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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7.29 20:03 수정 : 2011.10.26 11:47

항해사가 육분의(六分儀)를 들고 태양의 각도를 측정하고 있다. 이 도구를 사용하여 정오에 태양의 고도를 측정하면 자신이 있는 지점의 위도를 알아낼 수 있다. 오늘날의 항해에서 육분의를 쓰지는 않지만 천체의 고도를 측정하여 자기 위치를 아는 것은 항해의 고전이며 기본이다.

이영준의 대양횡단 기계탐험기 ⑦ 숭고한 노동이자 숙명의 여행, 항해술
* 오토 파일럿 : 자동 항법장

항구 가까워지고 물길 복잡하면 손으로 방향타·엔진 출력 조절해
테크놀로지 역사적 원형 지식 필요옛 항법도구 ‘육분의’ 아직도 탑재

이번 여행에서 알고 싶은 가장 중요한 것이 바다에서의 항해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항해는 배의 본질이다. 물론 화물 나르는 것이 배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기는 하지만 항해를 하지 않으면 물건도 나를 수 없다. 나는 항해에는 어떤 기술과 인간의 능력이 동원되며, 어려움과 위험은 어떤 것인지를 알고자 했다. 또한 대항해시대 항해와 요즘의 항해는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은지 역사적으로 비교해 보고자 했다. 아무런 경계도, 표지판도 없는 망망한 바다에서 인간은 어떻게 자기 위치와 방향을 찾아서 그 먼 곳을 찾아갈까. 뱃사람에게 해도를 보고 현재 위치와 앞으로의 항로를 표시하고, 변침점(항로를 바꿀 때의 기준점)에서 방향을 틀고 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육지에 사는 나에게 항해는 지적 호기심의 대상일 뿐 아니라 모험여행의 로망이기도 하다.

그것은 육지에서의 내비게이션에 모험이라는 요소가 사라졌기 때문에 더 그렇다. 오늘날‘내비게이션’ 하면 금세 차에다 다는 장치를 떠올릴 것이다. 그 장치는 사람을 완벽하게 수동적으로 만드는 ‘바보기계’다. 사람은 어떤 것도 판단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장치이며, 낯선 것을 찾아간다는 호기심과 모험심을 송두리째 없애 버리는, 정말로 로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기계다. 배의 항해는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항해사의 판단은 의사의 판단과 비슷하다. 의사의 손에는 온갖 데이터를 제공하는 첨단장치가 있지만, 그가 내비게이션을 보고 운전하는 사람처럼 수동적으로 기계가 주는 데이터만 따르는 것은 아니다. 의사가 자신의 종합적 경험과 추론능력, 판단력을 총동원하여 진단을 내리듯이 오늘날 항해사는 인공위성이 현재 배 위치를 알려주는 ‘위성항법시스템’(GPS)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종합적인 판단을 내린다.

물론 모든 것이 자동화된 요즘 배에도 항공기처럼 ‘오토 파일럿’ 기능이 있어서 미리 세팅한 항로에 스스로 알아서 자동으로 가게 돼 있다. 그러다가 항구가 가까워지고 물길이 복잡해지면, 오토 파일럿 모드를 해제하고 파일럿의 안내에 따라 일일이 손으로 방향타와 엔진의 출력을 조절해가며 항해한다. 이 모든 과정은, 아무리 자동 설정돼 있다고 해도 계속 인간이 살펴봐줘야 한다. 시스템은 자동이지만 그것을 관장하여 만일의 사태나 오류에 대비하는 것은 인간의 눈이고 판단력이다. 이를 위해 브리지(함교: 항해를 총괄하는 상갑판의 지휘통제실)에서 당직을 서는 것은 노동이다. 당직을 서는 동안 항해사들은 배가 올바른 경로로 가고 있는지 계속 해도를 보면서 확인하고, 수시로 우리 배의 경로에 다른 배가 들어서고 있는지 살펴보고, 충돌 위험은 없는지 판단해야 한다. 항구나 다른 배에서 오는 무전 통신에 응답하는 것도 일이다. 이런 시스템은 아마 결코 자동화될 수 없을 것이다. 항해 동안 발생하는 수많은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으로 드나드는 바닷길이 표시돼 있는 해도. 홍콩 근해는 작은 어선들과 잡화선들이 뒤엉켜서 극도로 항해하기 어려운 바다다. 이럴 때 항해사의 신경은 몹시 곤두선다.
21세기의 항해에는 큰 변화나 불확실성의 요소는 없다. 기껏해야 날씨나 일정이 좀 변하는 정도다. 날씨는 하루에 두 번씩 텔렉스로 정보가 들어온다. 경험 많은 선장이라면 어느 해역에, 어느 계절에,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불고 파도와 놀(풍랑: 파도보다 긴, 주기가 300미터쯤 되는 물살의 움직임)은 어느 정도가 될지 예측할 수 있다. 페가서스가 홍콩을 떠나 남하하기 시작하자 남중국해에 게일(gale: 폭풍)이 있을 것이라는 주의가 들어왔는데, 이 정도는 충분히 예측가능하다.


