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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1.29 18:34 수정 : 2011.12.02 20:22

돌계단을 오르는 사람을 통해 삼나무의 거대함을 느낄 수 있다.

김종철의 일본시골문화여행기 <5> 하구로산 삼나무 숲길
하늘 뚫을 듯 키 큰 나무가 ‘빼곡’…휴지통 하나 없을 만큼 최소한 개발

몇 년 전부터 전국이 걷기 열풍이다. 열풍에 동참하지 않아도 사람은 죽을 때까지 걸어야 할 운명이다. 일을 위해서 건강을 위해서, 정신수양을 위해서건 많은 이유들이 있다. 걷는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땀이 나도록 걷고, 맞는 시원한 바람은 쉽게 중독된다. 그래서 여행의 기본은 걷는 것에서 시작된다. 어느 도시의 골목이나 시골의 들판, 숲길까지 걸을 수만 있다면 좋은 여행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야마가타현 츠로우카시에 위치한 하구로산(羽黒山)은 갓산, 유도노산과 함께 데와삼산(出羽三山)의 하나다. 일본의 산악신앙 중에서도 역사가 오래된 곳으로, 지금도 수행을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여행자들에겐 가벼운 트래킹 코스로 좋은 곳이다. 단순히 좋다는 표현으로는 많이 부족한데, 직접 가보면 ‘죽기 전에 가봐야할 곳’의 의미를 알게 된다. 그러니까 당신이 하구로산을 보기 위해서라도 야마가타현을 방문할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게 상대적인 것이지만, 이곳은 취향이란 게 없다. 걷다보면 감동의 전율을 맛보게 될 터이니.

거대한 삼나무 사이로 보이는 국보 고쥬노토.

하구로산은 삼 년 전 처음 찾았던 곳이다. 일주문을 통과해 계단 길 앞에 섰을 때 숲의 풍경에 압도 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이곳에 다녀온 많지 않은 한국인들과 하구로산을 얘기하면, 한 목소리가 된다. “거긴 정말 멋진 곳이에요. 다시 가보고 싶어요” 과장할 필요도 없이 하구로산은 정말 끝내주는 곳이다. 입구부터 펼쳐지는 거대한 삼나무 숲의 풍경은 현실을 벗어난 착각에 빠지게 했다. 수백 년을 자리를 지켜온 삼나무 군락, 그 사이로 곧게 길게 뻗은 길을 사뿐사뿐 걸어가며 얼마나 감동을 했었던지. 길을 걷는 와중에도 꼭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곳이다.

그 하구로산을 두 번째로 찾았다. 출발지점인 츠로오카역에 도착했을 때부터 설렘에 가벼운 흥분을 느꼈다. 이미 갔던 곳을 다시 찾으면서 이런 감정은 흔치 않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렸다. 몇 개의 마을과 들판을 지나, 삼 년 전에 본 입구에 이르렀다. 하구로산 탐방 코스는 두 가지다. 입구에서 일주문을 지나 올라가는 길, 산 정상까지 버스를 타고 올라 반대로 내려오는 길을 택할 수 있다. 처음 찾았다면 올라가는 코스를, 두 번째라면 내려가는 코스를 택하면 된다.

하구로산의 휴식터인 중간 매점.


입구에서 조금 내려가면 짙은 그늘이다. 아무리 해가 쨍쨍한 날이어도 숲길은 어두울 정도다. 해가 비집고 들어올 틈을 주지 않을 정도로 삼나무가 빼곡하다. 계단을 내려서면 전망이 트이면서 경치가 좋은 곳이 나온다. 다리를 건너 조금만 걸어가면 하구로산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삼나무를 만난다. 이곳 삼나무들은 워낙 덩치가 좋아서 비슷해 보이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 큰 놈이 있다. 천년이 넘은 삼나무는 하늘에 구멍을 낼 것처럼 쭉 뻗어있다. 높이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꼭대기를 불려니 목이 부러질 것 같고, 둘레는 몇 사람이 손을 잡고 돌아야할지 모를 정도다.

