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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0.17 18:23 수정 : 2011.11.11 09:05

명동 지도. 사람들의 일반적인 의식 속에 존재하는 명동은 엄격하게 말해 ‘명동거리’라고 해야 정확하다. 행정동 명동은 훨씬 더 넓고, 중심상업지구로써 명동은 그 범위가 가장 좁다고 할 수 있다.

‘도시 공간과 사람, 명동 이야기’ 실험 프로젝트
<3회> 공간과 사람들

명동거리는 을지로입구역에서 시작해 을지로 2가 사거리~ 퇴계로 2가 교차로~ 회현 사거리를 꼭짓점으로 잇는 큰길에 둘러싸였다. 마치 큰 도로로 사방이 포위된 도심 속 섬과 같은 구조다. 지하철, 버스 등 발달한 교통 여건과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서울은 물론 대한민국 최고의 상권을 이루고 있다. 매년 전국 표준 공시지가 발표에서 1위부터 10위권을 싹쓸이하고, 가장 많은 유동인구를 기록하는 등 1등 상권의 위용을 자랑한다. 한때 명동개발과 신도시 상권 등의 팽창으로 1등 상권 자리를 위협 받기도 했으나 2000년대 후반 엔화 강세로 상징되는 환율과 한류, ‘화장품 붐’ 등 ‘3풍’을 타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서울 도심의 섬’… 미로 속에 판을 벌인 대한민국 1등 상권

명동거리에는 모두 660개의 건물이 있는데, 대부분 5층 미만의 저층 건물이다. 6층 이상 고층 빌딩과 명동성당은 큰 도로와 접한 경계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명동거리의 중심상업지구를 방어하는 울타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는 건축법상 도심지역 고도제한에 묶인 탓이다. 외곽 지역에만 90m 이상 고층 건물을 지을 수 있고, 내부로 들어갈수록 높이 제한을 둬 가장 안쪽에는 20m 높이만 지을 수 있다.

좁고 긴 형태의 세장형 필지에 지어진 저층 건물은 명동을 대표하는 건축 형태다. 건폐율을 적용 받지 않던 시절 지어진 건물들이라 토지면적에 거의 근접해 건물을 올렸다. 건폐율이 99%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건물을 새로 짓거나 증축을 하면 건물 면적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지주들 입장에선 현재의 임대수익도 보장받을 수 없게 된다. 신축이나 증축이 원활하지 못해 명동에 오래되고 낡은 건물이 오랜 세월 방치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2006년 서울시가 명동에 일반상업지구가 아닌 중심상업지구의 건폐율(신축시 90%, 증축시 80%)을 적용하기로 함으로써 개발에 숨통이 틔었다. 세입자들과 갈등을 빚었던 명동 3지구 재개발은 이런 배경에서 추진되었다.

땅 싸움이 자본 싸움… 공간의 서열화

명동의 공간들. 왼쪽부터 영업중인 화장품 가게, 새 단장을 위해 공사가 한창인 건물, 철거를 앞둔 명동 마리.
유동인구와 상권 면에서 밀집도가 가장 높은 중심상업지구는 명동거리를 가로지르는 2개의 큰길(명동길과 중앙길)을 중심으로 ‘T’자 모양으로 형성되었다. 중심상업지구는 다시 큰 건물을 끼고, 그물망처럼 뻗은 작은 길들이 구획을 나누고 있다. 작은 길 사이에는 다시 골목이 실핏줄처럼 얽혀 있다.

큰길을 중심으로 형성된 중심상업지구에는 화장품 매장, 커피 전문점, 패션 매장, 신발 매장 등 대기업이나 브랜드 매장이 차지하고 있다. 비싼 임대료를 물고 대기업이 앞다퉈 명동에 매장을 여는 것은 브랜드 홍보효과와 안테나 매장 효과를 노리기 때문이다. 행인들은 명동에서 상품을 만져보고, 브랜드를 인지하면서 실제 구매는 인터넷과 홈쇼핑에서 하기도 한다. 명동거리의 쇼윈도는 어떤 매체보다 강력한 홍보 효과를 지닌다. 하루 유동인구가 100만명이 넘는 곳이라 제품을 전국적으로 내놓기 전에 소비자들의 반응을 미리 살필 수도 있다. 명동거리 매장은 그것 자체로 거대한 쇼윈도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자본은 중심상업지구를 장악한 동시에 외곽지역을 포섭해 가고 있다. 지리학자들은 “공간에는 역사적 관성이 있다”고 말한다. 소비자들의 공간 기대 현상 탓에 특정 업종이 망한 자리에 동일한 업종이 그 자리를 채운다는 것이다. 그러나, 명동에서는 같은 업종으로 바뀌더라도 업체는 대기업으로 바뀌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자영업자가 하던 옷 가게가 망한 곳에 브랜드 매장이 치고 들어가는 양상이다.


