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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0.07 20:32 수정 : 2012.01.16 16:27

시인 최승호씨가 단골로 가는 양재천변 카페 시엘에서 책을 읽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최재봉 기자의 그작가, 그 공간 ①최승호와 양재천변 카페 ‘시엘’

장식장속 시집 끌려 6년 단골
‘고비’ 등 작품들 이곳서 집필
“여기선 마음 편해 고민 덜어”

새 연재물 ‘그 작가, 그 공간’이 격주로 연재를 시작한다. 작가들의 창작의 속살을 엿볼 수 있는 ‘그들만의 공간’을 찾아가려 한다. 글을 쓰는 작업 공간일 수도 있고, 치열한 생활의 공간일 수도 있으며, 휴식과 작품 구상을 위해 찾는 곳일 수도 있겠다. 어떤 성격의 공간이건 그곳은 작가들의 고유한 작품 세계에 접근하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리라.

카페 시엘은 서울 서초구 양재천변 카페 거리에 있다. 실내에 여섯 개 테라스에 네 개의 탁자가 있고 정면의 바에 따로 일곱 개의 키 높은 의자가 놓인,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규모에 화려하지도 촌스럽지도 않은 인테리어. 천변을 따라 십여 개의 카페가 들어선 이 동네에서 카페 시엘의 외관이 유난히 도드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하늘을 뜻하는 프랑스어(ciel)를 옥호로 삼은 이곳에는 다른 카페에는 없는 한 가지 특별함이 있다. 최승호 시인이라는 단골의 존재가 그것이다.

최승호 시인은 일주일에 사나흘은 이곳을 찾는다. 여기서 도보로 십 분 거리에 사는 그는 점심을 먹은 뒤 양재천변으로 산책을 나와서는 한동안 걷다가 카페 시엘로 온다.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에스프레소 커피 한 잔을 주문해 마시면서 그는 책을 읽고 글을 쓰거나 황갈색 노트에 메모를 한다. 종종 손님도 이곳에서 만난다. 그렇다. 카페 시엘은 최승호 시인에게는 작업실이요 응접실과도 같다.

“집에 작은 서재가 있긴 하지만, 답답하기도 할뿐더러 일에 집중하기도 쉽지 않아서 이곳으로 나옵니다. 작가들이 작업실을 마련하는 걸 이해하겠어요. 아무래도 일상의 공간과 창작의 공간은 분리하는 게 지혜로운 것 같아요.”

그가 2007년에 낸 시집 <고비>와 <말놀이 동시집> 3권 자음편은 온전히 이곳에서 집필한 책들이다. 다른 책들 역시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 부분을 여기서 작업했다. 집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백지에 만년필로 쓴 원고를 컴퓨터로 정리하는 정도가 전부라고.


“2006년 5월에 열흘 동안 고비 사막을 여행하고 왔어요. 현지에서 노트에 메모해 온 내용을 기반으로 그 뒤 여섯 달 반 정도를 이 카페에서 작업해 펴낸 것이 시집 <고비>입니다.”

시집 <고비>의 세계는 예컨대 이러하다.

“만약 늑골들이 현이었다면, 그리고 등뼈가 활이었다면, 바람은 하나의 등뼈로 여러 개의 늑골들을 긁어대며 연주를 시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적막이라는 청중으로 꽉 찬 사막에서 뼈들의 마찰음과 울림은 죽은 늑대의 뼈나 말의 뼈와 공명할 수도 있었을 것이며 적막이라는 청중의 마음을 깊이 긁어놓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뼈의 음악은 그렇다. 아무런 악보도 없이 뼈를 뼈로 연주해 텅 빈 뼈들을 뒤흔든다. 청중으로는 적막이 제일이고 연주자로는 바람이 적합하다.”(<뼈의 음악> 전문)

사막은 바람과 적막이 지배하는 세계다. 사막에 들어가는 행위는 바로 그 적막으로 들어가는 일, 그러니까 ‘입적’(入寂)이다. 그런데, 바람 대신 진짜 음악이 흐르고 차량과 오토바이의 소음이 집중을 방해하는 세속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적막의 시편들이 쓰이다니!

“글에 몰입해 있으면 주위의 소음이 전혀 의식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막의 시라고 해서 반드시 사막 같은 공간에서 써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객관화가 가능했던 것 같아요. 대상이 멀리 있고 희미할수록 상상력의 날개는 더 커지는 것을 경험했지요.”

