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8.26 20:21
수정 : 2011.10.26 11:52
운하 양쪽에 군부대·전쟁기념비
이집트·이스라엘 격전지역 실감
2월9일! 내일이면 이번 항해의 꽃 수에즈운하로 들어가는 날이다. 해적들을 뿌리치고 아덴만을 지나서 길이가 2천 킬로미터쯤 되는 길고 뜨거운 홍해를 통과하여 시나이반도의 남쪽 끝이 눈에 들어왔을 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땅을 봐서 그렇고 수에즈운하에 들어가게 되어서 그렇다. 운하의 입구까지 가기 위해서는 시나이반도의 서쪽에 있는 수에즈만을 300킬로미터쯤 올라가야 한다. 수에즈운하 자체의 길이는 193킬로미터다. 시속 10노트(18킬로미터)의 느린 속도로 통과하는데 12시간쯤 걸린다. 1869년 개통할 때는 8미터였던 평균수심은 계속 준설하여 지금은 24미터까지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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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바라크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격화되고 있는데 일명 ‘무바라크 피스 브리지’라고 이름 붙여진 수에즈 운하 브리지를 지나는 것은 묘한 느낌이었다. 일본이 돈을 내서 지었기 때문에 ‘이집트-일본 우정의 다리’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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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를 피하자 호랑이를 만난다고, 인도양에서 해적을 피하자 이번에는 무바라크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 때문에 수에즈운하가 폐쇄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집트, 수단, 이스라엘이 엉켜 있는 복잡한 지형만큼이나 착잡한 수에즈운하의 역사는 내가 이곳을 통과하는 오늘도 작용하려고 하고 있다. 운하가 폐쇄됐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수에즈운하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다. 또 하나는 멀리 아프리카의 남단 희망봉을 돌아서 북상하는 것이다. 나는 이 두 가지 가능성에 대해서 선장한테 물어보지 않았다. 그런 일을 떠올린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힘 빠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페가서스는 수에즈운하의 남단에 있는 앵커링 포인트에서 앵커를 내리고 대기하게 되었다. 나는 17톤의 앵커가 배 전체를 울리는 굉음을 내며 시커먼 바닷속으로 사라져 가는 장엄한 광경을 보기 위해 밤 12시에 선수갑판에서 기다렸다. 찬바람이 부는 깊은 어둠 속 심야의 선수갑판, 강철과 강철이 목숨을 건 맹수들의 싸움처럼 부딪히며 포효하는 모습은 내가 이제까지 본 기계의 광경 중에서 가장 장엄한 것이었다. 앵커를 매달고 있는 체인의 마디들은 서로 부딪히면서 붉은 쇳가루를 공중에 흩날렸다. 멀리 정박해 있는 다른 배에서도 여기저기 앵커를 내리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쿠르르릉 하고 났다. 이 광경은 기계가 만들어낸 가장 극적인 순간으로 내 뇌리에 각인되어 언제까지나 비평적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
새벽 5시30분이 되자 페가서스는 앵커를 올리고 안개에 싸인 수에즈운하를 향해 천천히 진입하기 시작했다. 페가서스는 북상하는 스무 척의 선단 중 아홉 번째로 출발이다. 출발시간이 되자 앵커링 하고 있던 배들은 일제히 앵커를 올리고 고속도로 매표소에서 돈을 낸 차들이 차선에 따라 합쳐지듯이 일제히, 그러나 아주 천천하고도 신중하게 합쳐지고 있었다. 그 순간 대한민국 외교부에서 친절하게도 문자가 왔다. “귀하는 여행제한국가 방문중, 비긴급 용무시 신속출국 요망.” 외교부는 내가 이집트 근방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것은 고마운데 이 멀리 까지 나와 있는 국민의 위치를 정부가 알고 있다는 것은 왠지 섬뜩한 일이다.
