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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에 사는 소설가 김도연은 집에서 가까운 진부도서관을 13년째 출입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대학 시절부터 쓰기 시작한 모자는 이제 거의 몸의 일부가 되어 실내에서도 좀처럼 벗지 않는다. 평창/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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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최재봉의 공간
(18) 소설가 김도연의 진부도서관
도서관에 관한 가장 근사한 말은 역시 보르헤스한테서 나왔다. ‘천국이 있다면 그곳은 일종의 도서관과 같은 모습일 것’이라고 그는 썼다. 문학과 책에 관한 놀라운 통찰력을 지닌 작품들의 지은이이며, 그 전에 엄청난 책벌레였고, 눈이 먼 말년에는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직을 맡기도 한 이다운 발언이라 하겠다. 소설가 김도연의 등단작이자 첫 소설집(2002) 표제작이기도 한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 작가 보르헤스와 특별한 관련을 지닌 것은 아닐 테다. 그러나 평창 고향 집에서 가까운 진부도서관을 13년째 드나들고 있는 그에게 도서관은 보르헤스가 말한 대로 천국에 가까운 어떤 것일 법도 하다. “그동안 내가 쓴 모든 글들은 이 도서관에서 썼다”고, 최근에 낸 산문집 <영>(嶺)의 서문에서 그는 썼다.
그가 19년여에 걸친 타향살이를 접고 고향으로 내려간 것이 2000년 1월이었는데 진부도서관은 그 전해인 1999년 말에 개관했다. 흡사 그의 귀향을 기다렸다는 투였다. 그 도서관에서 쓴 작품으로 그가 등단한 것이 2000년 가을이었으며 그 뒤로도 도서관에 출근하다시피 하며 글을 쓰고 있으니, 진부도서관은 김도연 문학의 자궁과도 같은 공간이라 하겠다.
카페 말아먹고 아버지에게 더부살이
대관령 아래 평창에서 태어나 진부중학교를 졸업하고 춘천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타관살이를 시작했던 김도연이 19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것은 금의환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금의환향이기는커녕, 아주 망했다는 생각을 그때의 그는 했더랬다. 강원대 불문과를 다닐 때부터 소설에 뜻을 두어 습작과 투고를 거듭했지만, 지방신문 신춘문예 당선의 이력으로는 활동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어머니가 친척 빚보증을 섰다가 쫄딱 망하는 바람에 집에서 생활비를 부쳐줄 형편도 못 됐다. 춘천의 주물공장이나 아파트 공사장 등을 전전하다가 작은누나가 수원에 차린 카페 일을 돕게 됐다. ‘아그리파의 시선’이라는 이름의 지하 카페 소파에서 잠을 자며 7년을 보내면서도 습작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구제금융 사태가 터지면서 카페는 문을 닫게 되었다. 일단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도저히 더 못 있겠다’는 생각에 아버지에게 사정을 했다. 1000만원을 얻어서 모교인 춘천 강원대 앞에 아주 작은 카페를 열었다. 파는 술보다 마셔 없애는 술이 더 많았다. 1년 만에 말아먹고 나니 손에는 200만원이 남았다. 가난한 소설가 지망생이 싫다며 애인도 떠났다. 더는 갈 데가 없었다. 돌아와야 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망한 몰골로 집에 돌아오는 게 남 보기에 창피했다. 이삿짐 차를 일부러 저녁에 불러서는 ‘야음을 틈타’ 집으로 들어갔다.
“‘끝까지 왔구나’ 싶더군요. 처음엔 집에서 겨울만 나고 다시 나갈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13년째 고향에 붙어 있게 된 게 다 도서관 때문이었어요. 집으로 들어온 사흘 뒤인가, 진부 읍내를 어슬렁거리다가 이 도서관을 발견했지요. 이 작은 면소재지에 도서관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깜짝 놀랐지요. 낮에 갈 데가 생겼다 싶어 반갑더라구요.”
매일 도서관에 다니며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삶이 시작되었다. 진부도서관은 그가 졸업한 진부중학교 입구에 있다. 요즘 ‘대세’인 갤러리를 닮은 외양이 아니라 면사무소를 연상시키는 지하1층 지상2층짜리 딱딱한 건물이다. 대관령면(옛 도암면) 집에서 도서관까지는 20리 거리. 처음 8년 동안은 하루 네 번 있는 군내버스를 타고 도서관을 오갔다. 4년 전 소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이 영화로 만들어지게 되면서 원작료를 받아 승용차를 구입했다. 버스든 승용차든 아침 아홉시에서 열시 사이에 도서관에 왔다가 저녁 여섯시에 ‘퇴근’하는 생활에는 변화가 없다.
