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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7.27 19:34 수정 : 2012.07.31 16:05

<7년의 밤>의 작가 정유정이 새 소설을 쓰기 위해 머물고 있는 지리산 자락 암자에서 암컷 개 ‘원화’를 안고 밝게 웃고 있다. 정유정의 새 소설은 개에게서 시작된 인수공통전염병을 소재로 삼는다. 남원/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토요판] 최재봉의 공간
(21) 소설가 정유정의 지리산 암자

지리산으로 향한 것은 태풍 예보가 있던 날이었다. 서해를 따라 북상할 예정인 태풍은 특히 지리산 일대에 많은 비를 뿌릴 것이라 했다. 걱정이 되면서도 한편에서는 모종의 기대감 또한 움터 올랐다. 지리산에서 태풍과 대면한다! 부러 계획을 세워서라도 한번쯤 경험해 보고 싶은 일 아니겠는가. <7년의 밤>의 작가 정유정을 만나러 가는 길은 이렇듯 태풍의 한가운데로 나아가는 길이기도 했다. 정유정과 태풍, 어쩐지 어울리는 짝이다 싶었다.

정유정이 들어 있는 지리산 암자까지는 남원에서 차로 30분 정도 걸렸다. 태풍은 아직 제주도 남쪽 해상에 머물고 있었다. 차가 시내를 벗어나는가 했더니 곧바로 시원한 계곡과 가파른 산길이 나타났다. 포장도로이긴 했지만 경사가 심해서 채 몇 굽이를 돌기도 전에 깊은 산속에 들어왔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막상 암자가 있는 동네는 제법 너른 평지여서 산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루 네 갑 줄담배 속에 ‘초고 초집중’

암자 바로 앞으로도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나 있었다. 암자 이름을 새긴 돌비석이 도로와 암자의 경계를 나누었고, 안쪽으로 커다란 돌탑 두 개가 서 있었다. 고시 공부를 위해 와 있는 이들이 많다더니 마당의 연못 주위에도 작은 돌탑들이 여럿 보였다. 법당이 암자의 중심을 이루었고, 보살 두 분이 거처하는 그 옆 요사채와의 사이 공간을 방으로 꾸민 곳이 작가의 거처였다. 법당과 요사채가 있는 공간과는 조금 떨어져서 고시생들이 머문다는 별도의 건물이 자리해 있었다. 안 본 사이 머리를 짧게 자른 작가가 헐렁한 셔츠와 편한 운동복 차림으로 일행을 맞이했다.

그가 이곳에 들어온 것은 지난달 13일. 소설을 쓰기 위해 9월 말까지를 기약하고 온 것인데, 여의치 않으면 10월 말까지 연장될 수도 있다고 했다. 지난해 3월 발표한 <7년의 밤>으로 일약 스타 작가로 발돋움한 정유정은 지금 인수공통전염병을 소재로 한 다음 소설을 쓰고 있다. 서울 외곽 도시 ‘화양’을 무대로 삼아, 개에게서 시작된 질병이 사람들에게까지 확산되면서 도시 전체가 폐쇄된 가운데 삶과 죽음을 둘러싼 사투와 절망에서 비롯된 광기, 그리고 생명과 사랑을 위한 몸부림이 복합적으로 펼쳐질 예정이다.

“이 소설을 처음 착상한 것은 2010년 12월이었어요. <7년의 밤>을 끝내기 한두 달 전이었는데, 구제역으로 소와 돼지 들이 생매장된다는 뉴스를 보면서 엄청 울었어요. 소와 돼지는 가축이니까 생매장한다지만, 반려동물인 개나 고양이였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생각하다 보니 인간이라는 종에 대해 회의도 생기더군요. 하룻밤 사이에 시놉시스를 썼지요.”

시놉시스를 쓰는 일이 이 작가에게는 일의 시작일 뿐이다. 일종의 작업용 메모라고 해도 좋겠다. 다음 단계는 소설 쓰기에 필요한 공부. 책을 통한 이론 공부에서부터 전문가를 상대로 한 인터뷰, 현장 취재와 직접 체험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가 가장 공을 들이는 대목이다. <7년의 밤> 출간에 따른 각종 프로모션 행사를 얼추 마친 뒤부터 반년 남짓을 이런 공부에 할애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공부가 끝난 뒤에야 초고 작성에 들어가는데, 그 역시 어려운 일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초 목포 앞의 한 섬에 들어가 한 달 동안 지내면서 초고의 3분의 1을 썼고, 섬에서 나와 광주 집에서 연말까지 나머지를 마무리했다. 하루에 담배를 네 갑씩 피워 가면서 ‘초집중’을 한 결과였지만, 그에게 초고란 본격적으로 원고를 쓰기 위한 근거 내지는 자료에 지나지 않는다. 초고에서부터 최종 탈고까지 적어도 열댓 번은 고쳐 쓰는 것이 그의 고약한(?) 버릇이다. “초고의 흔적이 탈고 때까지 남아 있으면 그 소설은 실패”라고 믿는 그는 지독할 정도로 고치고 또 고친다.

