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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0.19 19:14 수정 : 2011.11.09 18:14

명동거리 주변 지도. 사람들의 일반적인 의식 속에 있는 명동은 엄격하게 말해 ‘명동거리’라고 해야 정확하다. 명동1, 2가동 등 여러 ‘법정동’을 포함한 ‘행정동’으로서 명동은 훨씬 더 넓고, 중심상업지구로서 명동은 그 범위가 가장 좁다고 할 수 있다.

도시 공간과 사람, 명동 이야기’ 실험 프로젝트
<3회> 사람과 공간
보조 1: 행정동 ‘명동’과 ‘명동거리’는 달라

“명동성당을 기준으로 저쪽은 명동이고, 이쪽은 저동이에요. 나는 ‘명동 사람’이 아니라 ‘저동 사람’이라니까요.”(저동에서 태어난 변아무개씨)

“진짜 명동은 달러골목이라고 할 수 있지. 예전엔 여기가 명동의 중심이었다니까.”(옛 ‘달러골목’ 시계 수리방 아저씨)

“넓게 보면 여기도 명동이지요. 실제 여기도 행정동으로 명동이니까요.”(중구문화원 김동주 총무과장)

‘명동 사람’들도 명동 경계에 대한 해석이 각각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명동일까?

일반적으로 사람들 의식 속에 명동은 을지로입구역에서 을지로 2가 사거리~퇴계로 2가 교차로~회현 4거리를 꼭짓점으로 잇는 큰길 안쪽의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변씨처럼 명동을 명동성당을 경계로 저동과 나눠 장사가 잘되는 중심상업지구로 볼 수도 있다. 이 경우라면 명동1, 2가동, 범위를 넓히더라도 충무로 1, 2가동 정도가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행정구역으로 보면 명동의 범위는 이보다 훨씬 넓다. 명동이라는 동명의 유례는 조선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성부가 행정구역을 설정하면서 남부 명례방의 ‘명’자를 따 ‘명례방’, ‘명례방골’이라고 부르다가 줄여서 명동이라고 불렀다. 그 뒤 일제 때 행정 단위인 ‘정회’를 설치하면서 명치정이라고 했다가 광복 뒤 명동이라는 이름을 되찾아 명동 1가, 명동 2가, 충무로 1, 2가 일부 지역의 행정을 맡았다. 그 뒤 서울시 조례 등에 따라 여러 차례 동이름 변경이 이뤄지면서 명동 관할구역이 변화를 겪는다.

오늘날 명동 행정구역이 확정된 것은 1998년 9월14일 정부조직 개편에 따른 결과다. 당시 장교, 무교, 다, 태평로 1가, 을지로 1, 2가 일부, 수하, 수표동이 명동에 편입되었다. 따라서 행정동으로 명동은 명동 1, 2가와 충무로 1, 2가, 저동 1가를 중심에 놓고 위로는 청계천을 경계로 태평로 1가 일부와 장교동을 잇는 구역과 아래로 남산동 1, 2, 3가, 예장동을 포함한 지역까지 확대된다. 실제 명동 행정의 중심이 되는 명동주민센터도 밀리오레 맞은편의 남산동 2가 9-6번지에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의 일반적인 의식 속에 존재하는 명동은 엄격하게 말해 ‘명동거리’라고 해야 정확하다. 행정동 명동은 훨씬 더 넓고, 중심상업지구로서 명동은 그 범위가 가장 좁다고 할 수 있다.


▶링크: 명동의 용도별 공간 분포

기획: 신기섭·박종찬 | 글, 사진 취재·편집: 박종찬 pjc@hani.co.kr | 지도·슬라이드: 신기섭 | 개발지원: 원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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