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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3.15 20:16 수정 : 2011.12.28 22:58

‘에반스 신드롬’을 앓고 있는 송영재군이 14일 오후 서울 강서구 가양2동의 영구임대아파트 집에서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에반스증후군 앓는 영재네
“고생하는 엄마 더이상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는 이혼뒤 유방암 투병
병원·생활비 이중고 시달려
일일 가사도우미로 ‘억척살이’

영재(11)는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한밤중에 코피가 나도 일어설 힘이 남아 있으면 슬그머니 일어나 화장실로 가 혼자서 지혈을 한다. 지난해 여름밤에도 영재는 옆에서 자고 있는 엄마를 깨우지 않고 화장실로 갔다. 새벽녘에 영재의 형(16)이 화장실에서 영재를 발견했을 때 바닥은 온통 피범벅이었다. 영재의 몸은 파랗게 굳어가고 있었다. 14일 만난 영재 엄마 정아무개(40)씨는 그날 밤을 떠올리며 가슴을 쳤다.

하지만 정작 정씨 자신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기는 마찬가지였다. 이혼한 뒤 떠난 어머니의 얼굴을 보지도 못했고, 학교는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중학교 2학년 때 그만뒀다. 의류공장에 취직해 12시간 맞교대로 일해 받은 당시 월급 10만원은 전부 집으로 보냈다. 일터는 유명 브랜드의 의류공장이었지만, 당시 10대였던 정씨는 예쁜 옷 한 벌 가져보지 못했다. 인천과 서울의 공장을 떠돌다 21살 때 두 살 위인 남편을 만났다. 양식집 웨이터로 일하던 남편은 그의 첫사랑이었다. 1994년에 결혼해 첫아이를 낳았지만, 이듬해부터 남편은 술을 마시고 폭력을 휘둘렀다. 시댁의 도움으로 부부는 강원도에 양식집을 차렸지만 남편은 생활비를 가져다주지 않았다. 몇 년만에 가게가 망하던 날 부부는 나란히 신용불량자가 됐다. 남편은 정씨의 이름으로 각종 대부업체에서 6천만원을 빌린 상태였다.

2002년 봄 가위를 들고 달려드는 술 취한 남편을 피해 속옷바람으로 도망쳤다. 깨진 유리를 밟아 맨발은 피투성이였다. 남편이 쫓아올까 무서워 그 길로 서울까지 도망쳤다. 가정폭력 피해여성 쉼터에서 먹고 자며 문구점 점원으로 일했다. 한 달에 두 번을 쉬고 80만원을 받았다. 6개월 만에 간신히 이혼을 했지만 아이들 친권도 위자료도 엄두를 못 냈다.

2004년 봄에야 아이들을 다시 만났다. “애들은 고아원에 보냈다”고 호통치던 남편은 양육이 힘들었던지 2년 만에 아이들을 엄마에게 보냈다. 노량진의 한 교회에서 세 식구가 지냈지만 그땐 행복했다. 작은 사무실에 경리로 취직해 90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행복은 짧았다. 그해 4월 정씨는 가슴이 자꾸 아팠다. 유방암이었다.

아이들과 다시 만난 지 한 달 만에 정씨는 암 수술을 받았고, 이후 1년이 넘도록 항암치료를 받았다. 항암치료가 끝나가던 2006년,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영재의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아이의 몸에 멍이 너무 많으니 병원에 가보라”는 담임선생님의 전화였다. 동네 병원에서는 “그냥 쉬게 하라”고 했다. 하지만 영재는 그 뒤로도 계속 코와 입으로 피를 쏟았다. 큰 병원에 갔더니 ‘특발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이라고 했다. 지난 1월 국립암센터는 영재에게 ‘에번스 증후군’이란 병명을 추가했다. 에번스 증후군이란 신체가 스스로 적혈구, 혈소판, 백혈구 등을 파괴하는 희귀병이라고 했다. 영재의 허약한 몸은 늘 조그만 피로도 이기지 못하고, 약간 베인 상처에도 출혈이 쉽게 멈추지 않는다.

한부모 가정으로 기초생활수급권자인 영재네 가족은 서울 강서구 가양동 영구임대아파트에 산다. 36㎡(11평)짜리 집이다. 가로 세로 다섯 걸음 정도 되는 크기의 마루에서 영재와 정씨가 함께 누워 투병을 하는 날도 많다. 현재 정씨는 몸이 괜찮은 날엔 일일 가사도우미 일을 해 하루에 3만5000원을 번다. 여기에 기초생활수급비 60만원을 받아 아파트 관리비와 난방비 등 20여만원을 낸다. 하지만 영재의 병은 ‘비급여 대상’으로 분류돼, 항암주사 한 통에만 120만원을 내야 한다.

정씨는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아들만 보면 가슴이 아려온다고 했다. 좁은 방에 함께 누워 있다가 아이가 슬그머니 화장실로 가면 어머니는 입을 막고 운다. “엄마한테 아프다고 말할 정도로 아프지 않아요. 엄마가 지금까지 보살펴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 엄마 더 힘들게 하지 않고 제가 잘해 드릴 거예요. 병도 이겨낼 거고요.” 영재는 천천히 나직하게 말했다. 이날 영재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학교에 가지 못했고, 엄마도 그 곁을 지키느라 일을 나가지 못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3739명이 심장병 형빈이 손 잡았다
4087여만원 모금

“아빠 살려주세요.” ‘근로빈곤층과 희망 나누기’ 캠페인 1회 ‘심장이식 5살배기의 사투’ (<한겨레> 2월16일 보도)에 소개된 형빈(5·가명)이의 사연을 읽고 많은 이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15일 현재 3739명이 자동응답전화(ARS)와 계좌이체를 통해 모두 4087만8050원의 성금을 보냈다. 이는 자동응답전화의 10% 수수료(158만6000원)를 제한 금액이며, 모금된 돈은 모두 형빈이 가족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형빈이 아버지는 <한겨레>와 ‘바보의 나눔’ 재단에 “정말 감사드리며 형빈이와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전해왔다. 16일부터 ARS와 은행계좌를 통해 모금된 돈은 2회에 사연이 소개된 영재군 가족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해당 ARS와 은행계좌를 통해 접수되는 성금은 ‘근로빈곤층과 희망 나누기’에 사연이 소개된 이에게만 전액 전달되도록 등록돼 있다. 임지선 기자


■ 희망을 나눠요

060-700-1225 전화하거나기업은행 계좌로 송금가능

<한겨레>는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과 공동으로 ‘근로빈곤층과 희망 나누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근로빈곤층’ 가정의 사연을 소개하고 이들과 연대하고자 하는 연중 기획입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뜻을 잇기 위해 설립된 전문모금법인 ‘바보의 나눔’(이사장 염수정)이 모금의 창구입니다. 사연의 주인공을 도우려면 자동응답전화(ARS·한 통화 5000원) 060-700-1225로 전화를 하시거나, 자동응답전화와 번호가 같은 은행계좌 060-700-1225(기업은행/예금주 바보의 나눔)로 송금하시면 됩니다. 지원이 필요한 근로빈곤층 가정은 ‘바보의 나눔’으로 전화(02-727-2503~8)를 하시거나 전자우편(babonanum@catholic.or.kr, sun21@hani.co.kr)으로 신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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