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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1.13 20:06 수정 : 2012.01.16 16:14

평론가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가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자택 서재에서 책을 읽고 글을 써 온 평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최재봉 기자의 그 작가, 그 공간 ⑧ 김윤식의 ‘책의 나라’’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진한 과일 향이 먼저 반겼다. 거실 가운데 낮은 탁자에 놓인 그릇에 모과 몇 알이 올려져 있었다. 오른쪽으로 난 베란다에는 활짝 핀 서양난이 탐스러웠다. 서빙고동 13층 아파트 꼭대기층의 베란다 너머로는 겨울 한강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였다. 원로 국문학자 겸 문학평론가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가 덤덤하게 취재진을 맞았다.

김 교수를 좇아 거실을 지나 오른쪽 방으로 들어서자 그곳은 책의 나라였다. 일어판 루카치 전집과 독어판 헤겔 미학 등 여러 언어로 된 연구서들이 두 겹으로 꽂힌 책장이 벽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책장 한쪽에는 김 교수 자신의 저서 수십 권이 모여 있었다. 그러나 그조차도 그가 지금까지 낸 저서 160~170여 권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터였다. 창가 쪽 책상 옆 소형 책꽂이에는 주로 누렇게 빛이 바랜 책들이 있었다. 방 주인이 그중 하나를 꺼내 보였다. 겉표지가 뜯겨 나간 임화의 <문학의 논리>(1940)였다. 그가 가장 자주 들춰 보는 책이라 했다.

한강 내려다보이는 13층 아파트
연구서·저서·메모지로 빼곡한 방
컴퓨터 없이 ‘하루에 원고지 10장’

책상 뒤 벽에는 색색의 포스트잇이 다닥다닥 붙은 메모판이 세 개 걸려 있었다. 글을 쓰기 위한 아이디어들이었다. 그는 밤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메모를 써 붙인다고 했다. 책상 앞쪽에는 또 복사물 등 자료를 담은 바구니 수십 개가 쌓여 있었다. 경성제대 예과 문우회 동인지 <문우> 제4호 복사본이 보였다. 아단문고에서 복사한 것이라고 했다. 이효석, 유진오, 신남철 같은 필자들의 이름이 보였다. 또 다른 바구니에는 지난해 말 그가 일본 와세다대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이중어 글쓰기의 기원에 관한 일 고찰’ 일본어 발표문이 들어 있었다. 책이든 복사 자료든 특별한 체계나 순서에 따라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김 교수는 필요한 책과 자료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찾는 데 어려움을 겪지는 않노라고 했다.

책상 위에는 집필 중인 <문학사상> 2월호용 소설 월평 원고가 놓여 있었다. 그는 지금 월간 <문학사상>과 계간 <한국문학>, 그리고 <한겨레>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고정 칼럼과 월평 말고도 각종 논문과 발표문, 에세이 등을 모두 합해 그는 하루에 200자 원고지 10장꼴로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한창때의 ‘하루 원고지 스무 장의 리듬’에 비한다면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지만, 세는 나이로 일흔여덟인 연치를 고려하면 놀랄 만큼 많은 분량이다.

“작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백수린이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발표한 단편 <폴링 인 폴>을 읽었어요. 물건 되겠다 싶데. 서른 조금 넘은 여자가 주인공인데, 외국인들한테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이야. 미국 교포 2세 청년이 그 제자인데, 이 여자가 그 청년의 서툰 한국어 발음이 충청도식이라는 걸 대번에 알아차리지….”

그의 2월호 월평에는 백수린의 <폴링 인 폴>에 관한 평이 포함될 모양이었다. 김 교수는 주요 문학 월간지와 계간지에 발표되는 중단편은 모두 챙겨 읽는 것으로 유명하다. 신인들 사이에서는 그의 월평에서 언급되는 것을 신춘문예 당선이나 잡지 신인상 당선에 이은 ‘두 번째 등단’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있다. 그렇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단편이나 중편에 애착을 지닐 뿐 장편은 대체로 신뢰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국 단편은 장편의 역할을 해 왔어요. 전력을 기울여 쓴 것이니까 장편급이라 할 수 있지. 요즘 장편소설을 열심히들 쓰고 있던데, 결국 작가들이 출판사에 놀아나는 거라고 봐요. 단편에 이것저것 너절하게 넣어 살찌우면 뭐가 되겠어요? 장편(을 써야 한다는) 주장은 장사꾼의 논리일 뿐이야.”

