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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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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의 문학산책 /
지난 7월28일 서울 동숭동 아르코 미술관에서 작은 모임이 있었소. “소설가 이청준 선생의 1주기를 맞으면서 그의 뛰어난 문학을 기리고 그의 아름다운 생애를 그리워하는 추모의 모임”(김병익)이 그것.
제 어미를 팔아 소설을 써먹은 이 작가는, 정작 그 어미가 세상을 뜨자 활동사진 감독 모 씨와 함께 춤을 추며 한바탕 ‘축제’를 벌였겄다. 그 상엿길에 부치는 만가도 이 자리에서 들려왔소. “일락서산 해는 지고 월출동녘 달 오르니…… 달이 되고 해가 되고 꽃이 되고 어허이 어이”(임권택)라고. “그의 부재가 한국 문학에 너무 큰 공백”(김치수)이라는 것. “글쓰기가 제 한 몸을 위한 게 아니라는/ 제일 높은 척도”(정현종)를 모르는 사이에 가르쳤다는 것.
이어서 펼쳐진 추모 영상. 아, 그는 장흥에서 태어났군요. 광주일고 수석에다 대대장이었것다. <퇴원>(1965)으로 데뷔했고, <눈길>(1977)에다 <당신들의 천국>(1976)을 썼군요. 보시라, 친구들과 저렇게 웃는 얼굴.
이를 위에서 지켜본 그는 뭐라 했을까. 귀 밝은 자 있어 이렇게 들었군요. “호들갑 떨던 그 아그들, 여전하군”(김화영)이라고.
당대의 소리꾼(장사익)의 진혼곡 두 마당이 이어졌소. 까칠한 수염 그대로인 이 소리꾼을 좀 보소. 한복 차림으로, 손엔 작고 기묘한 물건이 들려 있지 않겠소. 진귀하기 짝이 없는 손 요령. 조금 기울이자 형언할 수 없이 맑고 또 먼 소리가 들려왔소. 이 요령 소리 속에, 놀라워라, 그대의 모습이 문득 어른거렸소. 또 놀라워라, 그대는 어느새 무대 위로 내려오지 않겠는가. 소리꾼의 모습에 겹쳐 있는 그대. 무시간 속의 그대.
또 한번 딸랑.
불이 들어오고, 텅 빈 무대.
이제야 시간은 다시 흐르도다. 여기는 동숭동이고 마로니에는 나무이고, 비둘기는 비둘기. 저만치 지하철 입구가 동굴 모양 입을 벌리고 있지 않겠소. 머석머석 헤어질 시간. 목도 마르지 않고, 숨도 가쁘지 않았소.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지하철로 귀가할 수밖에. 이 구경꾼에겐 하루가 너무 무거웠으니까.
대체 이 무게는 어디서 말미암았을까. “글쓰기가 제 한 몸 위한 게 아니라는/ 제일 높은 척도” 때문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새삼 찾아야 하랴. 방법은 단 하나. 정면 돌파가 그것. 집에 닿자마자 <신화를 삼킨 섬>(2003)을 펼칠 수밖에. 신화에 바짝 닿아야 진짜 문학이라는 그대 만년의 대작. 제주도 4·3 사건을 아시는가. 역사 바로 세우기가 요망되는 시점. 합동 씻김굿이 요망될 수밖에. 그런데 정작 이런 굿판이 가능할까. 어림없는 일. ‘청죽회’와 ‘한얼회’의 난투극이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 것. 당신들의 씻김굿에 지나지 않으니까. 진짜 씻김굿이란 무엇이뇨. 생존자 ‘김상호’(등장인물)로 대표되는 ‘나만의 씻김굿’이 있을 뿐이라는 것. 왜냐면 굿에는 기주(忌主)가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이 기주를 밝힘이 그대에겐 문학의 소임이었던 것.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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