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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7.01 20:25 수정 : 2011.10.26 11:25

페가서스 내부에는 통로 하나의 길이가 363미터에 이르는 곳이 있다. 배의 규모를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지구에서 지구의 규모를 느낄 수 없듯이, 배에 타서는 그 규모를 느낄 수 없다.

이영준의 대양횡단 기계탐험기- ③항해에서 누리는 눈의 복
스팀보일러·해수 정화장치 등 시끌
배에서 가장 뜨겁고 진동 심한 곳
우리나라 컨테이너선 지날 때마다
선장이 “휸다이” 하고 알려주기도

배가 상하이를 떠나서 샤먼에 이르자 이제 공기는 완전히 습해지고, 남중국해의 아열대성 기후가 나타난다. 항해가 3일쯤 지나자 페가서스는 시속 24노트로 정속운항을 하면서, 모든 상황은 일정해졌다. 더는 출항 때처럼 흥분할 일도 없다. 그제야 나는 가져온 패키지를 풀어내놓고 평론가의 임무를 시작한다. 그것은 지식의 패키지이다. 그 패키지에는 주경철의 <대항해시대>, 마크 레빈슨의 <박스: 컨테이너 역사를 통해서 본 세계경제학>,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논픽션집> 등의 책들도 들어 있지만, 가장 중요한 항목은 질문들이다.

‘오늘날의 디지털화되고 첨단화된 항해가 16세기 대항해시대의 항해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전쟁과 무역과 과학을 위해 먼바다로 목숨을 걸고 나아가는가? 옛날의 선원들은 어떤 음식과 물을 먹고 마시며 항해했을까? 오늘날의 선원들은 어떻게 힘겹고도 단조로운 선상 생활을 견디고 있을까? 한국은 어떻게 해서 전세계의 바다를 누비는 해양강국이 됐을까?’ 등등의 질문들이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중요한 질문은 비평가가 왜 이런 항해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가까운 미술관에 가도 볼 것이 얼마든지 많은데 말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안복’(眼福)이다. 이는 미술사를 연구하는 분들이 쓰는 말로서, 눈이 누리는 복이란 뜻이다. 좋은 그림이나 글씨를 보고 마음이 풍족하고 많은 감흥을 받을 때 안복을 누린다고 말한다. 물론 안복은 눈의 즐거움에서 끝나지 않고 지식 활동으로 이어져야 미술사가나 비평가라고 할 수 있다.

소화용 이산화탄소 가스가 들어 있는 400여개의 탱크가 배의 깊숙한 곳에 숨어 있다. 배의 은밀한 구석구석을 보면서 비평가는 사물의 지층을 지식의 지층과 연결시키려고 애쓴다.
거대한 배 내부의 모든 디테일들을 직접 보고, 복잡하고 거대한 컨테이너 항구의 시설들을, 자연스레 전망대가 돼주는 높다란 배 위에서 마음껏 훑어보는 것은 엄청난 안복이다. 대형 선박이나 컨테이너 항구는 특별한 허가 없이 아무나 들어가서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곳에 들어가면 기계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천국이라 할 만한, 온갖 거대하고 희한한 기계들의 스펙터클이 펼쳐진다. 기계들은 거대하고 다양하고 시끄럽고 흥미진진하다. 그 기계 하나하나를 보는 것, 상하이 양산 컨테이너 터미널같이 거대한 터미널에서 선석(berth: 배가 머물 수 있는 항구의 구역)에 끝도 없이 늘어선 배들과, 끝도 없이 늘어서서 컨테이너를 옮기는 갠트리 크레인(항구의 선적용 기중기)들, 그리고 끝도 없이 쌓여 있는 색색깔의 컨테이너를 보는 것은 최고의 구경거리다. 브리지(조타실)에서 내려다보는 항구는 첫눈에는 매우 복잡해서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많이 보고, 지식이 쌓이면 그런 것들을 보는 눈이 생긴다. 처음에는 복잡하게 얽힌 쇳덩어리같이만 보이던 것이 갠트리 크레인의 트롤리(크레인과 컨테이너 화물을 연결하는 장치)고, 스프레더(크레인 끝에 달린 컨테이너 하역기기)고 하는 식으로 구분이 되고, 배의 갑판에 얹혀 있는 난잡하게만 보이는 것들이 어떤 것은 마스트고, 어떤 것은 레이더고, 어떤 것은 식료품 운반용 크레인이고 하는 식으로 구분이 된다. 처음에는 단순한 구경거리였는데 차차 지식의 대상으로 변하는 것이다.

