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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타이타닉이 정박했던 이스턴 독(동쪽 부두)에는 낡은 배만이 정박해 있다. 선장이 저곳을 가리키며 저기가 타이타닉이 정박했던 곳이라고 강조했을 때 그게 왜 뱃사람에게 중요한지 몰랐다. 이제는 알 것 같다. 타이타닉은 바다에서 고생하는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 가라앉아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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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준의 대양횡단 기계탐험기 15 - 숙연하게 만드는 사우샘프턴
2011년 2월17일. 예정대로라면 오늘 항해 여행의 종착지인 영국 사우샘프턴의 땅을 밟았을 시간이다. 그러나 페가서스는 아직도 지중해에 묶여 있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바다에 둥둥 떠 있는 드리프팅이 이렇게 지겨운 건 줄 정말 몰랐다. 시간이 해저에 가라앉은 무거운 닻처럼 가지 않는다. 그런데 브리지에 올라가 보니 선원이 의자를 바닥에 묶고 있다. 뭐하는 거냐고 물으니 이제 대서양으로 나가면 바다가 거칠어져서 배가 사방으로 심하게 흔들릴 테니 거기에 대비하는 거라고 한다. 브리지 한편에는 차와 과자가 준비되어 있어 언제든지 먹을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오늘은 커피와 설탕, 크림을 넣은 통들도 평소와 달리 한데 모아서 놓았다. 그러면서 내 컴퓨터와 카메라도 안전하게 묶어두라고 한다. 살짝 겁이 났다. 하지만 이 배는 세계에서 제일 큰 배고 선원들은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이다. 대서양 진입 때 높이 4m 놀 덮쳐작은 배들 ‘바이킹’ 탄듯 놀아나 오전 11시42분. 내 방에 앉아 있는데 배가 부르르 하고 떨리는 소리와 진동이 느껴진다. 주엔진이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출력 3천 마력의 발전용 디젤엔진은 항상 돌아가고 있지만 그 진동이나 소리는 객실에까지는 미치지 않는다. 출력 10만 마력의 주엔진은 다르다. 배 전체를 움직이는 주인공답게 주엔진이 돌기 시작하면 배 전체에 진동과 소리가 미친다. 브리지에 올라가 보니 배 진행 경로를 나타내주는 코스 방위각은 북쪽으로 311도, 출력은 풀 어헤드(full ahead: 전속전진)에 맞춰져 있다. 이제 지브롤터 해협을 향해 출발이다! 지중해는 보퍼트 윈드 스케일(영국인 보퍼트가 창안한 바람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로 0~12까지 있다)로 5 정도의 흰 파도들이 사방에 보이고 풍속이 시속 40노트 정도로 좀 거칠지만 대서양은 잠잠할 것이라는 예보가 있다. 선장은 드디어 항해가 다시 시작됐다고 로드 스튜어트의 <아이 앰 세일링>(I am Sailing)을 부른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롤링(흔들림)이 좀 심하다. 브리지로 올라가 보니 페가서스는 이제 대서양 한가운데로 나와 있고 북쪽 코스로 방위각 1도6분을 가리키며 북상중이다. 해도를 보니 막 포르투갈 리스본 앞바다를 지났다. 대서양에 들어서 처음 본격적인 놀을 만났다. 놀의 주기는 12초, 높이는 4미터 정도다. 원래 피해가려던 그 저기압이 소멸하면서 마지막 남은 에너지의 흔적인 이 놀은 바다라는 거대한 물의 덩어리가 가진 에너지라는 것이 얼마나 큰지 잘 보여주고 있다. 놀을 보면서 바다의 숭고미를 온몸으로 느낀다. 페가서스는 워낙 큰 배라서 움직임이 둔중하지만 작은 다른 배들은 놀이공원의 바이킹처럼 물속으로 선수가 곤두박질쳤다가 다시 떠올랐다가 하는 것을 반복한다. 아랍 역사가인 이븐 할둔의 이름을 가진 알제리 선적의 잡화선은 총톤수 5800톤밖에 안 되는 작은 배라 놀의 움직임에 완전히 놀아난다. 저 뒤에 따라오는 엠에스시(MSC)의 컨테이너선도 미친 듯이 피칭하고 있다. 이 바다에서는 페가서스만 평온할 뿐, 누구나 바다의 힘에 놀아나고 있다. 2월20일, 예정보다 3일 늦게 사우샘프턴 항에 입항하는 날이다. 무전기로 들려오는 사우샘프턴 항만 당국자의 목소리는 강한 영국 악센트의 여성이다. 그간 무전기에서 주로 중국식 영어와 아랍식 영어만 들어오다가 영국식 영어를 듣는 것은 처음이다. 영국에 가까이 왔다는 실감이 난다. 해도를 보니 어떤 곳은 수심이 2~3미터밖에 안 되는 곳도 많다. 처음에는 그 숫자가 수심을 의미한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사방이 개펄이라서 그렇다. 최대 흘수가 15.4미터나 되는 페가서스한테 얕은 바다는 죽음이다. 그래서 페가서스는 양쪽으로 설치된 부표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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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샘프턴 항에 내려서야 페가서스의 뒷모습 전체를 볼 수 있었다. 저 숭고미 풍기는 늠름한 모습을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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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샘프턴항에 내려서야
