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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8.19 18:10 수정 : 2011.09.06 17:15

낙동강 내성천 소중함 알리는 지율 스님
“동물의 천국은 인간에게도 천국인데…”

강이 모든 지천을 받아들이 듯이 스님의 집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경북 예천군 우감마을에 있는 스님의 집을 찾은 지난 15일에도 전날 밤을 이곳에서 묵은 ‘여성노동자글쓰기 모임’ 회원 10여명이 낙동강 제1지류인 내성천을 보러 나서던 참이었다.

 가냘픈 체구에 잿빛 승복을 입은 지율 스님은 곱게 합장을 하고 기자를 맞았다. 10평 남짓한 마당에는 가지, 고추, 옥수수 등이 자라고 있었고 스님의 발이 되어준 자전거가 한켠을 지키고 섰다. 매실차를 내온 스님은 “도시 사람들 보기에는 남루할지 몰라도 예전에 묵었던 곳에 비하면 솟을대문까지 갖춘 대궐 같은 집”이라며 웃었다. 올 2월 스님과 함께 내성천 답사에 나섰던 전문가, 일반인 등 10여명이 주변에 식사 할 장소도 마땅치 않은 여건 때문에 합심해서 이 집을 빌렸고 그 뒤부터 스님이 거처로 쓰고 있다.

 스님은 내성천 자랑부터 시작했다. “아름답기도 이를 데 없지만 낙동강에 물과 모래를 공급한다는 기능적인 면에서도 내성천의 소중함은 크죠.” 내성천을 찾은 이상엽 사진작가는 ‘남성의 강’인 중국의 황화와 비견되는 ‘여성의 강’이라 일컬었고 한 영국인 방문자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해 보호할 곳”이라 했다고 스님은 전했다. “사람들이 우리 강의 아름다움만 알았다면 4대강 사업 같은 일은 없었을텐데….”

 스님은 궂은 날만 빼면 매일같이 내성천과 낙동강을 살피고 온다. “소임이라 생각하고 기록하고 있어요. 이제 4대강 사업은 반대할 수 있는 선을 넘었잖아요. 이제는 우리의 선택으로 강이 무엇을 겪게 되는지 모니터링 해야죠. 이게 끝은 아니니까.”

 

“도롱뇽은 질문이 아닌 질문”  

 이는 천성산 터널 문제 때 얻은 교훈이기도 하다. “터널 공사로 인해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모니터링 했어야 하는데 조사를 할 수 없었어요. 개발 전의 자료도 없었구요. 상대편 주장을 반박하기 힘들었죠. 하지만 강은 보이는데서 이뤄지는 공사이기 때문에 조사가 가능해요.”


  2001년 천성산 내원사의 산지기였던 스님은 당시 법수계곡에 있었던 산사태를 계기로 천성산 터널 문제를 알게 되었다. 이듬해 1월 지율 스님 등 내원사 스님들의 ‘천성산 살리기’ 국토순례 뒤 알려지기 시작한 천성산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보수언론들은 지난해 10월께 천성산을 관통하는 경부고속철도 개통을 앞두고 “천성산 웅덩이에는 도롱뇽 알 천지”라며 지율 스님 등 반대론자들이 무리한 주장을 해왔다는 투의 보도를 쏟아냈다. 천성산 문제를 ‘환경지상주의’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보여주는 본보기로 삼고자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스님은 “질문이 아닌 질문을 만들고 그에 답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3년 당시 천성산에 대한 환경영향평가가 두번 있었는데 모두 도롱뇽이 살고 있지 않다고 했어요. 법정에서도 우리는 살고 있다고 주장하고 저쪽은 없다고 하고. 그런데 갑자기 없다던 도롱뇽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는 거에요.”

 스님이 더 안타까운 것은 이 문제를 “도롱뇽이 있냐 없냐”로 바라보고 있는 환경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다. “더 중요한 것은 천성산에 왜 고속철도를 넣었냐 하는 것이죠. 그로 인한 우리 편익이 얼마나 늘었으며 잃은 것은 무엇인가. 건설 뒤 지금 지하수가 빠져 고통받는 지역민들이 실제로 많이 있어요. (터널이 뚫린지 1년이 채 안됐기 때문에) 도롱뇽이 계속 살 수 있는지는 지켜봐야 하는 문제고요.”

 

범람하는 생명들

 ‘내성천의 품’에서 강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누기로 했다. 내성천은 전통적인 우리나라 모래강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산과 산 사이를 휘돌아가는 냇물 옆으로 모래톱이 넓게 발달했고 주변에는 늪지가 발달했다.

 이날 찾은 내성천에는 생명이 범람하고 있었다. “이 곳은 동물들에게 천국과 같은 곳이죠. 동물의 천국은 곧 인간에게 천국이기도 하구요.” 모래톱 위로 삵, 고라니, 수달 등의 발자국이 피었다.

 강섶의 풀들을 헤치고 내성천에 들어섰다. 푸른 억새 줄기 밑동에는 빨간 우렁이 알들이 탐스렇게 열렸다. 물 위로 검은 날개의 물잠자리들이 유유히 날았고 물속에선 송사리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노닐었다. 모래도 냇물을 따라 분주하게 굴렀다. “4대강 공사 뒤 유속이 많이 빨라졌어요.” 스님이 말했다.