명동 화장품 매장이 확산되는 과정도 자본의 공간 포섭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화장품 매장들은 중심상업지구에 세운 1호점을 교두보 삼아 외곽 지역으로 5~6호점까지 확산시키는 전략을 폈다. 이는 화장품 업체 내부의 치열한 경쟁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동시에 명동 전역을 화장품 매장화함으로써 집적 효과(클러스터)를 누리는 부수적 이득도 얻는다. 명동을 ‘화장품 특구화’함으로써 화장품 업체 전체의 매출이 상승하는 것이다.

중심상업지구를 대기업에 내준 소상인들은 점차 변두리로 밀려나거나 임대료가 저렴한 다른 상권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인다. 중심상업지구에서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 특히 관광객들에게 노출되지 않는 공간은 철저히 ‘비명동적인 업종’(먹고, 마시고, 꾸미는 것을 제외한 업종)이 차지한다. 철물점, 양품점, 보신탕집, 사채업 사무실 등이 그것이다.

쓸데없이 버려진 땅은 없다

업종별로 점유하는 건물도 다르고, 건물 안에서 점유하는 층수도 다르다. 한 건물의 간판 모습.
명동에서는 단 한 뼘도 쓸데없이 버려지지 않는다. 모든 공간은 이용자들의 창조적 변형을 거쳐 소비를 촉진하는데 최적화돼 있다. 목이 좋은 건물 1층은 2~3개 업체가 쪼개 쓰고, 대형 매장들은 건물의 1~2층을 터 복층으로 쓰기도 한다. 1층은 옷 가게가 쓰고, 2층은 커피 전문점이 쓰면서 손님을 끌어모으고, 휴게 기능을 통합한 공간구성으로 서로 기능적으로 보완하기도 한다. 공간을 둘러싼 치열한 투쟁은 밑바닥 상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노점들은 치열하게 빈 공간을 파고든다. 건물과 건물 사이 조금이라도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있으면 그곳은 어김없이 노점이 차지한다.

같은 건물이라도 층수에 따라 공간 구성은 전혀 다르다. 가령 5층짜리 건물이라면 보통 1층이 임대료가 가장 비싸고, 2층과 지하, 3, 4, 5층으로 갈수록 임대료가 싸진다. 임차인이 바뀌는 주기도 임대료 차이와 일치하는 경향을 보인다. 1, 2층은 손님도 많고, 장사가 잘되지만 상대적으로 비싼 임대료 때문에 수지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유행을 타는 화장품, 신발가게, 옷 가게 등은 주로 1, 2층에 있다. 반면 고층으로 갈수록 단골이거나 목적성이 명확한 업종이 분포하는 특징이 있다. 병원, 피부마사지숍, 사주카페, 부동산 등의 업종이 분포한다.

명동의 한 건물 관리인은 이런 공간 구성과 관련해 “명동에 관광객이 늘고, 매장의 브랜드 홍보 효과가 극대화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라며 “자영업자가 망한 자리를 큰 기업 매장이 차지해 명동에 사장 대신 직원만 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오래다”고 전했다.

명동성당 흐름의 방해자? 또는 다양성의 울타리

명동성당 울타리의 발견. 여기를 보면서 처음으로 명동의 공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간은 흐른다. 명동성당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흐름을 차단하고 있었다.
공간 관찰에서 눈여겨볼 만한 곳이 명동성당이다. 단일 기능으로 가장 넓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명동성당은 존재 자체로 상업 기능과 전혀 다른 종교 기능을 명동이라는 공간에 불어넣는다.

보행자 이동과 흐름이라는 측면에서 명동성당을 관찰해도 이채롭다. 명동거리의 울타리이자 안팎의 흐름을 차단하는 장벽의 구실을 동시에 한다. 명동성당 담벼락을 끼고 있는 삼일로 입구와 충무로2가, 명동10길 등이 명동거리에서도 가장 인적이 드물다. 당연히 상업 기능이 가장 덜 발달한 곳이다. 이 지점에 철물점, 학원, 고시원, 비디오 가게, 한식당 등 명동과 어울리지 않을 듯 한 업종이 밀려나와 있다. 호프집 네온사인 너머로 보이는 명동성당의 십자가가 공간의 역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명동성당은 명동이 획일화하는 것을 막아 거리의 기능을 다양화하는 구실도 있다. 번잡한 중심부와 달리 인적이 드문 삼일로는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그나마 유일한 길이다. 문학단체인 ‘포엠광장 문학아카데미’(회장 권녕하)는 삼일로 길의 풍경에 반해 1년 전 인사동에서 삼일로창고극장 옆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권녕하 회장은 “길 좌우로 명동성당과 영락교회가 있고, 정면으로는 평화방송과 남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명동은 물론 서울에서도 이처럼 성스럽고 사색하기 좋은 길은 드물다”며 “명동에 그나마 이런 길이 남아 있는 것이 다행이자 축복”이라고 말했다.

