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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9.29 14:13 수정 : 2011.09.29 14:15

술로사리로 향하는 길에 위치한 호수. 다이빙대에서 핀란드인들이 입수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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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먼길 돌아 와닿은 ‘호수의 땅’…비상하는 오리떼마저 부러웠네

콧카에서 예르비수오미(레이크랜드) 지방의 아름다운 도시 사본린나까지는 거리가 상당하다. 지친 몸도 쉬이고 시외버스도 타볼 겸 사본린나행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에 오른 후 목적지까지의 거리에 따라 티켓을 발급해 주는 핀란드 시외버스에는 몇 가지 특이한 반가움이 있었다. 먼저 버스 기사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버스의 짐칸에 자전거를 실어주니 우리 같은 자전거 여행자들은 마음 편히 잠시 쉬어 갈 수가 있다. 둘째로 버스 안에 화장실이 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다가 간혹 발생하는 난감한 상황은 그렇게 해결된다. 셋째로 교외로 갈수록 버스 운전기사는 집배원의 역할도 겸한다. 숲길에 드문드문 자리잡은 핀란드의 목조 주택들은 입구에 우체통이 있고 버스 기사는 이 우체통에 신문이나 소포 등을 아주 꼼꼼히 넣어준다.

핀란드의 여러 지방들 가운데 레이크랜드는 이름 그대로 셀 수 없이 수많은 호수들의 땅이다. 사본린나에는 핀란드어로 ‘성’을 의미하는 린나(Linna)가 붙은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호숫가에 아름다운 성이 자리잡고 있는데 15세기에 지어진 이 성 ‘올라빈린나’(Olavinlinna)는 핀란드를 소개하는 많은 매체에 도시의 상징처럼 등장한다. Y와 나는 짐을 풀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 아지트 후보지 물색 작전을 시작한다. 성에서는 오늘 결혼식이 있는 듯하다. 신혼부부의 사진 촬영이 한창이다.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어주는 여유도 잊지 않는다.

올라빈린나 내부. 요새에 가까운 성채 내부에는 당시의 유물을 전시한 작은 박물관도 있다.
핀란드에 오자마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들 가운데 하나는 바로 핀란드인들의 자전거 타는 실력이다. 어린 시절부터 몸에 익은 실력이 뒷받침되다 보니 때로는 위험한 묘기도 선보이는데, 휴대전화 통화를 하며 달린다든지, 신이 난 듯 앞바퀴를 들어올리거나, 횡단보도에서 정지할 때는 뒷바퀴를 들어올리는 묘기를 쉽게 볼 수 있다.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자니 반대편에서 한 무리의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딱 봐도 10살 이하다. 나와 Y의 생김새와 작은 접이식 자전거, 이 모든 게 신기한 모양이다. 손을 흔들어주자 의외로 수줍게 고개를 돌린다. 신호가 바뀌자 한 아이가 갑자기 나를 쳐다보며 앞바퀴를 번쩍 들며 출발한다. 마치 ‘이거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다. 졌다. 못해서 미안하다.

도시에서 고개 숙인 도시형 자전거

간편한 휴대를 위해 선택한 도시형 자전거이지만 막상 핀란드인들 가운데 접이식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작고 멋지게 접히는 도시형 자전거라는 게 여기서는 별로 통하지 않는 듯하다. 도시에 도시형 자전거가 없는 셈이다. 이유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장거리 이동을 원한다면 기차나 버스 모두 넉넉한 짐칸에 자전거를 싣고 탈 수 있고 시내에는 관련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원한다면 자전거 도로로 어디든 쉽게 갈 수 있다. 큰 자전거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일이 없으니 굳이 속력이 느린 접이식을 선택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웬만하면 성인용 자전거를 타는 이곳 아이들의 모습도 자연스럽다.

‘부럽다. 너희들….’ 멀어져 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자전거 하나로 어쩐지 행복해 보인다. 그리고 언뜻 나에게로 생각이 미친다. 나에게 행복은 무엇일까? 대학을 졸업하고 이른바 대기업이라는 회사에 입사했을 때 사람들은 내가 행복할 거라고 말해주었다. 나도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나는 행복해지지 않았다. 아니, 내 기준에서 나는 불행했다. 사람들은 내가 여전히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번엔 내가 행복해지고자 회사를 그만뒀다. 정말로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하지만 반대로 사람들은 내가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입도 일정치 않고 안정되지 못한 모습이 측은하게 비쳤나 보다. 결국 내가 행복한데도 주변에서는 불행한 사람 취급했다. 누구나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다.

