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1.10.31 21:13 수정 : 2011.11.02 11:46

1973년 10월21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서 직계가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극비리에 진행된 최종길 교수의 장례식 날 가족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영문을 모른 채 웃으며 뛰어다니는 딸 희정양, 아들 광준군, 최 교수의 막냇동생 종선씨, 최 교수의 부인 백경자씨 등이다.

그때 그 사람 ‘그 아버지의 그 아들’ 최광준 교수

“1973년 10월21일 장례식날은 무척 쌀쌀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아버지의 주검을 관에 봉한 채로 마석 모란공원 묘지에 안치했다. 그때 나는 ‘아빠’ 하고 달려가서 그 관을 활짝 열어보고 싶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사인을 밝혀내고 싶은 절실한 감정의 첫 표현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아버지 최종길 교수를 떠나보낸 그때 10살 소년이었던 광준(48)은 평생토록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아서’ 살아왔다.

장례식 직후 “형님이 쓰던 책 원고가 다 끝나 가는데, 조교분에게라도 완성시키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삼촌과 어머니의 대화를 옆에서 듣던 그는 “엄마! 그 책 쓰지 말라고 해! 내가 다음에 커서 꼭 쓸 테야!”라고 소리쳤다. 그로부터 20여년 뒤 그는 아버지가 박사학위를 받은 독일의 쾰른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아버지를 가르쳤던 케겔 교수의 지도 아래 같은 강의실과 같은 도서관에서 공부했고, 아버지가 살았던 기숙사를 항상 자전거로 지나다녔으며, 아버지의 옛 친구들을 만났다. 지금은 경희대 법대에서 아버지처럼 민법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장례식날 어머니 백경자씨는 광준과 세살 아래 여동생 희정 남매를 꽉 껴안으면서 “이제 우리끼리 사는 거야” 하면서 흐느꼈다. 중앙정보부는 최 교수의 부인이자 의사인 백씨에게조차 주검을 보여주지 않았다. 검시 과정에 변호사나 의사의 입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주검은 절대로 확인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 아래 봉인된 채 가족에게 인계됐고, 묘지까지 앞뒤로 정보부의 감시차량에 둘러싸여 갔다. 장례식에는 오직 직계 가족만이 참석할 수 있었다.

1998년 10월17일 서울대 근대법학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고 최종길 박사 25주기 추모식’에서 아들 최광준(맨 왼쪽) 교수가 어머니 백경자씨와 가족들과 함께 인사말을 하고 있다.
그날부터 졸지에 간첩으로 몰려 숨진 최 교수의 가족들은 철저하게 외부와 격리되었다. ‘타살설’을 들은 <워싱턴 포스트>의 돈 오버도퍼 기자가 집 대문 앞에서 큰 소리로 “당신의 남편이 중정에 의해 타살된 것이 아니냐”고 물었을 때도, 부인은 그저 ‘돌아가 달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제자들이 찾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정 직원들이 항상 집 앞에서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후 세상의 구설과 눈총을 피해 집과 학교를 옮겨다녀야 했던 남매의 상처를 보듬어준 것은 이화여대 김옥길 총장이었다. 당시 중정에 근무하던 삼촌 최종선(현재 미국 거주)씨로부터 아픈 사연을 듣고 후견인을 자청해 이화여대 부속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해준 덕분이었다.

하지만 1979년 10·26 사건이 터졌을 때, 최종길 교수의 어머니는 박정희의 사망을 반기는 가족들에게 엄한 얼굴로 말했다. “죽음 앞에서는 조의만을 표하는 것이다.”

1998년 10월 광준씨가 나를 찾아왔다. 그의 성심과 눈물이 배어 있는 노력으로 서울 법대 교정에서 처음으로 최 교수의 25주기 추모식이 열리기 며칠 전이었다. 이렇게 최 교수에 대한 신원 운동과 진상규명 노력은 대를 이어 계속되었다.


이 글을 쓰기 며칠 전 만난 광준씨는 “팔순을 앞둔 어머니가 얼마 전 폐암 수술을 받으셨다. 어머니가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고 기쁜 마음으로 언젠가 세상을 떠나셨으면 한다”며 또 눈물을 글썽였다. 예전에도 최 교수 얘기를 할 때면 그도 울고 나도 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어머니를 마음의 평화 속에 살다가 기쁘게 떠나게 할 수는 진정 없는 것인가.

정리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김정남의 ‘증언, 박정희 시대’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