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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고용계약제 철폐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지난 4일 파리 바스티유광장에 모인 사회당 파리시당 당원들 500여명 뒤쪽에 바람이 빠진 채 떠있는 사회당 애드벌룬은 현재 사회당이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파리/류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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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새 격전장
사회당 정책없이 반사이익만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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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2007년 대선 정치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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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회당은 어디로 갔나? 프랑스 제5공화국 사상 최초의 좌파정권을 출범시켰던 제1야당 사회당은 두 달 넘게 프랑스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은 최초고용계약제(CPE) 반대 시위사태에서 대안세력으로서 위상을 보이지 못했다.
지난 4일 파리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 현장에 나온 사회당 당원들의 얼굴에도 그렇게 쓰여있었다. 마지못해 나온 듯, 다른 시위대와는 달리 열기를 느끼기 어려웠다. 바스티유광장 근처에서 모인 파리시당 당원 500여명 뒤쪽으로 떠있던 사회당의 바람 빠진 애드벌룬은 사회당의 오늘을 상징하는 듯했다.
이번 시위에는 지난 2003년 연금개혁 연금개혁 반대투쟁의 실패를 경험한 노조의 참여도 늦었지만, 법안의 의회통과를 사실상 방관했던 사회당의 참여는 더 늦었다. 3월14일 위헌소송을 제기한 뒤 3월말에야 거리시위에 참여했다. 학생-노조의 연대로 반대진영의 승리 분위기가 높아진 뒤에야 거리에 나섰다. 하지만 사회당의 유력 대선후보로 부상하고 있는 세골렌 루아얄(52)이 시위대와 어깨를 맞댄 장면은 볼 수 없었다.
법안통과 사실상 방관한 채 뒤늦게 시위 참가
“우파와 논리 같아” 좌파 지지도 오히려 줄어
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는 파리 10대학 학생운동조정위의 한 학생(정치사회학과 2학년)은 “사회당은 우리들과 노동자들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우파와 같은 논리를 편다”며 “현재의 사회당은 지도자도 없고 정부여당에 반대할 진정한 힘도 없다”고 극도의 실망감을 드러냈다.
지난 5~6일 여론조사기관 CSA가 실시한 여론조사는 국민들의 이런 정서를 그대로 보여줬다. ‘이번 시위로 입지가 강화됐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서 사회당은 53%에 그쳐, 이번 시위를 주도한 학생(67%), 노조(60%)에 뒤졌다. 사회당이 드빌팽 총리의 무리수로 어부지리를 얻은 집권 대중운동연합 총재인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과 똑같은 53%를 기록한 것도 우연치곤 공교롭다.
그렇다보니 내년 대선과 관련해 좌파 후보에 거는 프랑스 국민들의 기대는 줄곧 높았지만(표), 정작 시위 기간 내내 좌파 후보에 대한 지지도는 오히려 줄어드는 기현상을 보였다. 사회당은 사르코지 내무장관 등 우파후보에 맞설 변변한 후보조차 없다가 올해 초 신선한 이미지의 여성후보 루아얄이 급부상했는데도, 정작 시위 사태 동안에는 좌파후보에 대한 지지도는 줄어든 것이다.
제도권 좌파정당인 사회당과 공산당은 우파의 곤경을 즐기는 ‘방관자’로 비친다. 이들은 11일 최초고용계약제 대체입법을 논의하는 국회 사회분야 상임위 토론에도 불참했다. 16~25살 비숙련 노동자의 취업시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한 대체법안은 12일 하원(총 577석 중 우파 393석)에서 다수 의원의 불참 속에 찬성 151표, 반대 93표로 통과됐다. 대체법안 협상도 여당과 노조 간에 이뤄졌고, 사회당 등 야당은 배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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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선에서 어느쪽 후보가 당선됐으면 좋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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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대선의 최대쟁점이 될 실업대책에서 사회당은 아직 변변한 대안이 없다. 알랭 베르구니우 사회당정책연구소장은 “지난해 11월 전당대회에서 결정한 대로 오는 6월 대선정책을 내놓을 예정”이라며 “서둘러 정책을 내놓을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2002년 대선에서 처음으로 결선투표에 나서지 못한 데 이어 지난 총선에서도 참패한 사회당은 여전히 ‘패배주의적’이고 ‘기회주의적’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회당이 고려하는 경제정책과 노동정책도 신자유주의를 수용했다가 실패한 사민주의, 이른바 ‘사민자유주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 좌파 지식인은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제1서기장에게 ‘집권하게되면 우파의 정책을 다 뜯어고칠 것이냐’고 묻는다면 ‘뭐, 폐기하는 것은 아니고 잘 해보겠다’라는 정도의 대답만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올랑드의 부인인 대선후보 루아얄은 공개적으로 ‘제3의 길’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사회당은 최초고용계약제 사태로 우파정권이 지리멸렬해진 황금 같은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은 않고 있다. 우파 정부의 실정이라는 반사이익에만 기대는 형국이라는 게 정치평론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루아얄의 개인적 인기만이 사회당의 희망으로 부상한 상황이다.
좌우의 정책적 대립구도는 이미 지난 2002년 대선에서 깨졌다. 당시 사회당 후보로 출마했던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을 내놓기는커녕, 경쟁력 강화라는 명목으로 우파와 비슷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다가 극우파 장마리 르펜에게도 뒤져 결선투표에서 탈락했다. 이런 결과는 사회당이 프랑스의 좌파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줬을 뿐이다. 내년 대선에서도 극우파 르펜과 극좌후보들의 약진이 예상되면서, 정당 대결보다는 보수여당과 사회당 후보 간의 개인적 인기대결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루아얄은 극좌쪽으로 기우는 좌파 지지표를 끌어모으기 위해 포퓰리스트적 공약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런 공약은 프랑스 사회의 고실업률 등 경제적 고질병에 대한 처방은 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안 없이 흔들리는 사회당의 모습은 현실사회주의 정권이 붕괴된 뒤 대안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유럽 사민주의 정당들의 공통의 고민을 반영하고 있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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