일본 어디를 가나 삼나무 숲은 쉽게 만나지만, 이런 경치는 흔치 않다. 크기를 보여주기 위해선 사람과 같이 사진을 찍으면 좋은데, 혼자 다니다 보니 그럴 기회가 없다. 이 나무 뒤쪽으로 국보인 ‘고쥬노토(五重塔, 5층 목탑)’가 있다. 예전에 왔을 땐 아무 보호시설이 없었는데, 이젠 울타리가 만들어져 있다. 옛날엔 하구로산 근처에 사는 아이들의 놀이 장소로, 탑 주위를 돌며 기어오르곤 했었다고. 국보의 개념이 없었던 시절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 아이들이 노는 상상을 해보면 꽤나 근사한 그림처럼 느껴진다.

고쥬노토가 있는 곳에서 조금 들어가면 본격적인 계단길이다. 아래서 보면 까마득하게 보여, 저길 언제 다 올라가나 지레 겁낼 필요는 없다. 하구로산은 부담 없이 걷기에 좋은 곳이다. 산이 높지 않고 험하지 않다. 높이는 고작 414m에 불과하고, 정상까지 이어지는 돌계단 길은 2,446개로 총 1.7km의 거리에 불과하다. 잘 걷는 사람들은 짧게 느껴질 법도 하다. 계단길이 고행처럼 보일지 몰라도, 막상 걸어오면 어렵지 않다. 주변 삼나무 숲의 풍경이 워낙 대단해서 쉬엄쉬엄 구경을 하며 걷노라면 정상은 금방이다. 가뿐하게 통과를 하고자 한다면, 정상에서 거꾸로 내려오면 된다. 계단이 높지 않아 내리막길이 계속 되어도 무릎에 무리가 없다

잘 닦여있는 길은 산책하는 기분이 들 정도다.
.

길 중간 정도에 이르면 매점이 나온다. 하구로산을 오르는 코스에서 휴식할만한 장소는 딱 하나뿐이다. 여기서 말차와 떡을 먹고 잠깐 쉬어가면 좋다. 목적지를 위해서 마냥 걷기만 하면,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걸을 때와 쉴 때의 감정과 생각은 다른 법이니, 서둘지 말고 여유를 가지면 좋다. 게다가 참배로 코스에서 이곳이 전망을 가진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이제 계단의 경사가 심해진다. 길은 짧지만 숨이 턱에 차오를만한 길이다. 삼 년 전 이곳을 오를 때는 땀을 한 바가지 쏟아냈던 기억이 난다. 하구로산은 숲이 워낙 우거져 햇살이 들어오는 구간이 많지 않다. 나무 사이로 햇살이 들어올 때면 신비한 풍경이 만들어진다.

삼나무 숲길은 외길이다. 길이 잘 닦여 있어 헤맬 걱정도 없다. 간혹 숲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나오곤 하는데, 그냥 지나치면 좋은 볼거리를 놓친다. 숲 안쪽에서 산악신앙지의 흔적을 만나게 된다. 한국에서 흔히 보는 민간신앙의 그것과 비슷하다. 돌을 깎아 만든 불상도 있고, 크기도 다양하다.

경사 급한 계단 길이 끝나는 지점에 붉은색 도리이가 있다. 여기를 통과하면 하구로산의 정상이 지척이다. 하지만 보통 산을 오르면서 만나는 정상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탁 트인 전망이 없다. 삼나무가 모두 가리고 있으니 볼수도 없다. 정상 부근에는 데와 삼산의 신을 함께 모시는 ‘산진고사이덴’이 있다. 건물의 풍채가 남다르다. 특히 엄청나게 두꺼운 지붕이 인상적이다. 2.1미터의 새풀 지붕은 직접 봐야 느낌이 온다. 정상 부근에 구경거리가 많아 시간을 넉넉히 잡고 돌아보면 좋다.

하구로산은 단순히 걷는 길을 넘어서, 성스러움이 느껴지는 산이다. 또한 최소한의 개발로 숲을 유지하며 관리하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삼 년 전과 지금의 하구로산은 큰 변화가 없다. 고쥬노토에 울타리가 생겼고, 정상 부근에 건물 공사를 하는 정도만 다르다. 입구에서 정상에 오르는 계단 길은 휴지통 하나 없다. 길을 걸으며 휴지 조각 하나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깨끗함이 인상적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에 이곳을 찾았을 때도 변화가 없기를 바란다.

글·사진 김종철 문화여행자 rawdel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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