한달간 항해에서 만난 불확실한 미지의 요인들은 여러가지였다. 해적의 출몰이나 정치적 격변(페가서스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무렵 이집트의 무바라크 퇴진시위 때문에 운하가 폐쇄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있었다)이 그랬고, 유정(油井: 석유가 나오는 갱)이나 어장 등 새로 생겨난 시설물들도 있었다. 어느 정도 예측가능한 기상 상황에 비하면 해적이나 정변은 완전히 예측 불가이므로 좀 난감한 경우이다. 그런 것을 빼고는 이 항해에서 모르는 것, 불확실한 것이란 아예 없다. 오늘날 지구상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다 알려져 있고 조류의 방향과 세기, 수심이 표기된 자세한 해도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오늘날에는 전지전능의 항해도구인 위성항법시스템이 있다.

그런 것이 없던 대항해시대에는 항해에서 가장 기본이면서도 어려운 것이 현재 자기 위치를 찾는 것이었다. 그 시절에 내가 만일 북서쪽으로 100마일 떨어진 어떤 항구에 간다면 나침반이나 별자리 등을 써서 현재 자신의 위치를 파악한 다음, 거기서부터 정확한 방위각 345도를 재어 그 방향으로 향하면 됐다. 당시 배에 속도계란 없었으니 ‘추측항법’(dead reckoning: 장님처럼 추정하는 법이란 뜻. 로그(log)라고 불리는 측정기의 줄이 풀리는 정도에 따라 배의 속도, 주항거리를 재는 장치를 쓴다)으로 한 시간에 얼마나 가나 계산하고, 여기에 풍향, 풍속, 조류의 방향과 속도를 더하여 계산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방법은 대단히 부정확할 뿐 아니라 날씨가 나빠 별자리를 볼 수 없으면 그저 막연히 갈 수밖에 없는, 장님 같은 항해였다. 대항해시대의 뱃사람들은 그렇게 항해하다가 숱하게 희생됐다.

오늘날의 항해에서 그런 모험은 아예 없다. 항해사는 중국 상하이에서 영국 사우샘프턴까지 가는 길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의 손에는 지구상 모든 바다에 대한 정보를 가진 해도가 있다. 위성항법시스템을 쓰기는 하지만 오늘날 배에서의 내비게이션은 그 근본에서 전통적인 방식에 가깝다. 오늘날 항해자는 지구 전체와 자신이 갈 세부적인 해역의 모습이 담긴 큰 그림을 머릿속에 넣고 있다. 그것은 중국에서 영국으로 간다는 전지구적인 스케일에서 시작한다. 처음부터 정해진 항로에 따라 중국을 떠나면, 그 아래 홍콩을 거쳐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가 나온다. 인도양을 거쳐 아라비아 반도 아래 홍해로 들어가면, 아시아를 벗어나 수에즈 운하를 통과한다. 그 뒤 지중해로 들어간 다음, 지브롤터라는 관문을 거쳐 유럽의 바다 대서양으로 가는 큰 그림이다. 그다음은 좀더 지역적인 스케일로 들어가서 상하이를 떠나면 또 다른 중국의 항구 샤먼으로 들어가고, 그다음은 옌톈이고 하는 식이다. 그 경로에서 항해사는 변침점에 이르러 정확한 각도로 배의 방향을 바꿔줘야 한다.

즉, 항해란 큰 수준에서 점점 더 작고 자세한 수준으로 내려가며 땅과 바다의 모양을 식별하고 내가 어디쯤 있는지 몸과 눈으로 파악해 들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해도를 항상 보고, 주변 지형지물을 보고, 바다 위에 뜬 부표를 주의해서 보고, 무엇보다도 마주 오는 배들을 잘 보며 배를 운행해야 한다. 그것은 실제의 지구와 ‘로컬한’ 차원의 지구, 정보상의 지구라는 존재론적으로 다른 차원의 현실들을 대조하는 복합적인 차원의 행위다.

디지털 기술은 항해의 방식을 급격하고 분명하게 바꿔놓았다. 그러나 전문가는 눈앞 문제만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포괄적 지식을 가지고 자신의 전문 분야를 다루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당대의 테크놀로지만이 아니라 테크놀로지의 역사적 원형을 항상 참조한다. 그래서 배에는 옛날 항법도구인 육분의가 실려 있다. 그의 항해는 바다에서의 항해이자 지식의 바다에서의 항해이기도 하다. 아무리 정밀한 위성항법시스템이 있어도 그는 끊임없이 바다와 하늘을 보면서 조류를 가늠하고, 파도의 방향을 관찰한다. 항해사는 오늘도 대항해시대 뱃사람들이 항해하던 그 바다와 똑같이 거친 바다를 헤쳐나간다. 기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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