김 교수는 고은 시인이나 소설가 조정래, 김성동처럼 원고지를 고집한다. 출판사를 하는 대학 제자가 제공해 준 원고지에 수성펜으로 원고를 쓴다. 작품 일부를 인용할 경우에는 책의 해당 부분을 오려서 원고지에 그대로 붙이는 것이 이채로웠다. 그렇게 일부를 오려 낸 책은 미련 없이 폐기처분하고, 필요하면 다시 산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웬만한 교수 연구실에 다 있는 복사기나 팩시밀리도 보이지 않았다.

김윤식 교수의 서재 벽에 걸린 메모판에 다양한 메모가 붙어 있다. 이정아 기자

컴퓨터를 쓰지 않기 때문에 그에게는 인터넷 역시 미지의 우주일 따름이다. 휴대전화도 물론 없다. 손으로 쓴 원고는 아르바이트 학생을 시켜 입력을 하거나, 출판사에 원고 상태로 보내면 출판사 쪽에서 입력을 한다. 잡지 등에 발표하지 않고 전작으로 쓴 책 <내가 읽고 만난 일본>이 올해 나올 예정인데, 지금 출판사 쪽에서 그의 손 원고를 입력하고 있노라고 김 교수는 귀띔했다.

저서 중 ‘이광수와…’ 가장 아껴
“식민사관 극복이 우리세대 임무”
현재 관심사는 ‘이중어 글쓰기’

“<내가 읽고 만난 일본>이란 자전 비슷한 걸 거요. 수필로 썼는데, 대략 다섯 가지 주제를 다루었지. 루카치, 고바야시 히데오(일본 평론가), 에토 준(일본 평론가), 그리고 내가 번역했던 일본 관련서 <국화와 칼>(루스 베네딕트)과 <일제의 사상통제>(리처드 미첼). 에토 준은 평생 글만 쓰다가 글을 못 쓰게 되니까 자살한 사람이야. 애도 없어서 부부가 강아지를 키웠어요. 루스 베네딕트도 대단히 외로운 사람이었지.”

<도스토옙스키의 생활>을 쓴 고바야시 히데오, 그리고 <소세키와 그의 시대>와 같은 작가 연구서로 유명한 에토 준은 김 교수에게 큰 영향을 준 이들로 알려졌다. 김 교수가 자신의 그 많은 저서 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것으로 꼽는 <이광수와 그의 시대>(1986)는 제목에서부터 에토 준의 그림자를 거느리고 있다.

<이광수와 그의 시대>를 쓰게 된 계기를 설명하면서 그의 말이 길어졌다. 흡사 강의를 듣는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학자로서, 문학평론가로서 자신의 관심사와 그 변화를 그로서는 매우 압축해서 들려준다고 했는데도 그 말은 거의 그의 평생을 포괄하는 것이어서 최소한의 분량을 필요로 할 터였다.

“우리 세대의 임무는 식민사관이 사실이냐 아니면 제국주의자의 음모냐를 증명하는 것이었소. 식민사관 역시 과학이니 그를 알거나 넘어서기 위해서는 사회경제사를 공부해야 했지. 근대와 근대국가, 자본제 같은 걸 두루 공부하는 데 십수년이 걸렸어. 문학 공부 할 여력이 없었지. 우리에게 봉건제의 모순을 자체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내재적 역량과 법칙이 있었다는 게 왈 ‘맹아론’이오. 그걸 가지고서야 식민사관이 제국주의자들의 허구라는 걸 입증할 수 있었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쓴 게 <이광수와 그의 시대>였어.”

그러나 근대라는 화두는 그에게 ‘흘러간 유행가’가 된 듯했다. 그가 지금 몰두하고 있는 주제는 이른바 이중어 글쓰기다. 일본어로 글을 쓴 조선 작가들의 작업을 가리키는 말이다. 김 교수는 “이중어 글쓰기는 일본문학도 조선문학도 아닌, 차라리 문학의 순수 원형과 같은 글쓰기이기 때문에 민족국가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라며 “이중어 글쓰기라는 새로운 화두를 붙잡은 게 내가 침체하지 않고 계속 나아갔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인간으로서 나를 평가해 주는 방법은 인격도 지력도 아니오. 다만, 나보다 더 나은 문학 교육자는 별로 없지 않을까 자부합니다. 어떤 세대든 그 세대의 한계가 있어요. 그럴 때 세대별 단층을 잇는 건 문학밖에 없지요. 현실을 간접화함으로써 연속성을 부여하는 게 문학이 하는 일이오. 이렇게 연속성을 부여하는 일에 내가 종사하고 있는 것이지요. 내가 쓴 고교 문학 교과서는 지금도 많이 팔리고 있어요.”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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