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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강릉에 걷는 길 18개 구간을 만든 소설가 이순원이 바우길 2구간을 걷고 있다. 바우길을 만들기 전에는 등산화나 등산복을 착용해본 적이 없다는 그. 등산 차림이 제법 잘 어울린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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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최재봉의 공간
(23) 소설가 이순원의 강릉 바우길
올레길·산티아고길 얘기 끝에한 선배가 따져 말하길
“강릉에 걷는 길 한번 내봐라
니가 강릉을 글에 이용만 했지
실제 해준 일은 없지 않으냐” 3년 동안 18개 구간 250km
코스를 정해 길을 닦고
이름을 붙여 표지를 세웠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문학의 길
첫 이야기는 ‘길’이다 강원도에는 왕릉이 둘 있다. 숙부인 세조에게 쫓겨나 억울하게 죽은 단종의 영월 장릉, 그리고 영동고속도로 강릉 휴게소에서 멀지 않은 성산면 보광리 산자락에 있는 명주군왕릉이다. 명주군왕(溟州郡王)은 신라 태종무열왕의 6대손이자 강릉 김씨의 시조인 김주원의 묘소다. 명주군왕릉은 강릉 바우길 세 개 구간의 기점 및 종점에 해당한다. 보광리 바우길 게스트하우스에서부터 이곳까지 12.5㎞에 이르는 제3구간 ‘어명을 받은 소나무길’, 이곳에서부터 출발해 사천해변공원까지 가는 18㎞짜리 제4구간 ‘사천 둑방길’, 그리고 역시 여기서 출발해 송양초등학교에 이르는 11㎞ 길이의 제10구간 ‘심스테파노 길’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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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에 대관령 국사성황당에 오른 작가 이순원이 우산을 쓴 채 활짝 웃고 있다.(위) 바우길 구간을 알리는 솟대 표지판. 신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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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길이란 대관령과 강릉 일대의 산과 들, 호수, 해변 등을 모두 18개 구간으로 나누어 걸을 수 있도록 조성한 트레킹 코스를 부르는 이름이다. 2009년 6월부터 조성을 시작해 지금까지 모두 18개 구간 250㎞ 정도가 닦인 이 길의 중심에 소설가 이순원이 있다. 중편 <은비령>과 장편 <아들과 함께 걷는 길> <워낭>, 연작장편 <수색, 그 물빛 무늬> 등의 작가 이순원은 바로 이곳 강릉 출신이다. “2009년 봄쯤 고향 선배들을 만났더니, 제주 올레길이며 스페인 산티아고길 등에 관한 얘기 끝에 강릉 주변에도 걷는 길을 만들면 좋겠다면서 저더러 일을 맡아 보라는 거예요. 처음엔 고사했죠. 작가는 작품을 쓰는 게 정말 고향을 위하는 길이다, 나는 내 소설들에서 고향 이야기를 충분히 하고 있다, 게다가 나는 지금 강릉을 떠나 살지 않느냐면서 말이죠. 그런데 한 선배가 따지듯 묻기를, 니가 강릉을 문학에 이용만 했지 현실적으로 강릉을 위해서 한 일은 없지 않으냐는 거예요. 그 말이 저에게 화두로 다가왔어요. 그 말을 붙들고 한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일을 벌이기로 했지요.” 처음엔 짧으면 6개월, 길어도 1년이면 될 줄 알았다. 고향을 위한 의무복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한 뒤 자신의 자리인 문학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코스를 정하고 길을 닦는 데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자동차 도로가 뚫리기 전 마을과 마을을 이어 주었던 예전의 산길을 다시 찾아내 복원하고 이정표와 표지를 세우는 일은 생각처럼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산악인 출신 이기호 대장과 탐사대원들이 포수 마스크 같은 프로텍터와 헬멧을 착용하고 예초기를 든 채 풀숲에 파묻힌 길을 부지런히 ‘복원’하는 노력을 펼쳤음에도 그러했다. “바우길을 개척하던 2년 동안은 단 한 주도 빼놓지 않고 주말마다 강릉엘 왔어요. 처음 3개월은 아예 와서 살다시피 했죠. 만 3년이 지나니까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것 같네요. 길도 안정되고 시스템도 정비가 되어서 이제는 제가 없어도 알아서 돌아가게끔 된 거예요.” 일산에 사는 이순원과 함께 대관령으로 향한 것은 그가 그토록 열심히 매달려 조성한 바우길을 걸어 보고 싶어서였다. 첫 목적지는 바우길 제2구간 ‘대관령 옛길’.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하행 휴게소에서 국사성황당과 반정을 지나 바우길 게스트하우스에 이르는 14㎞ 구간이다. “늙으신 어머님을 강릉에 두고/ 외로이 서울로 가는 이 마음/ 때때로 머리 돌려 북촌을 보니/ 흰 구름은 날아 내리고 저녁 산만 푸르네”(신사임당 <대관령을 넘으며 친정을 바라보다>) 신사임당이 강릉에 와서 친정어머니를 뵙고 대관령 옛길을 넘어 한양으로 가던 중 이 시를 지었다면, 이순원이 1996년에 내놓은 소설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은 작가 자신이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아들과 함께 대관령을 넘어 고향 집을 찾아가는 과정을 소설에 담았다. 