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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0.06 14:40 수정 : 2011.10.06 14:40

[esc] 기마타 마코토의 재즈 스토리
② 무작정 쓴 한 통의 편지, 32년 자유분방한 프로듀서의 길을 열다

본격적으로 재즈 앨범 제작을 시작한 것은 1979년. 아르시에이(RCA)레코드 선전부의 최고책임자로서 우치야마다 히로시와 쿨 파이브 등 일본 아티스트들과 존 덴버, 대릴 홀 앤드 존 오츠 등 팝 계열 음악가들의 노래를 히트시키는 데 분투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오래 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만다. 어느날 큰마음을 먹고 상사에게 제안했다. “7년 이상 선전부 일을 해왔습니다만, 최근에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쯤 새로운 일을 했으면 합니다만…. 재즈 앨범 제작을 하고 싶습니다!” “안 돼. 재즈는 큰 시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매출도 별로 기대할 수 없어.” 상사의 한마디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쉽게 물러날 수 없었다. “1년만이라도 좋으니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 그 안에 성과가 없으면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부탁입니다, 1년만!” 결국 상사는 고집을 못 꺾고 허락했다.

허락은 받았지만 누구와 어떤 앨범을 만들까에 대해선 전혀 계획이 없었다. 잘도 허풍을 쳤다는 생각에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재즈 본고장인 미국 음악가와의 작업을 꿈꾸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전혀 접촉이 없었다. 우선 해야 할 일은 누군가와 접촉하는 것. 그 첫번째가 베니 골슨(아래 사진)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작품인 ‘I Remember Clifford’, ‘Whisper Not’을 정말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가 로스앤젤레스에 산다는 건 알았지만, 주소도 전화번호도 몰랐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전화번호부였다. 그곳에 살던 지인에게 베니 골슨이라는 사람의 주소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고, 2~3일 뒤 연락을 받았다. “한 명 있어. 우선 연락을 해보지 그래.”

베니 골슨

나는 바로 편지를 썼다.

베니 골슨씨에게

저는 재즈를 매우 좋아하는 일본의 한 음반회사 직원입니다. 최근에 퓨전이나 일렉트릭 재즈에 밀려 여러분이 예전에 크게 발전시켜서 우리들을 즐겁게 해주었던 스트레이트 어헤드(Straight Ahead)는 쇠퇴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재즈 메신저스나 클리퍼드 브라운, 맥스 로치가 걸었던 그 재즈는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요. 다시 한번 그 다이내믹하고 그루비한 비밥(bebop)을 되살리고자 재즈 제작 부문을 신설했습니다. 부디 제 꿈에 뜻을 같이해 주시고 도움을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베니 골슨에게 답장이 왔다.

기마타씨, 당신이 말한 것처럼 지금 스트레이트 어헤드 재즈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퓨전 뮤직 아티스트로 시비에스(CBS)와 계약한 상태입니다만, 스트레이트 어헤드를 리코딩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당신은 저와 어떤 앨범을 만들고 싶습니까? 그 아이디어가 제 뜻과 맞는다면 꼭 같이 해 봅시다.


첫 제작 재즈앨범 연간 6만장 팔려 대성공

이 한 통의 편지로 재즈 프로듀서 ‘기마타 마코토’의 본격적인 재즈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 후 그는 많은 뮤지션을 내게 소개해 주었다. 아트 블레이키를 필두로 재즈 메신저스의 면면들과 아트 파머, 냇 애덜리, 파로아 샌더스, 케니 배런, 론 카터, 우디 쇼 등. 베니 골슨이야말로 나를 지금의 재즈 프로듀서로 키워준 커다란 은인 중 한 사람이다. 이야기가 좀 빗나갔지만 내 첫 프로젝트인 스즈키 쇼지와 리듬 에이스의 <플라타너스 길>도 대성공이었다. 1980년 봄 발매해 연말까지 6만장이 넘게 팔렸다. 대부분 아날로그 녹음이었지만 당시 최신 기술인 디지털 리코딩을 바로 시험하겠다고 결심했고 대대적인 프로모션을 전개해 당시 방송 뉴스를 주도하던 <엔에이치케이>(NHK) 9시 뉴스에서도 특집으로 다뤄졌다.

