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프랑스에서 <적 만들기>란 책이 나왔을 때 화제가 됐다. 원래 ‘적 만들기’는 군사전략적 목적으로 고안해 낸 심리전술이다. 그런데 이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면 엄청난 정치적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을 둘러싸고 토론이 벌어졌다. 실제 ‘적 만들기’는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구성원을 하나로 묶어주는 응집력을 강화해 주는 자극제가 된다. 냉전 때 나온 매카시즘도 미국의 군대나 보수정치인과 보수언론이 적 만들기를 통해 이들이 하나의 집단으로 뭉치는 데 주요한 자극제가 됐다. 그러나 적 만들기는 정치적으로 남용하면 국가와 사회를 분열시킨다. 지배 집단에서 배제된, 생각을 달리하는 시민들을 ‘적’으로 몰아내고, 적으로 낙인이 찍히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 표현의 자유를 주저하는 현상까지 일어날 수 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져 대결하고 있는 한국의 특수상황에서 이명박 정부 이후 보수세력의 적 만들기가 점점 대담해지고 있다. 정권과 유착한 보수언론은 보수진영에 대한 비판적 언동을 “종북”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그런 현상은 더 심해졌다. 미디어전문지 <미디어오늘>는 지난달 송년호에서 “종북이라는 말이 ‘정권과 언론의 만능열쇠’가 돼 정권에 불리한 뉴스가 언론매체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는 ‘청와대 → 새누리당 → 검찰 → 경찰 → 언론’으로 이어지는 치밀한 공안몰이의 결과라고 분석했다. 특히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과 그 후 나타난 검찰의 공안몰이는 1차적으로는 박근혜 정부의 언론통제 정책과 권언유착의 결과라고 단정했다. 언론이 적 만들기에 앞장을 서고 있다는 말이다. 실제 적 만들기의 마지막 작업은 언론의 몫이다. 적 만들기에서 누구를 적으로 만들지, 적의 이미지를 어떻게 나타낼 것인지 등에 마지막 영향을 미치는 주체가 언론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 미국인은 이라크의 후세인을 거의 악마처럼 증오했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처음부터 후세인을 그렇게 미워한 것은 아니었다. 이라크전쟁이 벌어지기 20년 전인 1980년대 초, 이라크가 이란을 공격해 전쟁을 벌일 때 미국은 후세인을 지원했다. 당시 후세인은 미국의 총아였다. 그러나 이라크전 당시 아들 부시 미국 대통령은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감추고 있다고 주장했고, 보수언론 특히 루퍼트 머독의 <폭스뉴스>는 연일 후세인이 알카에다의 후원자라고 보도했다. 이에 후세인은 미국인의 눈에 정말 악마가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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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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