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9.15 11:05
수정 : 2011.09.29 14:15
|
일러스트레이터 조성형
|
C+Y의 자전거 타고 핀란드 한바퀴
① 한국에서 헬싱키로, 다시 오래된 도시 포르보로
출퇴근이 하루의 유일한 이벤트였던 두 직장인 청춘남녀 디자이너 조성형·윤나리. 반복적인 일상을 벗어나겠다며 어느 날 프리랜서 디자이너(open-am11.com)로 전업. 그러나 여전히 계속되는 힘든 일상에,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안고 무작정 핀란드로 떠났다. 복지국가, 공공디자인, 친환경주의, 평등교육 등…. 머릿속 막연한 북유럽 나라 핀란드를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가깝게, 조금은 힘들게 들여다봤다. 이들의 핀란드 자전거 여행기를 5회에 걸쳐 싣는다.
C의 여행 출사표→ 친절한 공무원의 나라로
감상에 빠지길 좋아하는 Y와 나는 ‘함께 다니던’ 회사를 ‘함께’ 그만두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직장이라는 거대 조직을 거치기까지 항상 나를 대신하는 대명사가 되었던 ‘조직’(혹은 집단)을 탈피하고 나니 감상에 빠질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이런 시기에 여행이 제격이라는 것은 배낭여행 한번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Y와 나는 어디론가의 여행을 계획했다.
공교롭게도 Y는 그녀의 짧은 인생 동안 그 너른 유럽 땅 한번 밟아본 경험이 전무하다. 어학연수다 배낭여행이다 유럽의 각지를 떠도는 한국 젊은이들과 비교하면 그녀는 평범하지 못하게 살았다. 나 역시 취업을 준비하던 대학 4.5학년 시절 해외 인턴 명목으로 런던에 잠시 체류한 것이 유럽 체험의 전부였다. 그래서 유럽 한번 제대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우리는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무조건 북유럽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온갖 매체를 통해 접해온 무언가가 우리의 무의식에 침투했을 가능성이 높다. 행복한 나라, 아름다운 자연,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느리게 사는 사람들, 자전거 타기 좋은 나라, 국가가 책임져주는 복지…. 이런 몇 가지 명성의 혼합일 가능성이 높다.
|
핀란디아홀 뒤편에 위치한 퇼뢴 호수. 도심 곳곳을 연결하는 자전거도로는 조용한 호수를 둘러 이어진다.
|
우리의 대책 없는 감상은 북유럽 4개국 관광청에 편지를 쓰는 것으로 비약되었는데, 그 내용인즉 ‘우리가 당신네 나라를 여행하고 싶은데 그림도 그리고 보기 좋은 사진도 찍고 내키면 글도 쓰고 싶다.(사실 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여기에 우리가 여행했다는 흔적까지 남길 수 있다면 영광이겠으니(설치작품 같은 것?), 여행 뒤 우리의 이런 결과물을 당신네 나라를 홍보하는 데 활용해 줄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3개국은 답장을 보내오지 않았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고맙게도) 우리의 목적지가 된 핀란드로부터는 다소 비관적인 내용이지만 친절한 답장을 받을 수가 있었는데 문득, 이런 허무맹랑한 편지에 친절한 답장을 해주는 공무원이 있는 나라라면 이번 여행지로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덧붙이자면 스웨덴 관광청의 담당자님께서도 출국 이틀 전 답장을 해주셨다. 늦었지만 감사하다.)
그래서 목적지는 핀란드가 되었고 인천공항-서울-부산만 가보고 한국을 안다고 할 수 없듯이 우리는 발트해의 아가씨 헬싱키와 그 유명한 산타마을 말고 조금 더 낯선 (어쩌면 핀란드인에게도 낯선) 곳으로 가서 핀란드를 가까이 보고 우리가 살 만한 곳을 찾아보고 싶었다.
Y의 첫 핀란드→ 백야가 시작되는 6월 아지트를 찾아서
“여행은 인간을 만든다”(안도 다다오)는데, 나의 첫 배낭여행이 내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인도를 두 번이나 찾아간 것처럼 다시 돌아가 보고픈 장소가 있었다. 여행 중 만나는 낯선 동네임에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 있다. 그런 곳에선 몇 날이든 몇 주든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 그러다 보면 의문이 생기곤 했다. ‘내 남은 인생을 모두 이곳에서 보내야 한다면 이렇게 마냥 좋을 수 있을까?’ ‘그냥 놀러온 것이 아니고 지금부터 이 사람들과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면 지금처럼 좋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 덜컥 겁이 났다. 여행은 좋지만 본격 인생 게임의 현장은 무척이나 치열하다는 것을 고국에서 너무 학습한 탓일까? 결국 좋던 것도 갑자기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직 그만큼 확신을 가질 만한 곳을 발견하지 못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대로 내 고향 대한민국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운명도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말이다.
