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0월로 예정 되어 있는 4대강 피날레를 위해 수십억의 홍보비를 책정하고 대규모 기획들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 화려함에 가려 그동안 강이 겪었던 아픔과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강주변의 변화가 가려지지 않도록 하기위해 2년 동안 진행되었던 오리섬 생태공원 조성과정을 영상물로 만들었다.
지금 내성천을 비롯한 전국의 지천들은 병든 부모를 봉양이라도 하듯 자신의 살을 여미어 준설이 이루어진 본류에 모래를 쓸어다 붓고 있다.
하지만 6m 깊이로 준설을 했던 강에 다시 모래가 쌓이는 일을 결코 강이 회복되어 가는 징조라고 말 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이러한 현상은 재앙이 시작되고 있는 징조에 가까워 앞으로 지천이 어떻게 변할지, 이후 우리 국토가 어떻게 변하게 될지를 생각하면 두렵기만 하다.
지금 오리섬을 중심으로 강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일들은 앞으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가르치는 엄중한 경고요, 질문이고 답이다.
지율스님
‘내성천에서 쓴 편지’ 아홉번째
내가 도남강변의 그 작은 섬을 처음 본 것은 2009년 3월이었다. 이 곳에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는지 짐작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섬 안에 들어가본 것은 그 해 늦가을이었다. 세상에 이름없는 섬이 어디 있을까만은 마을 사람들은 이 섬을 오리섬이라 불렀다.
가을이 저물 무렵 사람들이 몰려왔고 동물들만 살던 이 작은 섬에 제방을 쌓기 시작하더니 이 곳에 살던 생명붙이들을 그들이 땅에서 몰아내기 시작하였다. 그 후로 백번도 더 생각해 본 것은 무슨 예감이 있어 이곳으로 발걸음 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두 번 째 봄이 왔고, 내 눈 속에서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사라져갔다.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애증에 쌓여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한 채 날마다 강가에 나갔다. 날마다 드라마같은 일들이 드라마를 찍었던 그 강변에서 일어났다.
밤낮없이 강바닥을 파내던 일이 거의 끝나갈 무렵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이 가고 세번째 봄이 왔다.
가죽을 벗겨내듯 벗겨낸 오리섬에도 봄은 왔고 어디선가 곧고 푸른 소나무들이 트럭에 실려왔다. 그리고는 마치 전봇대를 세우듯 소나무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삽을 든 사람들이 와서 자신의 이름 새겨진 비석 하나를 세워놓고 돌아갔다. 사람들은 그 많은 나무들이 어디서 왔는지 묻지 않았고 이곳에 있던 많은 생명체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