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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나카 극장의 정문. 극장으로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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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의 일본시골문화여행기 <8>마치나카 시골극장
규모 작지만 넉넉한 좌석공간 등 손님 배려 돋보여
‘워낭소리’ ‘추격자’ 한국영화 특별상영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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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나카 극장의 로비로 편안한 느낌을 준다. 천정 모양이 독특하고, 바닥 전체가 나무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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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플렉스 극장의 시대다. 멀티플렉스는 단순히 영화를 보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는 곳으로 발전하고 있다. 크고 화려한데다 시설도 좋고 쾌적하다. 식당과 카페, 쇼핑몰까지 두루 갖추고 있어 하루를 보내는데 부족함이 없다. 게다가 다른 극장으로 이동하지 않고 영화를 골라 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과거 단관 극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화 관람 환경이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다. 시설은 좋으나, 어딘지 모르게 삭막한 기분이 들곤 한다.
그래서 옛날 극장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동시상영관, 소극장이 사라진 요즘엔 집 근처에 규모는 작을지라도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곳 하나 정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영화 관객 누구나 해보는 생각이다. 아무리 좋은 시설의 멀티플렉스 극장이어도 공간 자체가 친숙해지고 마음이 가진 않는다. 좋은 극장은 단지 영화를 보는 장소가 아니라, 추억이 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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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관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윤이 좔좔 나는 나무 바닥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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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내부로 앞뒤 좌석 간격이 적절하게 이루어져 있다. 내부 역시 나무로 인테리어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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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전체가 나무로 지어진 마치나카
야마가타현의 츠루오카시를 여행하면서 한 눈에 반해버린 멋진 극장을 방문했었다. ‘마치나카(まちなか)’ 극장이다. 36년 동안 줄기차게 극장 출입을 하면서 극장 시설에 감동하기는 이곳이 처음이었다. ‘마치나카’ 극장은 2010년 5월 21일 오픈한 곳으로, 극장 전체가 목조 건물로 이루어진 이색적인 문화공간이다. 극장 외관부터가 남다르다. 정문 오른쪽에 놓인 상영 예정 영화 포스터가 없었더라면, 극장인지도 모르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건물 외형만으론 도무지 극장과 연결을 지을 수가 없다. 그냥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외관의 기념관 같은 모습이다.
개성 없는 빌딩 내부에 거대하고 화려한 시설로 운영되는 멀티플렉스 상영관에 익숙한데, 목조 단층에 기와지붕 형식의 아담한 극장을 보니 가벼운 흥분이 일어났다. 극장 내부로 들어가니 밖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규모가 있어, 거의 영화 반전과 같은 충격을 받았다. 일단 시야가 탁 트이는 널찍한 로비가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인테리어가 특별했다. 바닥에서 벽, 천정에 이르기까지 모두 목재를 사용한 인테리어로 깔끔하고 편안한 느낌을 자아낸다. 내부에서 5분 정도 머물렀음에도 극장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나카’ 극장은 좋은 영화를 봤을 때처럼 감동을 주는 곳이다. 이곳은 원래 방직공장으로 운영이 되는 곳이었다. 공장 운영이 중단된 후 만평방미터의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다, 5년 전 마을에 있던 마지막 극장이 사라진 것이 영화관을 만든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실내 천정을 보면 1930년대 방직공장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고개를 들어 천정을 보면 방직공장이 운영되던 당시 모습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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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맥주로 상영관에서 마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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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한쪽에 자리한 식당에서는 이 고장 명물인 돈까스를 파는데 맛이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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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공연도 열리는 복합문화공간
‘마치나카’ 극장은 총 4개관으로 전체 좌석이 437석이다. 가장 큰 1관이 165석 규모이고, 가장 작은 4관은 40석 규모로 아담하다. 국내 멀티플렉스 환경을 생각하면, ‘마치나카’ 극장의 총 좌석은 멀티플렉스 1관에 불과한 작은 규모다. 하지만 관객을 배려한 서비스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영화를 상영하는 관들은 관객을 최대한 배려하고 있다. 앞뒤 좌석의 간격은 발을 쭉 뻗어도 좋을 정도로 쾌적한 여유 공간을 두고 있고, 앞자리에 앉은 관객의 머리통이 스크린을 가리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한 경사 확보는 기본이다. 상영관 내부 인테리어도 최대한 나무를 활용한다.
무엇보다 개봉작 위주가 아니라, 극장 자체의 프로그램 운영으로 영화를 상영한다는 점이 돋보였다. 최근 영화들은 주로 1, 2, 3관에서 상영이 되고, 4관은 특별전 형태의 성격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 방문했을 당시에는 야마가타현 출신의 유명 작가 ‘후지사와 슈헤이’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했던 작품들이 상영이 되고 있었다. 작년 9월엔 <추격자> <워낭소리> <과속스캔들> 등 한국 영화 특별전이 열렸고, 애니메이션이나 고전영화, 유럽영화 등 지역 주민들이 다양한 영화를 접할 수 있도록 매달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한다고 한다. 영화 상영 외에도 가부키 공연이나, 피아노와 재즈 공연도 열린다니 멀티플렉스 극장은 비교도 안되는 진정한 복합 문화 공간이다.
‘마치나카’ 극장은 영화를 보기 위한 공간 그 자체에 충실한 훌륭한 시설을 갖춘 곳이다. 그에 걸맞게 회원제 운영 시스템 또한 관객들에게 어필한다. 1회 관람료가 1,700엔이지만, 회원 가입을 하고 1만 엔을 내면 12편의 영화를 볼 수 있도록 배려한다. 5천 엔을 내면 5편의 관람 기회가 주어지며, 한 편을 볼 때마다 10포인트가 적립되고, 6편을 보게 되면 한 편을 무료로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적용한다. 극장비가 비싼 일본의 상황을 볼 때 ‘마치나카’극장의 회원제 운영 방식은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 큰 매력이다. 상영관에선 영화를 보며 맥주를 마실 수 있고, 극장 한쪽엔 지역 명물인 쇼나이 돼지고기를 사용한 돈까스 가게가 있어 요기도 가능하다.
‘마치나카’극장은 영화를 보지 않고서도 극장 자체가 주는 볼거리가 있었다. 한국에선 사라진 극장 풍경도 눈길을 끈다. 과거 영화를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한 번 정도는 돈을 주고 구입했을 팜프렛이다. 한국 영화가 상영되면, 국내에선 구할 수 없는 질 좋은 팜프렛의 콜렉팅이 가능하다. 동네 극장이 하나 둘 사라지고, 규모로 밀어붙이는 멀티플렉스 지배의 한국 실정이 안타까울 정도로, ‘마치나카’ 극장의 시설과 운영 방식은 인상적이었다. 이 아름다운 극장은 2010년 9월 10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LEAF AWARDS 2010’에서 상업부분 건축분야에 입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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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한쪽에 있는 영화 관련 자료들. 판매되는 팜프렛도 있고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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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나카 극장에서 워낭소리 팜프렛이 600엔에 판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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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종철 문화여행자 rawdel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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