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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적으로 있는 화재훈련을 위해 선원들이 미리 정해진 소집장소(muster station)로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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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준의 대양횡단 기계탐험기 ⑧ 바닷사람 어떤 사람들인가?
거침·강인함은 선입견일뿐 자기 직분 충실한 기술자들
“아프다고 대신해줄 이 없어” 인원감축 탓 갖은 일 도맡아
항해를 하면서 가장 궁금한 것 중의 하나가 바닷사람의 특징은 어떤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바닷사람 혹은 뱃사람(seaman, sea farer) 하면 육지의 일반인과는 달리 뭔가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을 것만 같다. 우선 바다는 상상할 수 없이 거칠고, 배에서는 위험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바닷사람이라고 하면 그런 것들을 견뎌낼 만한 거친 기질과 강인함이 떠오른다. 강원도 속초항의 꽁치잡이 어부부터 22만톤짜리 배의 선장에 이르기까지 공통점이라면 바다와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반드시 이길 수만은 없는 싸움을 말이다. 해군은 자기 나라의 다른 군대보다 다른 나라의 해군을 만났을 때 더 반갑다고 한다. 바다와 싸워야 하는 공동의 운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는 거칠다는 선입견 때문에 뱃사람 하면 애꾸눈 선장 잭 같은 사람을 떠올리든가, 아니면 술을 아주 많이 마시고 성질은 난폭한 사나이를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배에서 만난 뱃사람들은 전혀 그런 타입이 아니다. 물론 배의 크기와 종류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오늘날 대형 화물선의 뱃사람들은 관리직(사관들)부터 노동자(선원들)까지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다. 사실 화물선은 회사가 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바닷사람들도 계약을 맺고 월급을 받는, 자기 직분에 충실한 직원들이다.
선장의 얘기를 쭉 들어보면 바닷사람들에게 거친 바다는 별로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바닷사람이다. 그들은 우리 입장을 이해한다.” 이 말은 거친 바다에서 고생한 사람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는 말이다. 바닷사람들끼리는 바다라는 자연환경의 특성만이 아니라, 배를 운항하는 데 필요한 기술적인 문제들을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거친 바다의 풍랑에 전복되지 않고 항해하기 위해 배를 어떻게 몰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 같은 것 말이다. 반면, 그가 가장 골치 아파하는 것은 육지의 사람들이다. 특히 행정을 맡는 사람들이 골칫거리다. 선장은 날씨와 배에 실은 화물의 양과 특성을 생각해서 어떤 때는 부득이하게 운항일자를 늦춰야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육지 사무실에서는 왜 빨리 일정에 맞추지 못하느냐고 성화를 한다. 선장은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관철해야만 한다. 그는 배의 운항에 대해 항상 자신의 입장을 관철할 수 있는 논리와 자신감, 우렁우렁한 목소리의 존재감을 가지고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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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등 항해사 짐 몽칼. 그의 얼굴에는 바다생활의 피곤함이 쌓여 있는 듯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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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브리지에서 당직을 서는 동안에도 항상 종이에 칼과 풀을 펼쳐 놓고 무슨 서류인가를 열심히 꾸미고 있다. 그는 또한 배의 안전을 책임진 사관이기도 하다. 내가 처음 이 배를 탔을 때 나를 데리고 배의 이곳저곳을 다 보여준 사람이 이 아저씨다. 한번은 브리지에 모든 선원들의 여권이 펼쳐져 있기에 보니까 항구에 입항하기 전 선원명부를 작성하고 있었다. 모든 선원들의 이름, 나이, 출신지를 꼼꼼히 확인해야 하는 작업이다. 필리핀, 크로아티아,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섞여 있는 선원명부는 보기만 해도 골치가 아프다. 3등 항해사는 배 안의 모든 자잘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항상 피곤한 표정이다. 육지 같으면, 몸이 아플 경우 다른 사람더러 대신 자리를 지켜달라고 하고 쉴 수 있으나 선원이 22명밖에 안 되는 배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고 불평이다. 1등 항해사는 항법 외에도 컨테이너를 적절히 분배해서 적재하고 내리는 복잡한 과정을 책임지고 있고, 배의 균형을 맞추는 밸러스트 워터(바다 위에 뜬 선박의 무게중심을 맞추기 위해 배 안에 넣는 바닷물)를 넣고 빼는 까다로운 임무도 맡고 있다. 배에서는 모든 사람이 멀티플레이어다. 해운회사들이 경비를 줄이려고 인원을 감축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브리지에서 당직을 서고 있던 짐 몽칼이 열심히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배의 폭이 46미터이므로 충분히 뛸 만한 거리가 된다. 이렇게라도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조깅을 하는 것이다. 갑자기 한국의 공구상가에서 본 어떤 아저씨가 생각났다. 공구상가에는 선반이나 밀링 머신으로 쇠를 깎아서 부품을 만들어주는 이른바 ‘마찌꼬바’라고 불리는 가게 겸 공장들이 있는데 대개는 그 공간이 구멍가게처럼 좁다. 그 좁은 공간에서 어떤 머리가 벗어지고 배가 볼록 나온 중년의 기계공 아저씨가 운동을 위해 뛰어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동물원의 곰처럼 그 아저씨는 폭이 10미터도 안 되는 좁은 공간을 계속 반복해서 뛰었다. 55살의 짐 몽칼이 살기 위해 브리지에서 조깅을 하는 모습을 보고 그 아저씨가 생각나서 마음이 짠해졌다. 바닷사람에게는 강인한 모습만이 아니라 바다와 배라는 가혹한 노동조건에 찌든 모습도 있었던 것이다. 짐 몽칼은 바닷사람을 그만두고 한국에서 취업하고 싶어 한다. 한국말도 못 하는데 어떻게 취업할 거냐고 했더니 ‘안냐쎄요’, ‘김치’ 등 몇 마디 서투른 한국말을 해 보인다. 그가 한국의 육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며 나는 먼바다만 바라보았다. 기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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