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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9.02 20:15 수정 : 2012.09.04 17:19

최재봉 문화부 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병원 가는 날. 퇴원 후 첫 바깥 나들이라 며칠 전부터 걱정이 되었는데 잘 다녀왔다. 원숙 원순이 같이 가서 혈액검사 엑스레이 사진 등 걱정했던 것보다 쉽게 하고 나는 자신이 좀 생겼다. 집에 와서도 많이 앉아 있었다. 일기도(메모 수준이지만) 쓰기로 했다. 워밍업이다./ 살아나서 고맙다. 그동안 병고로 하루하루가 힘들었지만 죽었다면 못 볼 좋은 일은 얼마나 많았나. 매사에 감사. 점심은 생선초밥(청정해)으로 혼자 맛있게.”

지난해 1월22일 타계한 작가 박완서 선생이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마지막으로 쓴 일기 전문이다. 사진으로 보니 비록 기력이 쇠해 조금 떨리는 글씨이긴 해도 또박또박 하루의 중요 일과를 적고 씩씩한 마음가짐을 곁들인 데에서 생전 선생의 꼿꼿한 성품이 만져지는 듯하다.

다이어리 형식의 공책에 쓴 이 일기는 국립예술자료원의 ‘예술사 구술 총서’ 다섯 번째 권으로 나온 박완서 구술집 <못 가 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만날 수 있다. 선생이 생전에 낸 마지막 산문집 제목을 차용한 이 책은 국문학자 장미영이 2008년 7월4일부터 같은 해 7월31일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선생을 대상으로 행한 구술 채록을 바탕으로 삼았다. 여기에다가 한국문화예술진흥원(2001년) 및 한국문화예술위원회(2005) 행사에서 나온 작가의 발언을 보탰으며, 선생이 돌아가신 뒤인 지난해 12월 따님인 호원숙씨의 증언 역시 곁들였다.

원로 예술가의 생애와 예술 세계에 관한 증언을 예술가 자신의 입을 통해 듣는 일은 언제나 보람되고 느껍다. 작품을 통해 짐작하던 것을 확인하는 즐거움이 있고, 몰랐던 일을 새롭게 알게 되는 기쁨도 있다. 생년월일을 묻는 첫 질문에 대해, 호적에 올라 있는 1931년 10월20일이 아니라 9월15일이 정확한 날짜라고 정정해 주는 데에서부터 예술사 구술 작업의 기초적인 의의를 확인할 수 있다.

좌와 우 사이에 끼여 고초받던 오빠가 어처구니없이 죽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서울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전쟁 때문에 미군 피엑스 초상화부에서 일해야 했던 시절, 그를 지탱한 것은 언젠가 이 모든 것을 글로 써서 남기리라는 ‘복수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다짐이었다.

그런 그가, 결혼하고 15년이나 지난 뒤에야 피엑스 초상화부의 밥벌이 화가로서 처음 만났던 박수근의 유작전을 보고서 충격을 받아 글쓰기에 나선 일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그렇게 해서 쓰인 것이 그의 첫 소설인 장편 <나목>인데, 그가 처음부터 소설을 쓰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제가 시작헌 거는 소설이 아니라 전기였어요. 박수근 전기를 써야겠다.” 그런데, 막상 쓰다 보니 자신이 박수근에 대해 알고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사실보다는 상상을 보태서 쓸 때 글이 더 잘 써진다는 걸 알게 되면서(“거짓말을 시키는 게 내 소질이라는 걸 느꼈어요.”) 논픽션은 픽션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소설가 박완서’의 탄생이다.

그렇게 해서 쓴 <나목>이 1970년 <여성동아> 장편공모에 당선하고 18년차 전업주부 박완서는 어느 날 갑자기 작가로 데뷔하게 된다. “(당신이 <나목>을 썼다는) 증거가 될 만한” 습작품을 요구하는 기자에게 습작품이 아닌 일기책에 메모처럼 써 놓았던 초고를 보여주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나목> 당선 뒤에야 잡지사의 청탁에 대비해서 단편들을 쓰기 시작했노라는 고백 등이 두루 재미지다. 여기까지가 늦깎이 작가 박완서의 탄생담인데, 나머지 더 재미난 이야기는 책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길 권한다.

최재봉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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