그의 ‘지정석’은 2층 일반열람실 맞은편의 휴게실을 겸한 작은 열람실이다. 처음 도서관을 이용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걸신 들린 것처럼 책을 읽어 치웠다. 세 계절 동안 500권 정도를 읽은 것 같다고 그는 돌이켰다. 책을 읽는 틈틈이 습작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렇게, 등단작이 쓰였다. 이렇게 시작하는 작품이다.
“그녀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다./ 삼 일 동안 쉬지 않고 내리는 눈처럼 나는 이 작은 포구의 민박집 이층에서 잠을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있다. 잠은, 그 속의 꿈은 일그러진 기억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대합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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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그의 소설은 ‘한국적인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평창/박종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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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기가 시작됐다
13년째 출근 도장 찍다보니
어느새 별명이 ‘명예관장’ 고향 현실을 받아적는 건
김유정, 이문구의 아류일 뿐
그래서 내 소설은
자주 꿈과 환상을 헤맨다 첫 작품의 첫 독자는 우리집 개 그런데 이 작품에는 웃기면서도 슬픈 사연이 따라다닌다. 작품을 완성해 놓고 “그게 과연 이야기인지 확신조차 서지 않았”지만, 읽고 검토해 달라고 부탁할 만한 사람이 가까이에 있을 리 없었다. 원고가 든 가방을 들고 며칠을 집과 도서관을 하릴없이 오가던 어느 날, 술에 만취한 채 집으로 들어왔다. 외등이 밝혀진 외딴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잡종 사냥개뿐이었다. 꼬리를 흔드는 개의 환대가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나를 이해하는 건 너뿐이구나’ 싶은 생각에 개를 껴안고 가방에서 원고를 꺼내 읽어 주었다. 끙끙거리며 몸을 빼려는 개의 머리를 쥐어박아 가면서. 어려운 부분은 친절하게 보충설명까지 해 가며 한 시간여에 걸쳐 단편 하나를 다 읽었다. 요컨대 김도연의 등단작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첫 독자는 개였다는 이야기. 믿거나 말거나. 김도연 소설의 자궁인 도서관은 때로 그 무대로도 등장한다. 그의 두 번째 소설집 <십오야월>(2005)에 실린 단편 <흰 등대에 갇히다>, 그리고 지난해 8월 <현대문학>에 발표한 단편 <콩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흰 등대에 갇히다>에는 도서관 장기 출입자인 세 사람이 등장한다. 작가 자신을 대리하는 인물 ‘사향노루’와, 각기 목표로 삼는 국가고시 명칭을 따 ‘농촌지도사’와 ‘9급공무원’으로 불리는 두 사람. 눈발이 날리는 겨울 도서관을 배경으로 삼은 소설에서 세 사람은 따분함을 못 이겨 사서한테서 열쇠를 빼앗아 도서관 옥상으로 올라가는데, 그곳에는 난데없이 여름 바다와 해수욕장이 펼쳐지고 주인공들은 그곳에서 해수욕을 즐긴다. 그러나 열쇠를 강제로 빼앗는 과정에서 사서가 죽고 사서의 주검을 유기했던 세 사람은 경찰 조사를 받게 되며, 결국 사향노루 혼자 죄를 뒤집어쓰고 죽은 사서와 함께 빈 등대에 갇힌 채 자신이 쓴 글 ‘사향노루,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죽은 사서에게 읽어 준다…. 이렇게 몽환적인 이야기 속에 사향노루가 기고했던 글을 번번이 거절했다는 잡지 <창작과 비평> 12월호, 야한 화보가 실린 성 관련 책만 골라 읽다가 어린 여학생들한테 변태로 오인받는 장면, 다방 아가씨를 도서관으로 불러 커피를 시켜 마신 일화 등 작가 자신의 도서관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삽화들이 섞여 든다. <콩 이야기>는 좀 더 사실적이어서, 도서관에서 콩에 관한 글을 쓰려는 ‘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콩에 관한 온갖 자료를 정리해 놓고 콩에 얽힌 추억을 다 긁어모아 보아도 정작 쓰고자 하는 글은 한 줄도 나아가질 않는다. 나중에는 아예 콩알을 도서관에 들고 와서 ‘콩’이라는 글자를 만들거나 공기놀이를 하다가 떨어뜨려서 탁자 아래로 기어들어가 찾는 소동을 벌이기도 한다. 결국은 사서가 콩들을 빼앗아서 도서관 옥상의 화분에다 심는다. “이 콩들은 잠시 압수합니다. 눈앞에 콩이 있어야만 콩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건 아니겠죠?”라는 말과 함께. 이런 사서를 가리켜 ‘나’는 “거의 매니저나 편집자와 다름없”다고 말하는데, 도서관의 어느 직원보다 오랫동안 도서관을 출입했대서 ‘명예관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김도연에게 어울리는 매니저요 편집자인 셈이다. 