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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1.06 20:24 수정 : 2013.01.06 21:17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아직도 월평(月評)을 쓰고 있는가, 라고 주변에선 말하오. 내가 생각해도 딱하오. 한 가지 위안이 될 수 있는 것은 서머싯 몸의 충고이오. 작품 쓰기(창조)가 자기 일이 아님을 깨닫지 않는다면 위대한 비평가가 될 수 없다, 라고. 이 점을 분명히 알고 나면 작품 구경하기(감상)가 조금은 자유롭다고나 할까요. 비평가란 당연히도 해박한 지식을 갖추어야 되거니와 동시에 공감도 그만큼 갖추어야 된다는 것.

문제는 이 ‘공감’에 있소. 그러한 공감이란, 마음에 없는 것을 참을 수 있는 일반적 무관심이 아니라 각양각색의 것에 대한 활기 있는 기쁨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것.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철학, 심리학, 자기 나라의 전통 등에 해박해야 하지만 각양각색의 것에 대한 활기 있는 기쁨도 있어야 한다고 했을 때, 내 머리를 스치는 것은 비평가란 요컨대 ‘위대한 인간이다’로 정리된다는 점이외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덜컹 겁이 났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직도 월평 쓰고 있음이란 위대한 인간 되기에 노력하는 중이라는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까요. 기를 쓰고 월평 쓰기에 임한 것은 기를 쓰고 위대한 인간이 되기 위한 욕심 때문이라고. 귀동냥으로 듣건대 석가세존께선 지혜 제일의 사리자(舍利子)에게 넌지시 말씀하셨다 하오. 색불이공, 공불이색이라고. 진작 이를 배웠더라면 욕심 따위가 끼어들 틈이 어디 있었으랴.

여기까지 말해놓고 보니 스스로도 거창하게 들려 마지않아 딱하기에 앞서 민망함을 물리치기 어렵소. 실상 딱하기 위해서도, 또한 민망하기 위해서도 아니었소. 그냥 월평을 썼을 뿐이오. 쓰다 보니 다음 세 가지 점에 생각이 미쳤소. 좋은 물건이냐 아니냐를 아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그 하나. 복요리나 포도주 맛이란 많이 먹어 본 사람이라야 식별 가능한 법. 그렇지만 이 경험주의에는 당연히도 그 한계가 따로 놓여 있소이다.

새로운 맛이 등장하면 속수무책이라는 점이 그것. 포도주 맛을 송두리째 뒤엎는 경우를 연상해 보시라. <메밀꽃 필 무렵>(1936)의 세계 속에 <날개>(1936)가 등장했을 때 비평가는 어째야 했을까. 겨우 최재서가 이를 수습할 수 있었소. 그렇지만 이런 상대주의 역시 그 한계가 저만치 바라보이오. 그것은 절대주의라고 부를 만한 것이외다. 말을 바꾸면 비평가의 ‘자기의식’이 최후로 남는 것. 언어에서 도출된 것이자 동시에 역사에서 도출된 것이 아니었던가. 곧 정신으로 나아가는 길목.

아직도 월평을 쓰고 있는가. 딱하고도 민망하기 짝이 없음을, 딱하고도 민망하게 살펴보았소. 이쯤 되면 나만의 방도도 실토하지 않을 수 없소. 작품과 작가의 구별 원칙이 그것이오. 작가는 누구의 자식이며 어디서 태어나고 어느 골짜기의 물을 마셨는지를 문제 삼지 않기. 있는 것은 오직 작품뿐. 이 속에서 나는 시대의 감수성을 얻고자 했소. 내 자기의식의 싹이 배양되는 곳.

어째서 그대는 세상 속으로 나와, 작가·현실·역사와 대면하지 않는가. 그럴 시간이 없었다고 하면 어떨까. 그러나 작품 속에서 만나는 세계가 현실의 그것보다 한층 순수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소. 카프카의 표현을 빌리면, 그 순수성이란 이런 것이오. 밤이면 모두 푹신푹신한 침대에서 담요에 싸여 잠들지만 따지고 보면 원시시대의 인간들이 그러했듯 들판에서 땅에 머리를 처박고 언제 적이 쳐들어올지 몰라 가까스로 잠이 든 형국이라고.

김윤식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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