시나이 반도가 완충지대 역할
드넓은 사막으로 그냥 비워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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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일리아 부근의 모래섬을 사이에 두고 컨테이너선 두 척과 자동차 운반선 두 척이 교행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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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가 40미터에 이르는 대형 화물선의 브리지라는 초특제 전망대에서 본 수에즈운하 주변의 경치는 좌우가 너무 달라서 충격적이었다. 시나이반도의 최남단을 통과하자마자 수에즈시는 도시가 갖추고 있는 온갖 면모를 다 보여주는데 특징적인 것은 사막을 열심히 일궈서 작물을 많이 심었다는 점이다. 초록색 들판에 야자수도 많고 아주 기름져 보인다. 어떤 집에서는 낙타를 기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길거리는 깨끗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활기차 보인다. 반대편 시나이반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시나이반도의 사막은 황량함 그 자체이다. 거칠게 파헤쳐진 흙을 제외하면 어떤 살아 있는 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결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내 생애에 이렇게 황량한 풍경은 처음 보았다. 이집트가 이스라엘과의 완충지역으로 두기 위해 황량하게 비워놓은 것이다.
그런데 쌍안경으로 보니 이집트 제일의 수입원인 수에즈운하를 경비하기 위해서 이집트 군인들이 양쪽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근무를 서고 있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앉아서 책을 보는 군인도 있고 초소 안에 아예 침낭을 펴고 자는 군인도 있고 운하 쪽으로 등을 돌리고 잡담하는 군인도 있다. 운하 양쪽 전구간에 걸쳐서 소대, 중대, 대대 정도 되어 보이는 부대 시설들이 일정 간격으로 있다. 이제야 여기가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 수도 없이 전쟁을 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하 양쪽에는 몇 번의 전쟁을 기념하는 아주 크고 기괴한 기념비들이 있다. 1973년 10월의 중동전을 기념하는 비는 소총 총구에 대검을 꽂은 모양으로 돼 있는데 멀리서 봐도 규모라든지 모양이 엽기적이다. 해운의 입장에서 수에즈운하에서 벌어진 가장 황당한 일은 1967년 벌어진 아랍과 이스라엘의 6일전쟁의 결과로 1975년까지 운하가 폐쇄된 것이다. 이때 14척의 화물선은 8년을 운하에 갇혀 있어야 했다. 이 황량한 땅을 차지하기 위해 프랑스와 영국이 각축을 벌였고 미국도 개입했으며 이제는 무바라크를 쫓아내기 위해 격류가 흐르고 있다.
수에즈운하 중간에 대비터호(Great Bitter Lake)라는 큰 호수가 있는데 이곳은 많은 배들이 교행하기 위해 앵커를 내리고 기다리는 곳이다. 이때 운 좋게도 페가서스와 크기와 모양이 똑같은 자매선이라 할 수 있는 안드로메다가 앵커를 내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한 달을 페가서스를 타고 항해를 해도 배가 워낙 커서 이 배 자체를 사진 찍을 기회가 없었는데 안드로메다야말로 페가서스의 모습을 찍을 수 있는 기회다. 멀리서 보는 안드로메다의 선체는 늘씬하고도 풍만하다. 우리 배처럼 컨테이너를 완전히 가득 싣고 있어서 부피감이 가득 찬 느낌이다. 나는 안드로메다의 어떤 디테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갑판의 위아래로 뛰어서 오르내리며 미친 듯이 셔터를 눌렀다.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12시간 동안 난생처음 보는 신기한 광경들을 단 한 장면도 놓치지 않겠다고 디지털카메라와 비디오카메라로 번갈아 찍느라 정신이 없는데 페가서스는 어느덧 운하의 북쪽 끝인 포트사이드에 닿았고 날은 저물어 간다. 그러고는 다시 넓은 바다 지중해로 나아간다.
하루에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배는 40척 정도다. 길이 363미터, 재화중량 13만톤, 컨테이너 층수 10층인 페가서스가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비용은 대략 100만달러. 통행료치고는 아마 세계에서 제일 비싸지 않을까 싶다. 수에즈운하당국(Suez Canal Authority)이 나름의 공식에다 배의 길이와 무게, 적재한 화물의 높이와 부피 등 여러 가지 변수들을 대입하여 산출된 가격이다. 대낮에 통과하는데도 뱃머리에 램프를 달아야 하고, 그 램프를 관리하기 위한 이집트 기술자가 타야 하고, (물론 그를 위해 돈을 내야 한다) 좁은 운하를 지나야 하므로 파일럿이 두 명이 탔는데 한 사람은 전혀 일을 안 하고 자기 차가 한국 차라서 좋다고 자랑만 하고 있고, 구경꾼인 내가 보기에도 수에즈운하를 둘러싼 경제는 이상한 구석이 많다. 수에즈운하가 이집트의 독점물이니 어쩔 수가 없다. 기계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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