“지금은 초고를 가지고 세부 장면을 구축하는 중이에요. 가장 힘든 단계죠. 소설 전체로 보자면 도입부에서 전개부로 넘어가는 대목이에요. 도입부가 원고지로 400장 정도인데, 그걸 쓰는 데 한 달이 걸렸네요. 전개부는 좀더 빨라질 거예요. 도입부에서 인물들의 캐릭터도 잡아야 하고 서로 얽히게도 만들어야 해서 언제나 도입부가 제일 힘들어요. 등산으로 치자면 초입에 깔딱고개가 있는 셈이죠.”

하룻밤새 시놉시스를 써버린
인수공통전염병 소재의 소설
개에게서 시작된 질병이
도시 전체로 퍼지며 벌어지는
사투와 절망과 사랑의 몸부림

‘7년의 밤’을 내기 전엔
집에 틀어박히는 체질이었죠
이젠 전화도 오고 손님도 오고…
아침저녁 산책을 빼면
여기에선 쓰고 또 씁니다

소설가의 책상엔 왜 스케치북이 있을까

초고를 완전 원고로 바꾸는 ‘장면 구축’ 대목에서 그는 보통 하나의 장면을 놓고 두서너 개의 서로 다른 버전을 써 본 다음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걸 고르는 방식을 택한다. 공정이 더딜 수밖에 없는데, 작업 속도를 늦추는 ‘범인’이 그런 글쓰기 버릇만은 아니다. 그는 소설을 쓸 때 장면 묘사를 위해 스케치북에 해당 장면을 몇 번이고 그림으로 그려 본 뒤에야 비로소 글로 옮기곤 한다.

“가령 119 구조대가 전염병이 발생한 현장에 출동하는 장면이라 쳐 보죠. 우선 현장에 이르는 도로를 보여주는 그림이 필요하겠죠? 현장이 오래된 아파트라서 낡은 아파트의 내부 구조 그림도 필요하구요. 구조대원들이 문을 따고 아파트에 들어가는 순간, 안방문 뒤에 숨어 있던 개가 갑자기 뛰어올라서 문밖으로 뛰쳐나가는 장면을 쓸 때에도 아파트 내부 구조를 그림으로 그려 놓아야 좀더 정교한 묘사가 가능해지는 거예요. 그림으로 여러 번 그려 봐야 제 머리에도 확실히 각인이 되고 독자들에게도 장면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말을 듣고 보니 그가 글을 쓰는 방 안 책상 위에는 크고 작은 스케치북이 여러 권 보였다. 그 스케치북에는 소설 속 활자로 몸을 바꿀 장면들이 색색의 그림들로 들어앉아 있었다. 도로는 주황색, 숲은 초록, 건물은 회색 식으로 색을 구분해서 쓰는데, 특히 중요한 대목에는 보라색을 택한다고. 책상 정면 벽에는 화양의 모델이 된 의정부시 전도가 붙어 있고, 책꽂이 위에는 그에게 중요한 글쓰기 도구인 색연필 통도 보인다. 공간을 스케치북에 그림으로 나타낸다면, 시간은 노트 달력에 날짜별로 꼼꼼히 적어 넣는다. 이밖에도 자료 조사와 공부 결과를 담은 두툼한 카드철과 몇 권의 플롯 노트, 인물과 사건의 세부를 메모한 작은 노트, 포스트잇 등 다양한 자료들이 우등생의 비법 노트처럼 책상 주변에 펼쳐져 있었다.

작가가 소설 속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미리 그려둔 그림.
그가 이런 번거로운 방식을 쓰기는 두 번째 소설인 <이별보다 슬픈 약속>(2002)에서부터였다. 첫 소설 <열한 살 정은이>(2000) 때는 안 그랬는데, 두 번째 소설을 쓰면서는 단색 연필로 연습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세 번째 소설 <마법의 시간>(2004)을 거쳐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2007)에서는 그림에 색깔을 입히는 단계로 나아갔다.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내 심장을 쏴라>(2009)는 “거의 애니메이션 원화를 그리듯” 그렸고, <7년의 밤>의 경우 가령 오영제와 최현수가 싸우는 장면은 동작 하나하나를 그림으로 재현했다. 아들과 직접 실연까지 해 가면서, 그 장면에서만 스무 컷 정도의 그림이 나왔다고.