인용한 작품들에서 보듯 김도연의 소설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어렵지 않게 넘나드는 신축성을 커다란 특징으로 삼는다. 스스로 “지구의 절벽”이라 표현한 고향에서 매일 마주치는 일상이 지루한 반복일 뿐이라면 꿈속의 일들은 현실보다 다채롭고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우시장에 내다 팔려던 소를 농용 트럭에 싣고 동해안에서 시작해 남해안과 서해안을 한 바퀴 돈 다음 서울 종로 거리에 입성한다는 내용의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도 그가 꾸었던 꿈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인간과 동물이 임의롭게 대화를 나누고 시간과 공간이 멋대로 뒤섞이는 식의 장치 때문에 김도연 소설에는 흔히 ‘한국적인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설명이 따라붙는다. 현실과 환상 사이의 길항, 그로부터 빚어져 나오는 김도연 소설의 숙명에 대해 그의 강원대 시절 스승이었던 평론가 황현산은 소설집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붙인 해설에서 이렇게 쓴 바 있다. “그가 자기의 것으로 인정할 만한 삶은 이 시대의 중심에도 없었고 변두리에도 없었다. 그가 늘 접촉했던 것은 변두리의 사람들이었지만, 그가 몰두하고 있는 작업을 이해하는 데에 가장 인색했던 것도 그 사람들이다. (…) 김도연은 자신이 피해 달아나던 허공의 현실이 결국 가장 잔인한 현실인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소설가가 되었다.” 황현산 교수가 공지천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던 그를 학생들 시켜서 강의실로 불러들이곤 했을 정도로 대학생 김도연은 공부에 뜻이 없었지만, 불문학이 그에게 끼친 영향은 녹록지 않았다. “한창 감수성 예민한 20대에 프랑스 시와 소설에 빠져들면서 강원도 산골이라는 제 출신을 버리다시피 했지요. 그렇지만 그건 역시 책에서 배운 거였고, 제가 살아온 현실은 따로 있어서 그 둘 사이의 길항과 갈등이 제법 심각했어요. 지금도 저는 고향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렇게 쓴다면 기껏해야 김유정이나 이문구의 아류를 벗어나기 어렵지 않겠어요? 차라리 환상적인 측면을 더 극단적으로 밀고나가 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늦깎이 총각, 사서에게 작업을 걸다 아침에 나올 때 돌아보면 팔순에 접어든 부친과 모친은 굽은 허리를 더 굽힌 채 집 뒤 비탈밭에 매달려 있다. 정 급할 때면 그 역시 일손을 돕기도 하지만, 워낙 어려서부터 밭일과 가축 건사에 시달려 온 터라 농사라면 지긋지긋하다. 그렇기 때문에 ‘농사지으면서 소설 쓴다’는 말을 들을 때면 머쓱하기 짝이 없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미장가인 그에게 외로움은 숙명과도 같다. 출판사에서는 ‘김도연 총각 작가님’이라 적힌 시집을 보내오고, 친척들은 연변 조선족 처녀와의 결혼을 진지하게 권유한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도서관에서 사서와 연애를 시도했다가 좌절한 일도 있다. 소설과 산문에서 그는 자주 외로움을 호소하는데, 그것을 다만 ‘원초적 외로움’으로 받아들이는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결혼은 해야겠지만 벌이가 시원찮으니 나 같은 사람하고 연애하겠다는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제 처지를 수긍하려 합니다. 자꾸 외롭다 외롭다 하면 저만 더 힘들어지니까요.” 김도연은 지난달부터 산악자전거를 타는 재미에 들렸다. 저녁 여섯 시 도서관을 나와 차에 자전거를 싣고는 오대산으로 내달린다. 15분이면 매표소에 도착. 입구에 차를 세워 놓고 자전거로 바꿔 타고 상원사까지 비포장길을 달리면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차를 타고 갈 때와 걸어갈 때의 풍경이 다르듯이,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보는 풍경은 또 다르더라구요. 요즘은 이틀 거리로 꽃이 달라져요.” 도서관이 휴관하는 월요일이면 아예 아침부터 자전거에 올라 대관령과 오대산 곳곳을 쏘다닌다. “아직도 내가 사는 이 지역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으며, ‘지역’이라는 것에서 어떤 문학적 프리미엄을 얻고 싶지도 않다”고 말하는 그이지만, 그의 자전거 타기는 스스로에게 하는 이런 다짐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에서 노래해야 한다고. 그것이 내가 살고 넘어가야 할 영이라고.”(산문집 <영>에서) 최재봉 문화부 기자 bong@hani.co.kr 영상주소 http://www.hanitv.com/6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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