한 도표와 거짓 각주까지 활용한 소설은 제목에서 보다시피 논문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 의사 논문의 취지인즉, 주요섭의 단편 <사랑손님과 어머니>에 관한 논의에서 그동안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달걀이 핵심적인 상징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성적인 암시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한갓 농담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우선 딱딱한 논문 형식과 배치되는 구어투 문장과 비속어의 남발에서 금세 눈치챌 수 있다. 작가는 <사랑손님…>에서 무려 21번이나 등장하는 달걀에 대해 그간 연구자들이 전혀 관심을 표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이렇게 개탄한다: “계용묵의 단편 <백치 아다다>에서 주인공 ‘확실’이 ‘아다, 아다다’ 하고 끝없이 지껄이는 걸 제외한다면 도대체 한국문학의 그 어떤 텍스트가 이처럼 강박증에 가까운 특정단어의 집중배치를 보여주고 있는가? 우리는 왜, 어떻게 이것을 70년 동안이나 간과해왔단 말인가? 달걀이라고 무시하는 건가?”

이와 함께 “결국 필자와 같이 잘난 연구자에게 들키고 발각되지 않는다면”이라든가 “필자가 요새 좀 바쁘긴 하지만 이런 대의를 위하여 본격적으로 논의를 진행하도록 한다”는 식의 뻔뻔스러운 자기 자랑, 혹은 “붕산칼륨처럼 생긴 문학평론가 정찬호” “그는 가금류의 뇌를 가진 비평가이며 문장은 흑사병 수준이라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다” 식의 인신공격적 논평이 ‘논문’ 속에 버젓이 등장한다. “정직해서 늘 손해만 보고 사는 필자도 예쁜이들이 득실대는 나이트클럽에 가면 보통 일곱 살은 깎는다”처럼 논문 주제에서 벗어난 엉뚱한 진술까지 가세해, 낯설기 효과를 통한 웃음 유발에 성공한다.

이 야심찬 논문의 핵심이 달걀의 성적 상징성을 밝히려는 데에 있다는 것은 앞서 소개했다. 논문 필자는 달걀의 다른 이름이 ‘알’이며 알은 난자이자 불알이라는 점, 소설 주인공인 옥희가 스스로를 ‘처녀애’라 부르는 것은 결혼이라는 의례를 거치지 않았다는 뜻일 뿐이지 성경험이 없다는 뜻으로 볼 수는 없다는 추정을 근거로, 그런 옥희가 사랑손님의 방을 드나들면서 달걀을 먹고 논다는 서술이 사실은 “어지러운 음란의 향연”을 암시한다고 본다. 논문의 결론은 이러하다: “이 소설은 단순한 성장기 소설이 아니라 성교를 중심으로 세계의 원리와 끝없는 갱신을 해명하고자 한 알레고리 소설이다. 옥희의 집은 평범한 가정이 아니라 한 남성을 두고 아귀다툼을 하는 매음굴이다.”

이런 엉뚱한 결론을 통해 작가가 모종의 반어적 풍자나 페이소스를 의도했던 것 같지는 않다. 이 소설이 자아내는 웃음은 다른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웃음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 문학도 <개그 콘서트>와 <웃찾사>에 도전하는 소설을 지니게 된 것인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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