이렇게 힘들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원고를 끝낸다 해도 ‘완성’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일단 탈고한 원고는 수의학자 우희종 교수(서울대)의 감수를 받아야 하고, 그 뒤에도 몇 번에 걸쳐 꼼꼼히 문장을 손볼 예정이다. 책 출간은 내년 6, 7월께로 예정하고 있다. 감수와 문장 손질 같은 작업은 집에서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저는 본래 여행을 싫어하고 집에 틀어박혀 있는 체질이에요. 해외여행은 해 본 적도 없고 고향 전라도 밖으로도 거의 나가 보질 않았을 정도예요. 글도 제 방에서 썼지요. 2009년까지는 제 방이 세상으로부터 저를 고립시켜 주는 ‘감옥’ 구실을 해 주었어요. 그런데 <7년의 밤>을 낸 뒤 프로모션 등으로 대외활동을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제 방이 감옥이 아닌 로비가 돼 있더군요. 전화도 오고 방문객도 찾아오고. 저 스스로를 가두고 가라앉히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남편에게 부탁해 찾아낸 게 목포 앞 섬 증도의 펜션, 그리고 이 암자였다. 여기서 정유정은 새벽 서너 시면 잠에서 깨는데, 일부러 암자의 일과에 맞춘 것은 아니다. 2005년 무렵부터 몸에 익힌 습관이다. 잠에서 깨면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자욱한 안개 속으로 산책을 나간다. 암자를 중심으로 3킬로미터쯤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한 시간쯤 일을 하다가 일곱 시에 목탁 소리를 신호로 아침 공양을 한다. 그 뒤로도 계속 글쓰기에 집중하다가 열두 시에 점심 공양, 다시 글쓰기를 하다가 여섯 시에 저녁 공양을 마치고는 ‘고시 총각’들과 함께 8킬로미터를 거의 매일 걷는다. 산책을 마친 뒤 씻고는 아홉 시가 되기 전에 잠자리에 든다. 텔레비전은 아예 안 본다. 술·담배도 끊었다.

작가가 암자 인근 폭포에 올라 시원스레 내려가는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다. 남원/김태형 기자
“멋내지 말라”던 외삼촌, 그리고 스티븐 킹

이렇게 독할 정도로 자신을 채찍질해 가며 소설에 전력투구하는 것은 그가 남보다 늦게 출발한 작가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려서부터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했던 그는 어머니의 반대로 작가의 꿈을 뒤로 미룬 채 간호대학에 진학해야 했다. 명문 대학을 나와서 희곡을 습작하다가는 등단도 못한 채 마흔 전에 요절한 오빠의 사례가 어머니에게는 뼈아픈 교훈이 되었던 모양. 그 외삼촌은 중학 시절 그가 쓴 독후감을 빨간 사인펜으로 고친 다음 ‘멋내지 마라’는 문장 지침을 일러 주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상이란 상은 모조리 휩쓸다시피 문재를 발휘했음에도 원하는 문학 전공을 할 수 없었던 정유정이 오랜 우회로를 거쳐 글쓰기로 돌아오기까지 결정적인 도움을 준 이가 간호대학 시절 교양국어 외래강사로 나왔던 고 정익섭 교수(전남대 국문과)였다. 중간고사 때 제출한 글을 통해 정유정을 ‘발견’한 정 교수는 그의 습작 노트를 마저 받아 읽고는 작가의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해 주었다. 그로부터 십수 년 뒤, 병원 중환자실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거쳐 마침내 전업작가가 되기까지 그는 정 교수의 말씀을 성경 구절처럼 가슴에 품고 그 세월을 견딜 수 있었다.

외삼촌과 정 교수에 이어 그가 마음속 스승으로 여기는 또 한 사람이 미국 작가 스티븐 킹이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기성 작가에게 따로 글쓰기를 배우지도 않은 그가 혼자 쓴 소설들로 몇 군데 공모전에 응모했다가 쓴맛을 본 뒤였다. 본심에 오른 그의 작품이 심사위원이었던 중견 소설가한테 혹독한 평을 들었던 어느 날, 낙담한 채 광주의 헌책방 거리를 거닐다가 만난 스티븐 킹의 소설 <스탠 바이 미>가 그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야기의 실체를 처음으로 알게 된 기분이었다. 그 뒤로 스티븐 킹 전작주의자를 자처하며 그의 모든 소설을 구해 읽은 그는 지금도 킹을 ‘교주’로 모시고 있다.

“제가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더라면, 또는 첫 소설에서부터 잘됐더라면 오히려 좋은 작가가 되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오랜 기다림과 시련을 거쳤기 때문에 스스로의 장단점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간호사 생활 5년 남짓도 소설을 쓰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어요. 지금 쓰는 소설만 해도 제가 간호학 전공이기 때문에 다른 작가들보다는 그래도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는 측면이 있거든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의 말에 빠져 있는 사이 지리산은 태풍의 영향권에 들었고, 저녁 먹을 무렵부터는 세찬 장대비가 쏟아졌다. 잠자리는 암자 인근 숙소에 마련했는데, 밤새 강풍이 불고 빗줄기가 창을 두드려 대는 통에 자다가도 자주 깨어야 했다. 신화 속 거인이 방을 통째로 들고 마구 흔들어 대는 느낌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마당에 서 있던 항아리가 바람에 넘어져서 깨져 있었다. 태풍의 밤이 지난 오전, 작가와 함께 노고단을 올랐다. 십 미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연 비안개를 뚫고 노고단에 오른 그는 돌탑에 돌 하나를 가만히 얹었다.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번 소설을 잘 끝낼 수 있게 해 주십사. 복분자주를 곁들인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을 먹은 다음 속세로 내려왔다. 태풍이 물러간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어여뻤고, 열린 차창으로는 올해의 첫 매미 울음이 들려왔다.

최재봉 문화부 기자 bong@hani.co.kr

영상은 한겨레티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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