명동의 업종별 분포 특성
금융 사무실 기능이 다수, 화장품 매장이 접근성 가장 좋아

명동 외곽 빌딩에 분포하는 사무실은 명동에서 가장 많이 분포하는 기능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특성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식되지 않는다.(왼쪽 사진) 거리의 화려한 상가와 달리 명동 뒷골목은 전선과 가스선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보이지 않는 명동의 또 다른 모습이다.(오른쪽)
명동거리에 어떤 업종이 분포하고, 업종별로 점유하고 있는 공간의 차이는 어떨까? 이와 관련한 가장 최근의 학계 연구가 ‘서울시 명동의 시간대별 활성화 지구 분석’(김선아 서울 신목고 교사, 2010년 2월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학위 논문)이다. 이 논문은 명동에 입점한 매장을 기능별로 구분해 특징을 분석했다. 2009년 2월 기준으로 명동의 기능체 3,500여개 가운데 현지 조사가 가능한 2,667개를 대상으로 △업종별 공간 점유 형태의 차이 △활발하게 움직이는(활성화) 시간 △다른 업종과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관련 공간 맵: 명동의 용도별 공간 분포

첫째, 명동을 구성하는 주요 기능체는 사무실 기능(29.0%)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일반사무실, 금융업, 법률·회계 관련 사무기능이 포함된다. 그다음으로 요식업 기능(16.3%), 의류 판매업(11.9%)이 뒤를 이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소비의 공간과 달리 명동은 직장인들의 업무 공간 비중이 크다는 뜻이다.

둘째, 업종에 따라 시간대 별로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간이 달랐다. 주로 낮과 이른 저녁에는 사무실, 요식업, 의류 판매업 기능이 활발했다. 깊은 밤(22~24시)에는 요식업, 카폐, 숙박업 순으로 활발했다.

셋째, 업종별로 주요 도로에 가까운 정도를 따졌을 때 화장품 매장이 도로에 접한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명동에서 가장 활발한 업종으로 인식되는 화장품 매장은 이 조사에서 76개로 비중이 2.8%에 불과했다. 그러나, 소비자가 기능체를 이용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접근성이 가장 뛰어났다. 화장품 매장은 수는 적지만, 눈에 더 잘 띄어 활성화된 업종으로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반면, 외곽 빌딩에 분포하는 사무실은 가장 많은 기능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특성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식되지 않는다.

김선아 교사는 “눈으로 보는 명동과 보이지 않는 명동은 차이가 있다”며 “길거리 명동이 먹고, 입고, 꾸미는 기능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외곽 건물 곳곳에 사무 기능이 숨어서 명동의 다른 모습을 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간 너머 명동

그렇다면 앞으로 명동은 어떻게 변할까? 공간은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꾸미고 변화시킨다. 최근 외국 관광객이 늘면서 명동 주변에 숙박시설이 부족한 것이 현안으로 떠올랐다. 그러자 밀리오레, 엠플라자 등 고층 빌딩의 위층을 숙박시설로 전환하는 리모델링 계획이 나왔다. 공간이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또 건물 신축과 증축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는 작은 필지를 여러 개 묶어 지구단위 개발을 추진하는 것도 비슷한 사례다. 명동은 개발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고 있다.

공간을 재배치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갈등이 뒤따른다. 명동 3지구 개발을 둘러싼 최근 논란은 이를 잘 보여준다. 명동은 특히 작은 필지단위로 쪼개져 땅 주인이 나뉘어서 지주들간 이해관계 조정이 쉽지 않다. 영세 상인들의 생계를 보장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명동을 지켜본 사람들은 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에 큰 이견이 없다. 공간 활용이 불균형하고 계층화돼 있어 명동 안에서도 지역간 편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또 낡은 건물은 화재 등에 매우 취약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상업주의적 개발에 치중하다 보면 도시 기능이 획일화해 오히려 상권이 침체되기도 한다. 소비의 공간으로서 명동이 화장품, 의류 등의 상업적 기능만 비대해지다 보면 장기적으로 명동의 활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 외국 관광객들의 저변이 넓어질수록 쇼핑보다는 문화를 즐기는 쪽으로 흐름이 바뀌는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 결국 ‘거리 백화점’을 넘어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명동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명동에서 가장 이채로운 공간 명동성당. 명동성당 담벼락이 있는 10구역에서 보면 상가 간판 사이로 보이는 명동성당 십자가가 이채롭다.

기획: 신기섭·박종찬 | 글, 사진 취재·편집: 박종찬 pjc@hani.co.kr | 지도·슬라이드: 신기섭 | 개발지원: 원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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