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1.12.21 15:09 수정 : 2011.12.21 15:09

키라키라우에츠 도시락.

김종철의 일본시골문화여행기 <7> 에키벤
열차 타고 식도락 여행…종류 3000가지 맛도 일품
지역 대표 식재료로 문화 ‘냠냠’…창 밖 낭만은 ‘덤‘

일본 여행중 열차 이용을 하면 흔히 보는 것이 도시락을 까먹는 사람들이다. 열차를 타기 전 많은 사람들이 가판대에서 도시락을 구입한다. 열차가 출발하면 느긋하게 도시락과 맥주를 마시며 식도락을 즐기는 사람들. 자주 보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열차를 이용할 때면 늘 이 광경을 흥미롭게 바라본다. 열차가 주는 낭만과 로망의 요소 가운데, 에키벤(?弁)은 두 번째 비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일본 여행에서 반드시 해봐야할 식문화 체험으로 에키벤(驛弁)이 빠질 수 없다. 에키벤은 철도역과 열차 내에서 판매하는 도시락을 말한다. 종류도 많고 워낙 다양해서, 처음 대하면 신기할 정도의 문화 체험이다. 국내 열차 여행에서도 도시락은 판매되고 있지만, 질과 양적인 면에서 도무지 비교대상이 아니다. 현재 일본 전국적으로 3천개가 넘는 종류의 에키벤이 팔리고 있다고 한다. 매일 한 개씩 사먹어도, 거의 10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 규모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니가타현에서 야마가타현을 통과하는 관광열차 키리키라우에츠.
에키벤의 역사는 에도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지방의 특색 있는 문화들이 굉장히 발전했는데, 에키벤 역시 그 영향을 받았다. 에키벤의 역사는 시로키야 여관에서 1885년 우츠노미야 역에서 주먹밥과 단무지를 대나무 껍질로 싼 것이 시초라고 한다. 여기서 발전을 하면서 도시락 형태의 모양을 갖추게 되었고, 1890년 히메이지역에서 판매를 하면서 본격적인 에키벤의 시대가 도래했다. 100년을 훌쩍 넘기는 도시락의 역사. 놀랍고도 부러운 식문화가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9권이 발매된 하야세 준의 <에키벤:철도 도시락 여행기>란 만화를 보면, 일본 에키벤의 세계를 일부 엿볼 수 있다. <에키벤...>는 특별한 이야기를 담은 만화는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 전역을 돌면서 에키벤 하나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지역을 대표하는 에키벤 몇 개만 소개해도 권수가 불어난다. 이러니 에키벤을 일본만의 독특한 문화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요네자와역의 에키벤 가게. 만화책에도 살짝 등장한다.
이쯤 되면 에키벤에 대한 환상이 만들어진다. 종류도 많고 모양도 제각각인데, 그럼 맛은 어떨까? 맛이 없으면 인기는 오래 갈 수 없다. 도시에서 시골로 이동하고, 시골에서 더 시골을 오가면서 하루 이틀 내내 에키벤만을 먹은 적이 있다. 여행의 색다른 재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 맛이 좋은 음식이었기 때문에 계속 에키벤을 찾았다. 입맛이 까다로워도 종류가 많다보니, 고민할 필요도 없다. 종류가 많은데, 어떤 걸 골라야 하지? 판매원에게 추천을 받으면 거의 실패가 없다. 보통 지역을 대표하는 인기 있는 에키벤들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부터 검증이 되었으니, 맛을 보장한다.

에키벤은 단순히 맛있는 도시락이 아니라, 각 지방의 문화와 지역을 대표하는 식재료가 잘 드러나 있어 문화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미야기현의 센다이시에는 ‘규탄’이라 불리는 소혓바닥 구이가 유명하다. 도시 어느 곳을 가더라도 규탄 전문 음식점을 볼 수 있다. 그러니 에키벤이 빠질쏘냐. 규탄 도시락에는 혀구이와 보리밥, 참마가 들어가고 가열용기를 사용하고 있어, 데워서 먹을 수 있다. 소혓바닥 구이라고 놀랄 것도 없다. 한국에서도 많이 먹는 음식이다.

다양한 에키벤의 샘플들.
야마가타현 요네자와역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에키벤 판매점이 있다. 요네자와는 규베 소고기와 더불어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소고기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열차에서 내리면 자그마한 에키벤 가판대가 두 곳이 있다. 추천을 부탁하면 요네자와 명물 소고기 도시락을 권해준다. 품질 좋은 야마가타현 쌀밥에 잘게 썰어 볶은 소고기가 덮여있다. 전국적으로 유명하니, 맛에 대해선 말할 필요도 없다.

니가타현에서 ‘키라키라우에츠’ 열차를 타고 야마가타현의 사카타로 이동하면서 먹은 에키벤을 잊을 수 없다. 열차 식당칸의 널찍한 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동해바다의 풍경을 바라보며 도시락은 열차 여행의 낭만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키라키라우에츠 도시락은 먹기에 앞서 눈이 먼저 즐겁다. 연어알과 날치알, 새우, 토란과 능이버섯, 계란 스크램블이 어찌나 예쁘게 모양을 내는지 먹기가 미안할 정도다.

야마가타현의 에키벤 규메시.
에키벤은 한 번 맛을 들이면 헤어날 수 없는 식도락의 세계다. 저건 어떤 맛일까? 요건? 쟤는 모양이 독특하네, 용기가 예뻐서 소장하고 싶어! 에키벤은 그 자체로 문화이며, 일본 여행에서만 느껴볼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이다.

글·사진 김종철 문화여행자 rawdell@hanmail.net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김종철의 일본시골문화여행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