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1.21 17:17
수정 : 2011.11.21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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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키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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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의 일본시골문화여행기 4 ‘대지진’ 후쿠시마의 고시키누마
원전 사고에도 관광객 ‘북적’…“방사능 라멘” 농담도
1년 전과 변함없이 아름다운 풍경, 두려움 잊고 만끽
지난 10월 말경 후쿠시마현을 다녀왔다. 아이즈와카마츠, 반다이 고원, 이나와시로의 관광 명소인 고시키누마(五色沼)에 잠시 들렀다. 후쿠시마현이라면 혹시? 그렇다.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원전이 폭발하면서 생지옥이 되었다는 바로 그곳이다. 방사능 위험을 경고하는 뉴스 보도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그 지역에서 나는 심호흡을 하고, 음식을 먹고 돌아왔다.
사실 내가 들린 곳은 후쿠시마현의 서쪽 지역으로 원전 사고가 난 지역과는 제법 거리가 있다. 또 산맥을 넘어야 해서 방사능 노출에 대해선 제멋대로 해석을 하고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원래 위험에 대해서 무감각한 것도 있고, 1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 좋은 추억을 가지고 돌아갔기에, 꼭 다시 한 번 와보고 싶었다. 사고 이후에 오게 될 줄은 몰랐다만, 여하튼 꽤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아이즈와카마츠로 가는 길은 산을 넘는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놀랍도록 평화로웠다. 원전 폭발이란 최악의 사고가 일어났는데, 이건 예상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산허리를 돌고 도는 길은 마침 단풍이 물들어가는 중이어서 화려한 색깔을 뽐내고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대하니, 감탄과 더불어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방사능이 이곳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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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같은 풍광의 고시키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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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호수 아래엔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득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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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가 가까워지면서 도로 위엔 많은 차량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꼬리를 물고 길게 늘어진 자동차 행렬은 이상했다. 설마하니? 방사능의 여파로 다른 현으로 피신을 하는 걸까? 그러기엔 시기가 적절치 않다. 그 차량들은 주말을 맞이해 관광 명소를 찾는 행락객들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접한 뉴스 보도는 충격과 공포의 감정을 유발하는 것들인데, 이건 대체 뭘까?
맨 먼저 들린 곳은 6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츠루가조(鶴ヶ城)’였다. 아이즈와카마츠의 상징물인 성이다. 우아한 건축물을 보는 것 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전국에서 몰려온 관광차들로 빼곡했고, 유명 관광지에서 흔히 보는 많은 인파들로 넘쳐났다. 안전 불감증의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기도 하고, 뭔가 뭔지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츠루가조’를 돌아보는 동안 방사능에 대한 우려는 신기루처럼 날아갔다.
눈에 보이는 위험이 전부는 아닌데, 이곳 분위기는 그냥 평범했다. 특별할 것도 없고 이상할 것도 없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일상의 풍경 같은. 사람들은 좋은 구경을 했다며 즐거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심지어 도쿄에서 흔히 보는 마스크를 쓴 사람도 보기 힘들었다. 마스크를 쓴다고 해결이 될 문제는 아니지만 말이야.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 사람들은 무서운 농담을 주고받았다.
“아! 이건 방사능으로 만든 라멘입니다”
“이 생선도 방사능에 오염이 되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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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현의 대표적인 관광지 츠루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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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은 그렇게 하면서, 사람들은 음식을 잘도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난 생선은 먹지 않았지만 라멘은 국물 한 방울까지 싹 비웠다. 원전폭발이 충격적인 게 아니라,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돈을 들여서 굳이 이곳 관광지를 찾고 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후쿠시마현을 대표하는 관광명소인 ‘고시키누마’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고시키누마’는 태양 빛에 따라 다섯 가지 빛깔로 변한다는 오묘한 호수다. 유명세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절경이다. 에메랄드빛 호수, 조각배를 타고 호수를 거니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다. 호수 가까이로 내려가니 투명한 물속으로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헤엄을 친다. 방사능 오염에 모습이 변한 물고기가 있는지 유심히 살폈지만, 멀쩡한 놈들뿐이다. 그냥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을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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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키누마를 찾은 관광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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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간 넋이 나가있다 북적이는 인파들로 눈을 돌렸다.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여행이라도 온 걸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고시키누마’의 아름다움에 취해 버렸다. 두려움도 공포도 없다. 여행을 하면서 풍경이 아닌, 사람 그 자체를 관심 있게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외국인들도 더러 보였다. 사고 지역과 떨어진 곳이어서 안전하다고 생각해서일까? 그 이유는 모르겠다.
1년 만에 다시 찾은 이곳은 적어도 눈에 보이는 풍경은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관광객은 작년 시즌보다 줄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후쿠시마현에 다녀왔다고 하니, 지인들은 괜찮은지를 물었다. 대답할 말은 하나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글·사진 김종철 문화여행자 rawdel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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