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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1.30 19:13 수정 : 2011.12.13 16:51

김윤식의 문학산책

김윤식의 문학산책 /

‘혼불 문학관’ 가는 길을 아시오? <혼불>(1983)의 작가 최명희 문학관 말이오. 제일 먼저 전주에 가야 하오. 백제 적엔 완주였던 곳. 그러니까 통일신라 이후(757) 전주라 불린 고도. 언제 가야 제일 적당할까. 그야 시월 마지막 날이어야 하오. 만일 우천시면 그 다음날이어야 할 것. 어째서? 이 날 ‘전통 맥(脈) 큰잔치’ 무형 문화재 발표회가 사백 년 전통의 전주 향교에서 열리니까. 삼백육십 년을 넘은 은행나무들의 잎이 금화(金貨)로 아직 주렁주렁 달려 있고 더러는 떨어져 땅 위에 누워 있기도 한 곳. 이곳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의 향연. 주봉신(고법)을 비롯해 무형문화재 제씨의 <수궁가>, <춘향가>, <적벽가>를 들어야 하오. 어째서? 혼불 문학관에 가야 하니까. 이강주, 한지(이것으로 반기문 총장 실내를 꾸몄겄다!), 합죽선 기능 보유자들과도 마주하여 그들의 손놀림에도 넋을 잃어야 하오. 어째서? 혼불 문학관에 가야 하니까.

향교까지 참배하고 나면 발길은 절로 옮겨지오. 아주 천천히. 한옥 마을 속으로. 공예품 전시관으로. 그쯤이면 깊은 계절 오후도 어지간히 기울 것이외다. 긴 그림자를 밟으며 이번엔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이 계신 경기전에 발길이 닿소. 사직도 정치도 또 역사라는 것도 너무 가까워 숨소리마저 들리는 터. 그 숨소리에 잠겨 있자니 어느새 어둠이 밀려와 그대 발목을 적시리라. 늦기 전에 그대는 대나무 숲을 지나 뒷문 샛길로 빠져 나와야 하오. 거기 몇 발자국 뒤 골목을 빠져 최명희 문학관이 있으니까. 있되, 박명 속에 있소. 있되, 한옥으로. 기둥마다 청사초롱 달고. 또 있되, 풍경 소리마저 달고.

첫눈에 그대는 입구에 놓인 등신대의 <혼불> 원고지에 마주칠 것이오. 그것이 먹으로 씌어졌다는 것도 알아볼 수 있을 것이오. 피로 쓴 것이면 쉽사리 바래기 마련인 것. 글은, 문학은 먹(붓)으로 쓰는 법이니까. 또 그대는 직감했을 터. 온몸을 불태우며 썼다는 것도.

이 순간 그대는 아마도 멍해졌을 터. 영원 같은 것을 체험했으니까. 정신이 들었을 때 그대는 또 다른 청사초롱 밑에 있었을 것이오. 한식 저녁상이 차려진 곳. 아마도 그대는 이강주에 목을 축이며 이 집 주인이 뽑는 소리 한마당도 들었을 터. 아마도 그 소리는 이 고장 수령께서도 능히 뽑을 줄 아는 ‘쑥대머리’였던가. ‘쑥대머리’ 소리에, 또 이강주 향기에 속절없이 취해 그대는 아마도 담 하나 건너 있는 문학관 따위란 깡그리 잊었을 터. 영원 앞에 그런 것은 실재하지 않으니까 그럴 수밖에.

그러고 보니 대체 실재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렇게 물을 때 그대는 홀연 보았으리라. 문학관 지붕 위를 훌렁훌렁 떠오르며 너훌너훌 날아가는 퍼런 불덩어리를. 이씨 가문의 버팀목 청암부인의 혼불을. 보름달만큼 크고 투명한 그것을. 당초 이 혼불을 본 사람은 단 두 사람. 청암부인과 더불어 인고의 세월을 함께 해온 인월댁이 그 한 사람. 다른 또 한 이는 이 가문 대를 이어갈 며느리 효원. 오, 이제 또 한 사람이 있게 되었도다. 쑥대머리에, 이강주에 취해 한순간 영원을 본 바로 그대.

김윤식 문학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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