배의 구석구석들도 상당한 안복을 제공해 준다. 배는 너무 크고 너무 튼튼하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두꺼운 철로 돼 있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두껍게 용접돼 있다. 길이가 얼마인지 알 수도 없는 배관과 배선, 10만 마력짜리 주엔진 하나와 발전용 디젤엔진 다섯 개, 전력용 변압기(이 배의 전력은 6600볼트다), 두 대의 스팀 보일러, 해수 정화장치, 여러 대의 펌프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살펴보는 것도 안복이다. 배의 아래쪽에 깊숙이 숨어 있는 엔진실은 배에서 가장 뜨겁고 시끄럽고 진동이 심하고, 하여간 가장 열악한 근무조건을 가진 곳이다. 그런 사정은 몇톤짜리 고깃배건, 몇십만톤짜리 초대형 선박이건 다 똑같다. 기관장의 안내를 받아 엔진실을 둘러보는 것은 괴물들의 전시장을 보는 것 같아 무척이나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가파른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려야 하는 곳이 많고 너무 덥고 시끄러워서 엔진실을 나설 때쯤이면 기진맥진한다. 이곳에서 위아래가 붙은 작업복을 입고 항상 일하는 사람들은 참 특이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에서 하는 일 중에 항해 관련 업무처럼 덥지도 시끄럽지도 않고 깨끗한 일도 있는데….

그림 속에 전경, 중경, 원경이 있듯이, 안복에도 가까운 것과 먼 것이 있다. 먼 곳으로 눈을 돌리면 다양한 배들이 눈에 띈다. 항해를 하면서 평소에 사진으로만 본 배들을 직접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은 테크놀로지에 관심 있는 나로서는 큰 안복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거장들의 미술작품들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눈앞으로 지나간다고 상상해 보라. 미켈란젤로, 석도, 왕희지, 추사, 겸재, 고흐, 앤디 워홀 이런 식으로 말이다.

눈앞에 세계에서 제일 큰 컨테이너선인 머스크의 1만5000TEU급의 컨테이너선이 지나간다. 그 뒤로 이름도 알 수 없는 작은 벌크선이 파도를 온통 뒤집어쓰며 간다. 좀 있자 베이지색의 둥근 모스형 엘엔지(LNG)탱크를 얹은 엘엔지선이 지나간다. 또 조금 있자 원유를 가득 실어 흘수선이 아주 내려간 비엘시시(VLCC: 초대형 원유운반선)가 떠간다. 현대상선의 컨테이너선들도 보인다. 그때마다 선장은 나에게 너희 나라 배가 지나간다고 “휸다이(현대)!” 하고 알려준다. 그 중간중간에 어떻게 이 먼바다까지 나왔을까 싶을 정도로 작은, 몇 톤 되지 않는 조그만 어선이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떠 있다.

그러나 비평가가 느끼는 안복은 눈의 쾌락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일반 관광객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비평가의 즐거움은 지식의 즐거움이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항해하는 동안 여러 생물종들을 관찰하고 그 세부의 형태를 비교분석하면서, 그것들이 어떻게 진화했을까 따져 보면서 지적인 즐거움을 누렸듯이, 나는 여러 다른 형태의 배들을 보면서 배들은 어떻게 저런 형태로 진화했을까, 저것들의 계보학이란 있을까 궁금해한다. 나아가, 목적과 형태와 크기가 다른 여러 배들이 바다를 누비는 방식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런 문제는 테크놀로지만의 문제가 아니라 혹시 철학이나 역사의 문제는 아닐까 궁금해하기도 한다.


안복은 지식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진다. 화물선을 타고서 먼 옛날 사람과 물자는 어떻게 험한 바다를 건너 세계 각국으로 퍼져 나갔을까. 그것은 지금 우리가 사는 근대세계를 어떤 식으로 형성하게 되었을까. 이런 의문을 풀어본 역사학자 주경철의 <대항해시대>를 항해 중 읽는 것은 큰 즐거움이자 매우 뜻있는 일이었다. 나중 회에 상세히 이야기하겠지만, 특히, 유럽이 세계를 장악하기 전 아시아가 세계에서 제일 큰힘이었고 그중 한 지역이 동남아 믈라카(말라카)였다는 책의 한 부분을 읽고 있는데, 마침 페가서스가 믈라카를 지나간다든지, 해적이 자주 출몰하는 아덴만을 지나면서 해적의 역사에 대한 부분을 읽는다든지 하는 것은 묘한 흥분을 가져다주었다.

내일이면 홍콩에 닿는다. 거기서는 어떤 안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기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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