베니 골슨과는 <캘리포니아 메시지>라는 앨범을 처음으로 만들었다. 미국 첫 현지 녹음이었다. 이 작품을 리코딩할 때 그가 내게 물었다. “앨범 타이틀은 어떻게 할까요?” “지금 생각중인데, 뭔가 좋은 아이디어 없을까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떠오른 게 ‘캘리포니아 메시지’였다. 베니 골슨의 표정으로 봐서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이었다. “기마타씨, 나쁘지 않네요. 그 아이디어 사용해도 될까요?” 이 작품의 결과는, 1981년 봄 발매 뒤 수개월 만에 1만3000장 판매. 대히트의 연속이었다. 이쯤 되자 처음에는 재즈 앨범 제작을 반대했던 사장 이하 모든 동료가 태도를 바꿨다. “기마타군, 재즈도 이렇게 팔리는구먼. 야, 허락하길 잘했어.” 나의 자유분방함이 시작된 건 그때부터였다.

베니 골슨은 기마타 마코토와 인연을 맺은 뒤 재즈 앨범 12장을 함께 냈다. 그가 세계적인 재즈 트럼펫 연주자인 에디 헨더슨(사진 왼쪽)과 함께 테너 색소폰을 연주하는 모습.

자유분방함은 앨범을 만드는 방식과도 관련이 있다. 앨범을 기획할 때 우선 타이틀을 결정하고 시작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베니 골슨도 나의 기획과 리코딩 방식을 흡족해했고 그와는 12장의 앨범을 만들었다. 그는 많은 음악가들에게 나를 적극적으로 알렸다. “기마타의 아이디어는 재미있어.” 그런 베니 골슨을 단 한번이었지만 매우 슬프게 한 사건이 있었다.

1982년 12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도시 전체가 화려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던 때, 뉴저지의 반 겔더 스튜디오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리코딩은 처음부터 문제가 많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시작은 됐다. 이 작품은 요절한 천재 트럼페터 클리퍼드 브라운의 추모앨범이었다. 이 앨범의 주인공이 될 신곡은 베니가 작곡한 ‘Time Speaks’였다. 노래 제목은 이 앨범의 타이틀이기도 하다. 연주 시간이 13분이나 되는 대작. 당시는 아직 시디(CD)보다는 엘피(LP)가 주류여서 좀 길다고 생각했다. “이 곡은 너무 기니까 베니 당신이 빠지고 프레디 허버드와 우디 쇼의 트럼펫 배틀로 가고 싶은데….” 내 제안에 그는 절대 이 곡에서 빠질 수 없다고 맞섰다. 그러다 갑자기 그는 침울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내 색소폰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그때까지 나는 주먹구구식 영어로 일을 진행하면서도 문제없이 소통할 수 있었던 데 자만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고 싶었던 말을 그에게 확실하게 전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중에 최선을 다해서 설명을 한 뒤에야 간신히 이해를 시켰던 씁쓸한 사건이었다. 그때 나는 베니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는 생각에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 반성하고 있다. 이 곡은 서로 많은 토론을 거친 끝에 결국 베니도 참가해서 최고의 완성곡이 만들어졌다. 이 앨범은 내가 만든 앨범 가운데서도 베스트 5에 들 정도다.

순수한 마음으로 오선지 대하면 진정성 있는 곡 나와

베니는 1960년대에 재즈텟(Jazztet)이라는 그룹을 만들었다. 재즈텟은 베니의 테너 색소폰, 아트 파머의 플뤼겔호른, 톰 매킨토시의 트롬본 등 3개의 관악기가 엮어내는 멜로디와 조화로운 연주로 신선한 재즈의 분위기를 만들어내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이것을 재연할 목적으로 베니 골슨과 1983년 11월 뉴 재즈텟을 재결성해 앨범 1장을 만들었다. 그 당시 베니의 멜로디 메이커로서의 자질, 그리고 편곡자로서 탁월한 사운드 제작에 대해 직접 물었다. “베니, 당신은 인상적이고 훌륭한 멜로디를 많이 만들어내고 있는데, 뭔가 작곡에 대한 당신 나름의 신조 같은 게 있는 건가요?” 베니는 말했다. “신조 같은 건 없어요. 만약 있다고 한다면 진정성이라고나 할까… 하하. 나의 작품은 모두 내 기억, 인상, 생각들이 동기가 되고 있죠. 그 당시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지금 그것이 어떤 형태의 기억으로 내 마음에 남아 있는지…. 단지 그것뿐이죠.” “그렇다면 결국 곡을 만들 때는 진정성을 어떻게 반영하느냐를 생각한다는 뜻인가요?” 또다시 물었고 답은 금방 돌아왔다. “기마타씨,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중요한 것은 순수한 마음으로 오선지를 대하는 것이죠.”

글 기마타 마코토/재즈 음반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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