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9.26 13:55
수정 : 2011.09.26 13:55
지율스님의 ‘내성천에서 쓴 편지’ 연재를 마치며
연제가 중간을 넘어 섰을 때 도반으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스님, 이제 그만 쉬었으면 좋겠네요.
그동안 멀리에서 지켜보면서 단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던 도반이었다.
-그러게요. 이젠 나도 좀 쉬어야할 것 같네요.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그 답은 이미 오래전에 결론이 나있던 문제였다.
세상을 관조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이 세계를 지배하는 듯 보이는 거대한 흐름을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일은 부질없는 일처럼 보일 것이다. 설령 관조 할 세상마저 없어져 버린다 한들 어쩌겠느냐는 것이다.
“물은 대지의 피”라고 이야기한 사람은 시인이 아니라 생물 물리학자였고 “물줄기는 혈맥이고 산줄기는 땅의 힘줄이며 뼈대”라고 이야기하신 분은 손과 발로 국토의 산하를 걸어 다니며 대동여지도를 그린 김정호였다. 깨달은 분들은 산하대지를 우리의 집이라고 가르쳤고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은 한결 같이 자연의 근원적인 힘과 원리에 입각하여 가르침을 펼쳤다. 그러한 가르침은 경험적이고 직감적이었기에 이심전심으로 전해졌고 설명이 필요치 않았다.
지금 시대의 지식인들은 이심전심으로 전해진 가르침을 미신처럼 터부시하고 자와 컴파스와 각종 장비들을 가지고 산과 들과 강으로 달려가지만 그들 중에서 과연 자연의 원리를 이해하고 자연의 언어를 들으려고 귀 기울이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다.
“낙동강 새롭게 하여 우리지역 행복을 꽃피우자”
위 표어는 얼마 전 내성천 하류인 경천교 부근에 붙여놓은 플랜카드의 문구이다. 문구와 상관없이 이 플랜카드는 조만간 이곳에 공사가 들어올 것이라는 경고의 매세지이기도 하다.
두려운 것은 그동안 아무도 눈 여겨 보지 않았기에 아름다움을 간직 할 수 있었던 모래강 내성천이 어떤 식으로 “새롭게” 변하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예산이 책정되고 중장비가 들어 올 때까지 우리는 그들이 머릿속에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알려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
이 질문이 내가 트러스트 운동을 시작한 이유였다. 그러하기에 트러스트 운동은 만평의 땅을 소유하자는 것이 아니라 만 명의 시선을 내성천으로 향하게 하자는데 목적이 있었다. 혼인 반지를 끼우듯 인연들을 묶어 두고자하는 바람이었던 것이다.
이제 물길이 아름다운 내성천에는 가을의 정령이 내려앉고 있다.
이 정령은 내성천에 빛과 색을 더하며 깊고 투명한 아름다움을 강가에 흩뿌리고 있다.
마치 지난 2년 동안 강에서 조난당했던 영혼들을 위로하기라도 하듯이 .........
마지막 영상은 지난여름 제주 곶자왈 작은학교 아이들과 내성천을 답사한 이야기를 묶었다.
육지의 강을 보기 내성천을 찾아왔던 이 아이들이 언젠가 다시 내성천을 찾았을 때 “우리가 걸었던 아름다운 강이 어디 있나요?”하고 슬픈 눈으로 되묻지 않게 되기를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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