 내성천은 스님에게 “강에 대한 가장 어린 기억”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다섯 살 때였어요. 아버지가 목수셨는데 지방을 다니며 집을 지으셨죠. 한 번 나가면 집을 다 지을 때까지 오랫동안 안 들어왔죠. 그 때 아버지가 아마 영주에 계셨나봐요. 아버지가 연락이 없으니까 어머니가 서울집에서 삼남매를 다 데리고 내려오셨어요.”

목놓아 울었던 뚝방,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꽃 펴  

“어떤 이유에서인지 어머니가 저를 떼어 놓고 오셨어야 했나봐요. 가장 아프게 남는 기억이 어머니가 오지 말라고 하면서 뚝방길을 뛰어가시던 기억이에요. 저는 울면서 어머니를 쫓아가구요. 그러다 길을 잃어 뚝방에서 한참을 울었어요. 해가 지고 밤이 내리는 내성천을 바라보며. 아버지가 저를 찾으실 때까지 얼마나 강가에 있었는지 몰라요.”

 그때부터 스님은 강변에 머물렀다고 한다. 어린시절 집이 제1한강교 남단 강변에 있었는데 아침에 강에 나가 밤까지 자고 들어오곤 했다. “물별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고깃배들이 다니는 강을 바라보는 게 너무 큰 위안이 된 거에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어요. 자연에 대한 감수성과 조우한 것도 그런 순간을 통해서였죠.” 스님의 자연에 대한 사랑이 잉태된 시간이었다.

 스님은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그 때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알수도 없었고 말씀도 안 해주셨죠. 우리 세대는 누구나 강에 대한 추억을 하나쯤 가지고 있어요. 그런 우리 모두의 기억 가운데 하나일 뿐이에요.”

 

   

천성산, 낙동강, 내성천은 모두 한 덩어리  

지율 스님은 내성천에서 시작해 삼강(내성천과 금천이 낙동강 본류와 만나는 지점), 영풍교, 경천대, 상주보까지 하류를 향해 일행을 안내했다. 어디 한 곳 할 것 없이 모두 모래를 퍼내는 작업이 벌어지고 있었다. “4대강 공사를 통해 낙동강 330㎞의 강바닥을 6m 씩 파냈다고 해요. 그 부족한 공간을 메우려면 강에 어떤 일이 벌어지겠어요.”

  스님은 물이 가득찬 독의 밑바닥에 구멍이 난 것으로 비유했다. 설사 밑바닥부터 물이 빠질지라도 가장 위의 수면에서 회오리가 나타나듯 낙동강 공사로 인해 지천에서부터 산기슭 계곡의 가장 상류까지 모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빈곳을 메우기 위해 엄청난 모래들이 내려와 쌓이고 있어요. 강의 자연스러운 치유죠. 그러면 다시 이를 퍼내는 작업을 벌여요. 이런 일을 계속하는 게 맞는 건지 생각해 봐야 돼요.”

 낙동강의 상처가 곧 내성천의 아픔이듯 스님에게 천성산, 4대강, 내성천은 서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라 ‘한 덩어리’다. “언제나 소중한 것은 늘 우리 머리 위에 있었어요. 해, 바람, 구름, 별. 이들이 없었으면 어땠을까요? 공기가 더럽혀지고 물이 탁해져도 나만 깨끗한 것 먹으면 된다는 생각 때문에 계속 같은 사업이 반복되는 거에요. 우주가 나와 한 몸인데도요.”

 지율 스님이 천성산 문제를 놓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스님은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김종대 헌법재판관 등 우리 사회 이른바 ‘최고 권력’들과 천성산 문제를 둘러싸고 5건의 소송을 벌이고 있다. “산에 곤충이 살면 새가 오는 것처럼, 천성산 터널을 막았다면 낙동강 공사를 할 수 있었을까 싶어요.”

 

“부모가 자식이 아프면 뭘 먹어도 목에 걸리듯” 

 이 모든 속세의 일들을 버리고 떠나고 싶은 순간도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만날 떠나고 싶죠. 하루에도 열두번 짐을 싼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러나 뭇 생명들이 스님의 발목을 잡는다. “부모가 만약에 자식이 아프면 어디가서 뭘 먹어도 목에 걸리잖아요. 제가 이런 걸 놓고 다른데 가서 진짜 편안해질까. 자신에게 계속 질문하죠.”

 강둑에서 겪은 아픔으로부터 강의 아름다움을 만났 듯, 괴로운 운동의 과정을 통해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난 것에 대해 스님은 고맙게 여겼다. “‘우리’라는 틀이 커져야죠.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운동은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을 적처럼 생각해선 안된다고 봐요.” 스님이 4대강을 이명박 정권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을 경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님은 앞으로 내성천과 낙동강을 오가며 강의 상류, 중류, 하류, 주변 사람, 생물 등 10여개 테마를 잡아서 ‘내성천 이야기’를 인터넷 <한겨레>를 통해 전할 예정이다.

 글 권오성 기자 트위터 @5thsage 영상·사진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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