‘페가서스’ 앞머리 처음 봐 페가서스가 그 큰 몸집을 부두에 바싹 붙였을 때 나는 놀라운 모습을 보았다. 사우샘프턴에는 내가 이제껏 본 것 중에 제일 낡은 크레인이 버티고 서 있었다. 크레인들의 철판은 얇고 낡았으며 움직임은 매우 느렸다. 한 달간의 항해에서 알량한 안목이 생겨서 항구와 크기와 설비를 보면 낡은 곳인지 새로운 곳인지 어느 정도는 판단할 수 있게 됐는데, 사우샘프턴항은 컨테이너 터미널의 골동품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골동품인지는 나중에 상륙해서 해양박물관을 가보고 알게 되었다. 그 크레인들은 1912년 타이타닉이 출항할 때부터 있던 것들이다! 상하이나 홍콩 항이라면 고철로 버렸을 크레인이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을 본 나는 계속해서 ‘오 마이 갓’을 연발했다. 선장은 그런 나를 보고는 “영국에서는 모든 것이 오래됐다”고 말했다. 요즘의 갠트리 크레인은 이동할 때 ‘삑삑삑’ 하는 전자발진음의 경고음을 낸다. 그런데 사우샘프턴 항의 갠트리 크레인은 ‘때르르릉’ 하는, 그야말로 종을 울려서 나는 아날로그식 경고음을 낸다. 어릴 적 우리 집에 있던 구식 전화기에서 듣던 그 소리다. 순간 나는 아련한 과거로 초대받는다. 그것은 사우샘프턴이 나에게 주는 상징성으로의 초대다. 1912년 타이타닉이 비극의 처녀항해를 시작한 곳이 사우샘프턴이며, 1915년 루시타니아도 사우샘프턴에서 비극의 항해를 시작하여 독일 유보트의 어뢰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1, 2차 세계대전 때 수많은 영국의 젊은이들도 사우샘프턴에서 해군 함정에 몸을 싣고 출항하여 바다에 영혼을 묻었다. 영국의 록그룹 핑크 플로이드는 <사우샘프턴 독>(Southampton Dock)에서 나직하게 노래했다. “수많은 어머니들이 사우샘프턴 부두에서 아들들을 떠나보낼 때 수건만 흔들 뿐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라고. 그 노래를 들을 때는 사우샘프턴이 어떤 곳인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이 항구의 이름은 내게 조용하지만 무겁게 다가온다. 그 사우샘프턴에서 나는 그간 너무 많은 호의를 베풀어준, 평생 잊을 수 없는 다미르 후버 선장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육지에 발을 디뎠다. 한 달 만이었다. 그때 나는 페가서스의 앞머리를 처음 보았다. 페가서스는 상하이에서 탈 때와 마찬가지로 날렵하고도 거대한 모습을 한 채 나 같은 미물이 언제 탔었냐는 듯 숭고미에 휩싸여 있었다. 내가 기계비평가로서 초대형 컨테이너 선박인 시엠에이 시지엠(CMA CGM) 페가서스를 타보기로 한 것은 모든 것이 철저히 자동화되고 디지털화된 오늘날 항해에서 탐험의 판타지가 어떻게 변형되어 남아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한 달간의 항해 끝에 그 판타지가 깨진다고 해도 아쉬울 것은 없었다. 비평가가 이런 여행을 한다는 것 자체가 판타지가 깃든 지적인 모험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항해의 결론을 내릴 수 없다. 항해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므로, 평론가가 그에 대해 몇 마디 말로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너무나 건방진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항해와 선박에 대해 아는 것이란 너무나 피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 항해와 선박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지식의 힘을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항해를 계속해야 하는 모든 바다의 사람들께 항상 안전이 깃들기만을 바랄 뿐이다. <끝> 기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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