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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문학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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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교수의 문학산책 - ‘부엌녀’와 ‘용정의 노래’의 경우
만주학회 초청으로 제13회 화랑대국제심포지엄 ‘동북아의 국가와 민족관계’(2006. 5. 2~4)의 주제발표 의뢰를 받았소. 사양했으나 전공인 문학 쪽에서 논의해도 된다기에 수락했고 내친 김에 ‘한국 근대문학의 시선에서 본 만주국 글쓰기론’을 들고 지린(吉林) 대학과 비평가협회 공동주최 ‘중국 조선족 문학의 현황과 작품세계’(2006. 7. 3)에까지 갔소.
두루 아는바, 만주국이란 일본군부가 세운 가짜국가(1932~45)이오. 국가이념으로 내세운 것은 이른바 민족협화론. 5개 민족(일본, 조선, 만주, 몽고, 러시아)의 협화와 왕도낙토(王道樂土)를 이념으로 한 것. 아무리 가짜 국가라 해도 내세운 국가이념은 어느 수준에서 지켜져야 했을 터. 동시에 또 거기에는 일정한 제약도 주어졌을 터. 문예의 경우엔 지도지침이란 것이 만들어졌소. 잠시 볼까요.
“우리나라 예문은 건국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팔굉일우’(일본의 국가이념-인용자)의 정신을 미적으로 나타내면서 또한 국토에 이식된 일본 예문을 거쳐 원주민족의 고유한 예문을 씨로 하고 세계 문예의 진수를 취하여 짠 혼연 독자적 예문의 것을 목적으로 한다.”(예문지도요강 제2조, 1941. 3, 홍보처)
건국이념을 바탕으로 한다고 했으나 일본 미의식이 중심이어야 한다는 기괴한 논법이라 하겠소. 좌우간 이 지도요강에 발맞추어 잡지들도 <신만주> <기린> <예문지> 등 3개로 정리되고 만주작가 작품 4권이 간행됩니다. <만주작가 8인집> <일·만·러시아 재만 작가 단편집> <만주국 각민족 창작선집> <만주국 각국 민족 창작집> 등이 그것.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조선족 작가의 것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소. 두 가지 추리가 가능하오. 조선족 작가들 쪽에서 끼어들기를 꺼렸거나 거부한 경우가 그 하나. 다른 하나는, 이 점이 중요한데, 저쪽에서 끼워주지 않았음이오. 전자의 경우는 다음 발언으로 보아 조금 의심스럽소.
“진실로 협화정신을 실천하고 모든 기회에 우리도 만주국의 문화건설에 참여하고 공헌코자 할진댄 일·만계의 그것에 연계와 협조를 일층 긴밀히 하고 선진과 계발과 편달을 입을 방도가 있어야 할 것인데 만주국의 예문단체가 탄생된 지 이미 3, 4 성상을 열(閱)하였을 터이되 조선인 작가와 작품이 그 권외에 유리되어 있는 현상은 그 이유와 원인이 나변에 있든지 간에 기형적 사태가 아닐 수 없다.”(염상섭, <북원> 서문)
<만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염상섭의 발언인 만큼 음미될 사항이라 할 만하오.
그렇다고 해서 아주 예외적 사실도 부정될 수는 없을 듯하오. 안수길(<만선일보> 기자)의 단편 <부엌녀>가 중국어로 번역된 사례가 있기에 그러하오. <재만 일·만·러시아 각계 작가권 특집>(<신만주>, 1941. 11)에 러시아계, 만주계, 일본계와 더불어 조선계로는 <부엌녀>가 실렸던 것. 부엌에서 태어나 천하게 자란 조선 여인의 일대기를 다룬 콩트급 <부엌녀>(1937)의 번역 삽화가 중국처녀로 되어 있었다고 안수길은 회고했소.
<선구자>로 잘 알려진 윤해영의 가사 <용정의 노래>(1933)도 언급할 만하오. “일송정 푸른 솔은…”이라고 시작되는 이 노래의 가사는 작곡가 케이(K)씨의 와전으로 풍문을 일으킨 바 있거니와, 실상은 조선계 시인 윤해영이 쓴 것. 그는 무슨 푸른 기상을 지닌 위인이 아니라 가짜 만주국 시기에 활동한 평범한 시인에 지나지 않는 인물. <만주낙토>(1942)의 시인이기도 했지요. 그렇다면 그는 무엇인가. “강압적 정치와 살벌한 풍토가 낳은 가장 모순되면서도 가장 보편적 시인”(김호웅 지적)인지도 모르지요. 이 모순성은 만주국 글쓰기에 임할 때 자주 음미될 사항이라 할 만하오.
김윤식/문학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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