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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0.13 11:30 수정 : 2011.10.13 11:36

타운홀에 위치한 도서관 2층의 내부. 1층과 달리 2층은 알토가 디자인한 초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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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건축유산에서 황홀한 1박…경찰차 타고 기묘한 투어

세계적인 핀란드 건축가 알바르 알토(1898~1976)를 경배하고 싶다면 이위베스퀼레에 가면 된다. 도심은 그의 작품으로 도배되어 있다시피 한데, 번화한 도시인 탓인지 경건한 마음으로 감상을 하기엔 무리가 있다. 여기서 자전거로 1시간 반 거리(약 20㎞)에 있는 작은 두 섬 세위네트살로와 무라트살로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레티사리라는 비슷한 크기의 섬을 사이에 두고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이 두 섬에는 알바르 알토의 대표작인 세위네트살로 타운홀과 코에탈로(실험주택)가 각각 위치하고 있다. 시끌벅적한 홍보가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다 보니 조용한 두 마을은 여전히 평화롭다. 우리는 이위베스퀼레 도심에서 머무르다 우연히 세위네트살로 타운홀에서 숙박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친절하기 그지없는 타운홀 담당자와 연락해 며칠 뒤 방을 빌릴 수 있었다.

우리가 묵게 된 ‘알바리’ 내부. 간이침대 너머로 타운홀의 중정이 내다보인다.
알바르 알토의 성지에서 보낸 최고의 하룻밤
세위네트살로의 타운홀은 핀란드에서 경험한 알토의 건축 가운데 단연 최고다. 잘 모르는 건축적인 이야기는 놔두더라도 한적한 세위네트살로의 마을 분위기, 현재도 주민들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도서관, 압권인 중정과 실내 공간, 거기에 해가 지지 않는 한여름 밤 이곳을 내 집 삼아 머무르는 기분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타운홀은 현재 갤러리, 콘퍼런스, 오피스 공간과 도서관, 주거 공간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이 가운데 두 방을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한다는 점이다. 두 방 이름을 각각 알바르 알토의 이름에서 따온 알바리와 두번째 부인 이름 엘리사로 정한 것도 재미있다. 두 방은 작은 분수가 있는 중정을 바라보며 나란히 있다. 1995~98년 리노베이션 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방 내부의 가구와 집기는 알토의 디자인과 핀란드의 대표적 브랜드 마리메코, 아라비아, 알토가 세운 가구회사 아르테크의 제품으로 채워져 있으며 큼직한 액자에는 알토의 드로잉이 걸려 있다. 해가 지지 않는 세위네트살로의 여름, 중정의 분수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으며 밤을 보내는 것은 건축이나 디자인에 관심이 없더라도 훌륭한 선택이다. 무라트살로의 코에탈로는 깊은 숲 속에 위치해 철저하게 보호되며 가이드와 동행했다가 시간이 되면 떠나야 하기 때문에 신비해 보이기까지 했던 반면 이곳은 조금 더 친근한 인상을 가진다고나 할까.

두 건축물을 제쳐두더라도 이 마을들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여유로운 사람들, 한적하고 고즈넉한 숲과 호수, 아름다운 다리로 연결된 세 개의 작은 섬, 이곳에선 이위베스퀼레 도심에 머무를 때보다 훨씬 즐겁게 자전거를 탈 수 있었고 몇 번이고 호수 수영을 즐겼다. 하지만 이런 평화로운 일상에 익숙해질 즈음 우리에게 잊지 못할 작은 사건이 발생한다.

타운홀에는 2층 공공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은 긴 수직 창이 촘촘히 나 있어 따스한 햇빛이 극적으로 스며든다.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알토의 가구에 앉아 독서를 하는 즐거움을, 이곳 주민이 된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누릴 수 있겠다. 기분 좋은 경험, 기분 좋은 오후, 독서를 마치고 도서관을 나온다. 이때 사건이 발생했다. 낯익은 자전거 한 대를 한 핀란드 사내가 타고 달리다 눈이 마주친다. 아뿔싸. 핀란드인들의 정직함을 너무 믿었던 탓일까.(사실 세위네트살로에 온 뒤로 자전거를 묶어두고 다닌 적이 없었다.) 일단 뛰었다. 도둑임이 100% 확실한 그를 쫓으며 소리를 지르자 조용하던 세위네트살로의 침묵이 깨진다. 추격전이 이어지지만 내리막 찬스를 이용해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자전거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모두 망쳤다. 길가에 멍하니 서 있는 나에게 타운홀 옆 꽃가게 아주머니가 다가온다. 쪽지에 자전거를 훔친 사내의 이름과 경찰서 번호를 알려주신다. 112. 마치 자신의 친구가 도둑질을 한 것처럼 부끄러워한다. 뭘까…? 이 동네에선 도둑질도 완전범죄가 될 수 없는 것인가?