사실 문인과 카페는 가깝다면 가까운 사이다. 사르트르의 단골이었던 파리의 카페 드 플로르와 되 마고, 헤밍웨이가 자주 드나들었다는 쿠바 아바나의 라 테라사의 경우에서 보듯 외국, 특히 구미의 문인들 사이에서는 카페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잡아 왔다. 그런데 우리 풍토에서 카페란 친구와 어울리는 교유의 공간이기 십상이다. 물론 최근 늘어난 북카페나 커피 전문점에서는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이들을 보는 일이 드물지만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최승호 시인과 카페 시엘의 사례처럼 문인이 특정 카페를 단골로 삼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사장과는 가족처럼 친해져
“자리 기가 좋은지 작품 잘돼”
“재벌보다 시인 손님이 자랑”

카페 시엘이 이 자리에 문을 연 것은 2004년 12월. 최승호 시인이 처음 이곳을 찾은 것은 이듬해 봄이었다. 그 전까지 인근의 다른 카페를 들락거리던 시인이 그곳의 인파에 밀려 이 한적해 보이는 카페에 들어섰을 때 처음 그의 눈길을 끈 것은 장식장에 쌓여 있는 십여 권의 시집이었다. 알고 보니 이 카페 사장 김미숙(45)씨의 부친이 무명 시인으로 시집도 두어 권 낸 이였다고. 처음 얼마 동안은 주인과 객 모두 서로에게 누가 될까 봐 특별히 아는 체하지 않았으나 시인의 출입이 잦아지면서 머잖아 통성명도 하고 지금은 식구처럼 가까워졌다. 카페에 손님이 많으면 시인은 테이블을 양보하고 바의 맨 구석 의자로 옮겨 가며, 시인의 새 책이 나오면 주인장은 그 책을 여러 권 사서 다른 손님들에게 선물하곤 한다. “이 자리의 기가 좋은지, 여기서는 이상할 정도로 작품이 잘된다”고 시인이 말하자 “어떤 재벌이나 연예인보다도 시인이 오신다는 게 우리 카페의 자랑이자 자부심”이라고 주인장이 응수한다.

시인은 카페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도 생각을 가다듬거나 머리를 식히기 위해 종종 양재천변을 걷곤 한다. 춘천 공지천변에서 성장했고 문청 시절 그곳의 유명한 카페 이디오피아를 제집처럼 들락거렸던 그에게 양재천과 천변 카페 시엘은 모종의 원초적 친화력조차 지니는 듯했다. 카페에서 내다보는 풍경도 좋지만 천변을 거닐면서 만나는 동식물들도 어여쁘다고 이 생태 시인은 말했다. 새벽이나 해질 녘에는 자전거로 양재천을 거슬러올라 과천이나 반대쪽 잠실운동장 쪽까지 다녀오기도 한다. “내 정원을 산책하는 데 두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그가 친구들에게 자주 하는 농담이다. <현대문학> 10월호에 발표한 시 <실잠자리>도 그가 자신의 정원을 산책하면서 얻은 작품.

“가는실잠자리, 노란실잠자리, 연분홍실잠자리, 큰청실잠자리, 왕실잠자리, 북방아시아실잠자리-----------이 잠자리들은 잘 끊어지지 않는 질긴 실처럼 몇십 만 년을 이어져 왔다. 그것이 지금 거대한 오물덩어리인 나로 인해 끊어지는 중이다.”(<실잠자리> 전문)

에스프레소 한두 잔으로 반나절을 버틴 시인은 저녁 무렵 기네스 한 병 또는 테킬라 더블 두세 잔을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문우들과 약속이 있을 때면 와인이나 테킬라, 또는 수도사들이 만들었다는 리큐어 베네딕틴에 훈제 연어 샐러드나 두부 요리 안주로 저녁을 대신하기도 한다. 밤에 집에서 글을 쓰다가 새벽 한두 시쯤 불현듯 카페를 찾는 일도 있다. “글을 쓰느라 가열된 뇌를 자기 전에 어떻게든 식히기 위해서”다. 낮이든 밤이든 카페에 오면 마음이 편해지고 창작의 고민도 한결 수월하게 풀린다는 최승호 시인. 양재천변 카페 시엘에 가면 시인을 만날 수 있다.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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