하지만 내 나라에서는 몇 가지 가치만을 인정하는 듯하다. 일종의 기준이 있는 셈인데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가치는 인정받기 어렵다.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누가 정했는지 모를 몇 안 되는 가치를 좇아 살아야 한다니. 사본린나 성채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부부를 떠올리며 문득 핀란드인들이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고풍스러운 호텔에서는 아침 뷔페로 다양한 연어요리가 나온다. 핀란드인들의 연어요리 사랑이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나도 연어가 좋아진다. 창가에 앉아 비 내리는 호숫가를 바라보며 아침 식사를 즐기는 기분은 상쾌하다. 굵은 빗줄기는 이어지고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그친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맑은 하늘이 드러났다. 우리는 가이드북의 지도에서 이름 모를 작은 섬 하나를 짚어 길을 나섰다.

자작나무 숲 속에서 삶의 여유 즐기는 그들

그리고 우리는 줄곧 길을 잃은 상태에 처하게 된다. 거의 열 걸음이면 건너는 부표 같은 섬을 지나자 다시 하나의 섬이 등장한다. 잠시 멈춰 멍한 눈으로 하나, 둘 호수의 섬들을 세어본다. 눈에 보이는 것들만 열여덟 개다. 내가 앉아 있는 곳과 세지 못한 부표들까지 더하면 핀란드에는 17만9584개의 부표들이 떠다닌다. 이 수많은 부표들 가운데 나에게 자리를 내줄 하나가 있을까. 우리가 지도에서 짚은 작은 섬 역시 이 가운데 하나다. 작은 숲 같은 이 섬에서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우리뿐이다. 사람 자체를 찾기도 어렵다. 사람들이 걸음으로 만들어낸 은근한 길 옆으로 바람에 자작나무가 흔들린다. 이 작은 숲에서 노부부는 손을 잡고 산책을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홀로 앉아 호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한다. 모두 그저 저마다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키 크고 무성한 자작나무 숲은 이들이 어디에 있든 그들을 숨겨준다.

핀란드에서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저마다 행복을 위해 좇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확실히 핀란드인들은 이것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것들을 요란하게 얘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언뜻 보아서는 그들의 행복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들은 가족들과, 때론 홀로 이런 외딴 숲을 찾아와 자작나무가 숨겨주는 오두막에 머물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사우나를 즐기고 호수에 몸을 담근다. 그런 것들은 확실히 이들의 행복과 연관이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자작나무 소리와 새소리만으로도 어쩐지 지금 나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Y와 나도 먼 길을 돌아 이곳까지 찾아왔으니 조금은 행복할 자격이 있는 걸까. 작은 숲에서 시간을 보내며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자연은 그중에서 1순위 후보라는 확신이 든다.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글을 써보지만 내가 표현하려는 어떤 것도 이곳의 바람과 숲과 호수를 담기엔 부족하다.

갑자기 Y와 나는 핀란드에서 살 수 있는 구체적인 가능성을 타진해 본다. 이 동네가 마음에 든다. 잔잔한 호수 위를 솟구치듯 비상하는 오리 떼. 너희도 이 동네가 마음에 드니?

글·그림 조성형/디자이너·사진 윤나리/디자이너

핀란드 여행쪽지
속옷 대신 수영복을 입어야 할 이유

수영복 준비 | 핀란드는 말 그대로 땅 반 호수 반이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면 그대로 뛰어들고 싶은 곳이 한둘이 아니다. 8월이 수영하기에 가장 좋은 온도. 다이빙대가 놓인 호숫가에는 나무로 지은 간이탈의실이 있기도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호수가 등장하는 여름 핀란드를 여행하는 자전거 여행자의 바른 자세는 역시 ‘속옷 대신 수영복’. 그래야 입수 준비 시간을 줄인다.

물놀이 호수의 절경 | 사본린나 중심부에서 북쪽에 위치한 환락의 카지노호텔 주변 작은 섬 카펠리를 거쳐 술로사리로 갈 수 있다. 호텔 주차장 뒤편에 생뚱맞은 오솔길 어귀가 있고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2개의 다리를 건너 술로사리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주변의 숲과 호수는 말이 필요 없는 절경.

물은 깊지 않나요? | 핀란드의 호수는 언뜻 보기에는 잔잔한 바다에 가깝다. 얕게 일렁이는 파도와 끝을 알 수 없는 호수 크기에 겁이 난다면 입수 전에 깊이를 확인할 수 있다. 간이탈의실과 호수 중앙으로 이어진 다이빙대가 설치되어 있는 곳은 수영이 가능한 곳인데 대부분 다이빙대 끝에는 수영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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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C + Y의 자전거 타고 핀란드 한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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