우선 남은 자전거 한 대가 있는 도서관으로 돌아가 이곳에 머물며 친하게 지냈던 사서에게 도움을 청했다. 상황을 설명하자 경찰에 전화를 걸어준다. 잠시 뒤 경찰관과 도서관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이 먼 타국 땅에서 경찰이라니. 조용히 머물고 싶었는데. 사서는 자신은 퇴근시간이 되었으니 가보겠다며 도서관을 나선다. 자전거를 꼭 찾길 바란다는 말을 남기며. 10여분을 기다리자 경찰차 한 대가 도착한다. 건장하고 잘생긴 한 사내와 마음씨 좋아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내린다. 사내는 영어에 능숙하다. 상황을 설명하자 이미 알고 있으니 괜찮다고 한다. 심지어 자전거를 훔친 사내에 대해서도.



덜컹덜컹~ 얼뜨기 도둑 쫓아가며 절경 관광 즐겼네사내는 T였다. 두 경찰관의 말을 빌리자면 T는 동네에서 유명한 문제아여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맙소사, 이런 유명인사가 내 자전거를 슬쩍하다니. 이 작은 마을에서 그들의 유명세를 고려할 때 꽃가게 아주머니가 단번에 이름을 적어준 것도 무리는 아니다. 두 경찰관은 특별히 갈 곳이 없으면 자신들의 차를 타고 함께 찾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다. 약간 얼떨떨하지만 Y와 나는 밴에 올라 멋진 경찰관들의 안내로 세위네트살로 주변 투어를 시작하기로 한다. 이들은 몇 군데에 전화를 걸고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우리를 안심시킨 뒤 T와 그의 친구가 평소에 자주 은신한다는 곳을 한 군데씩 들르기로 했다. 뻔한 곳에 숨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 봤자 멀리 못 갔다는 게 그들의 지론이다. 우리가 불안해하는 듯하자 젊고 건장한 경찰관이 짧게 한마디 덧붙인다. “아이 노 힘.”(I know him)

드디어 투어가 시작됐다. 한 장소를 들르고 T나 그에 관한 정보를 얻지 못하면 짧게 “넥스트”를 외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게다가 이게 어찌된 일인지 가는 곳곳마다 현지인만 알 수 있을 법한 빼어난 절경이다. 핀란드 젊은이들은 탈선도 이런 멋진 곳에서 하는 것인가. 갑자기 부러운 마음이 생기지만 “넥스트”는 계속되고 Y와 나는 졸지에 패키지 관광객이라도 된 느낌이다. 이제 자전거는 안중에도 없다. 상황이 묘하게 웃기다. 우리는 뒷좌석에서 연신 킥킥댔다. 이번엔 길에서 T의 어머니를 만났다. 순전히 우연이다. 젊고 건장한 경찰관은 우리와 그 어머니가 얼떨떨해하며 인사를 나누는 찰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T가 ‘꼬레’(Korea) 여행자들의 자전거를 훔쳤다고. T의 어머니가 머리를 감싸 쥔다. ‘아이고 아주머니, 저희가 자전거 묶고 다닐걸. 죄송해요.’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렇게 한참 마을 투어를 한 끝에 익숙하게 생긴 자전거를 발견했다. 길가에 덩그러니 버려져 있다. 이 이상한 추격전의 결말을 고려할 때 T가 대범한 범죄자는 아닌 듯하다. 두 경찰관은 곤봉을 들고 혹시 주변에 T가 있는지 확인했지만 그는 온데간데없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버려진 자전거가 나의 자전거임을 확인하자 마음씨 좋게 생긴 아저씨 겸 경찰관이 가볍게 웃으며 우리가 탄 뒷좌석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Hyvaa~!” 이날 휘베가 어떤 상황에서 쓰는 말인지 확실히 배울 수 있었다. 참고로 경찰용 밴의 뒷좌석은 몹시 불편하므로 추천하지 않는다.

글·그림 조성형/ 디자이너·사진 윤나리/디자이너

핀란드 여행쪽지
알바르 알토와 이웃 되기

세위네트살로 타운홀(Saynatsalo Town hall) | 세위네트살로 타운홀은 입장료 없이 건물을 둘러볼 수 있고, 특이하게도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세위네트살로 타운홀의 게스트하우스는 1인실이고 추가요금을 내면 침대를 하나 더 놓고 최대 2인이 묵을 수 있다. 방이 2개밖에 없으므로 사전 예약이 필수이다. 예약은 전자우편이나 전화, 방문 예약으로 가능하다.(saynatsalo.aalto@jkl.fi/ +358(0)14-266-1522)

코에탈로(Koetalo Experimental House) | 알바르 알토의 여름별장 코에탈로 실험주택을 둘러보려면 꼭 예약해야 한다. 예약은 이위베스퀼레 시내의 투어리스트 오피스나 알바르 알토 박물관에서 접수할 수 있다. 코에탈로를 방문할 예정이라면 방문 시기를 미리 확인할 필요가 있는데, 코에탈로는 여름시즌(6~9월 중순)에만 개방하고 1주일에 세번(월·수·금요일)만 방문할 수 있으며 하루에 한번(13:30~15:30) 가이드와 동반하여 둘러볼 수 있는 비밀스러운 공간이다.

이위베스퀼레 건축 지도 | 이위베스퀼레의 여행자 안내소에서는 건축 지도 가이드를 무료로 제공한다. 이위베스퀼레의 시내와 더불어 교외의 건축물까지 포함하고 있으며, 100여 건축물 중 대다수가 알바르 알토의 작품이니 이위베스퀼레를 천천히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알바르 알토와 이웃이 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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