수년 전, C와 나는 자전거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여행한 적이 있다. 그때 나의 작은 소망은 부산까지 가는 동안 자동차의 위협에서 살아남는 것과 (실제로 몇 번의 고비가 있었다) 치열한 직장생활의 은퇴 뒤 노년을 함께할 아름다운 동네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은퇴라는 것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고, 이번엔 핀란드에서 살 만한 동네가 없나 둘러본다.
핀란드의 자전거도로는 환상적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평탄한 좋은 지형 조건, 파란색 표지판으로 차도와 철저히 구분된 자전거도로는 도심의 구석구석을 연결하고 그 길은 사람과 자전거가 지배한다. 수도인 헬싱키를 출발해 천천히 5시간 정도를 달려 포르보에 도착할 때까지 생명의 위협은 없었다. 독립된 자전거도로에서 불안함을 느낄 필요는 없다. 도시와 도시 사이에서는 부분적으로 자전거도로가 사라지기도 하지만 자동차들과 함께 도로를 달린다고 해서 걱정할 것은 없었다.
핀란드의 자동차 운전자들은 자전거가 등장하면 속도를 줄이는 것에 익숙하다. 핀란드인들은 이런 것을 어디서 배운 것일까. 자전거를 타면서 지나가는 운전자와 눈인사가 가능할 정도이다. 우리만의 아지트를 찾아 이곳에 왔지만 어쩐지 벌써 찾은 느낌이다. 자전거를 마음 놓고 탈 수 있고 헬싱키를 조금만 벗어나면 아름다운 숲길이 펼쳐진다. 자전거도로는 숲길, 도로를 가리지 않고 이어진다. 안전한 자전거도로가 있으니, 또 자전거를 배려해주는 운전자들이 있으니 페달을 밟으며 주변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핀란드에서는 확실히 ‘천천히 둘러보기’가 가능하다.
헬싱키를 벗어나자마자 외국인 등장 빈도가 급감한다. 다들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나 역시 그런 그들이 신기하다. 포르보 시내에 들어서 관광 안내소에 들른다. 호스텔에 짐을 풀고 천천히 동네를 둘러본다. 포르보는 핀란드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마을’(Old Town)을 가진 역사 깊은 도시이지만 그런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로 소박하다. 강가엔 핀란드인들의 애마인 보트가 줄지어 있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조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을 건너편에는 다소 현대적인 분위기의 뉴타운이 한창 건설중이지만 다행히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계획에 없는 듯하다. 헬싱키에서도 신기하게 10층 이상의 건물을 찾기가 어려운데 여기는 더더욱 그렇다. 이 작은 도시는 안쪽으로 숨어 있는 느낌이랄까. 서울과 비교하면 1%도 혼란스럽지 않은 헬싱키이지만 그조차도 혼란스럽게 느껴진다면 이곳은 정말 추천할 만하다.
부동산 광고가 눈에 들어온다. 1층짜리 아담한 목조주택 한 채가 5만유로 정도다. 벌써부터 꽤나 현실적인 생각이 든다. 핀란드… 혹독한 북극권의 추위와 아름다운 오로라가 있는 겨울, 따스한 햇살이 있지만 밤이 없는 여름. 아무래도 마음에 든다. 눈을 마주치면 이내 눈을 피하지만 무엇이든 물어보면 너무도 친절한 핀란드인들도 아직까지는 마음에 쏙 든다. 5만유로라… 머릿속의 계산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조성형·윤나리/디자이너
|
핀란드 여행쪽지
자전거 가져갈 때 포장은 공항에서
◎ 항공권 구매 | 우리나라에서 핀란드 헬싱키까지는 핀에어(Finair) 직항 노선이 있다. 다른 항공사의 경유노선이 싸지만 수화물의 분실·파손의 우려가 적고 환승의 수고로움 없이 9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건 말할 필요 없는 장점.
◎ 자전거 가지고 가기 | 현지에서 자전거를 살까도 생각했지만, 핀란드의 높은 물가와 추가 수화물 요금 사이에서 고민하던 끝에 가져가기로 결정했다. 낯선 환경에서 강행군할 것을 고려하면 몸에 익숙한 자전거를 타는 것이 좋겠다. 자전거는 휠이나 체인, 자전거의 모서리 등 파손에 약한 부분을 포장해 특별수화물 등록 라인에 접수한다. 배낭+잘 포장된 자전거까지 들고 낑낑대며 공항 투어를 하고 싶지 않다면 포장은 가급적 공항에 도착해서 하는 것을 추천한다.
◎ 자전거 안전용품 | 핀란드의 여름은 밤도 낮처럼 환한 백야 기간이므로 야간용 자전거 조명등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핀란드 자동차들은 안전을 위해 낮에도 전조등을 켜고 달린다. 헬멧 착용은 권고사항으로 경찰이 미착용자에게 착용을 권유할 수 있는 수준이다. 도심지로 갈수록 착용자는 많아지지만 착용자와 미착용자의 비율은 대략 50 대 50 정도.
|
|
|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