그 무렵 “집안의 오래된 상처에 관한 이야기”를 소설로 낸(제목이나 내용이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수색, 그 물빛 무늬>가 그 작품으로 짐작된다) 작가는 열두 살 아들과 함께 50리에 이르는 대관령 옛길을 걸어서 넘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작가로서 글을 쓸 때의 마음, 청소년 시절의 방황, 아이의 길과 어른의 길, 사랑과 우정, 삶과 죽음 등 이야기의 소재는 다채롭지만, 그 저변에 깔린 것은 아무래도 부모님을 불편하게 하고 작가 자신에게도 죄스러움을 안겨준 최근의 소설에 대한 걱정이었다. 때가 때이고 자리가 자리인 만큼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는 고향과 아버지라는 핵심으로 수렴되고, 어두워진 뒤에야 도착하는 아들과 손주를 동구 밖까지 나와 기다리던 늙은 아버지와 만나는 장면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도열한 금강소나무, 푹신하게 깔린 솔잎
서울에서 작가와 함께 출발할 때 날은 조금 흐렸지만 비가 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동쪽을 향해 길을 줄여 나갈수록 구름이 짙어졌고, 진부를 지나 횡계 즈음부터는 결국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관령과 그 너머의 변화무쌍한 날씨에 크게 데었던 일이 떠오르면서 불안감이 엄습했다. 작가가 대관령 너머 사단법인 바우길 실무자에게 전화로 날씨를 확인했다. 비가 온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주룩주룩. 아뿔싸!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사진기자는 오늘 중에 사진을 찍고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일단은 가 보는 수밖에. 대관령 휴게소에 오르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연 비안개가 시야를 가렸다. 엉금엉금 차를 몰아 국사성황당으로 향했다. 국사성황당은 강릉 단오제의 주신인 범일국사를 모신 사당이다. 진부의 ‘도서관 작가’ 김도연(<한겨레> 6월16일치 20면 토요판 ‘공간’ 기사 참조)이 얼마 전에 낸 소설 <아흔아홉>에서도 주요한 무대로 등장한다. 그사이 빗발은 조금 가늘어져 있었지만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 빗속에서도 성황당과 그 위쪽 산신각에는 음식을 싸 들고 와 치성을 드리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등산 조끼 위에 노란색 우비를 겹쳐 입은 작가를 빗줄기 속에 세워 두고 급하게 사진 몇 장을 찍었다. 다시 차량으로 반정으로 이동해 ‘대관령 옛길’ 표지석을 배경으로 몇 장의 사진을 더 찍었다. 그러고는 2구간 종점인 게스트하우스까지도 다시 차량으로 이동. 걸어서 올 길을 차에 실려 내려오자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사진기자를 먼저 보내고, 저녁에는 영 너머의 김도연이 합류해 게스트하우스 식당에서 술을 나누었다. 고향 선후배 작가의 대화는 허물없어서 푸근했다. 자리를 파하고 나와 보니 하늘에는 별들이 제법 보였다. 내일은 걸을 수 있겠구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게 아쉬움 반 기대 반으로 게스트하우스에서 일박을 한 다음 이른 곳이 이곳 명주군왕릉이었다. 바우길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등산복을 입고 등산화도 신어 보았다는 작가는 이제 등산 차림이 무척 자연스러워 보였다. 명주군왕릉에서 우리가 잡은 길은 10구간 ‘심스테파노 길’이었다. 길의 중간쯤에 있는 골아우 마을에서 심스테파노라는 인물이 신앙 생활을 하다가 병인박해(1866년) 때 한양에서 내려온 포도청 포졸들에게 잡혀가 순교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의 이름을 길에 붙였다. 아쉽지만 구간 전부를 걷지는 못하고 영동고속도로 강릉 휴게소까지 30분 남짓 거리를 걸었다. 바우길이 대부분 그러하듯 이 길에도 붉은색 줄기의 금강소나무들이 시위하듯 도열해 있었다. 마른 솔잎이 푹신하게 깔린 길은 걷기에 더없이 좋았다. 평일 오전이어서인지 다른 걷기꾼은 보이지 않았다. 잘 알려진 제주 올레길에 비한다면 길의 자취는 희미한 편이었다. 풀숲에 덮여 지워질 듯한 곳도 있어서 오히려 자연에 가깝다는 느낌을 주었다. 성당 교우들이 다녀가면서 남긴 리본이 길을 안내했다. 풀줄기에 맺힌 빗방울들이 발길에 차였고, 길 곳곳을 거미줄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잠자리 한 마리가 작가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이 구간의 종점인 송양초등학교는 다름 아닌 이순원의 모교다. 제주 올레 6코스에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의 모교인 서귀포초등학교가 포함된 것처럼 이순원의 모교가 바우길에 포함된 것이 흥미로웠다. 물론 서명숙도 이순원도 단순히 애교심에만 휘둘린 것은 아닐 터였다. 이순원은 “송양초교가 있는 내 고향 마을 위촌리는 450년 역사의 대동계와 향약을 이어오는 우리나라 유일의 촌장 마을”이라고 설명했다. 어쨌거나 위촌리는 이순원의 여러 소설에 ‘우추리’라는 현지 발음 그대로 등장하는 작품의 무대이기도 하다. 소풍·행군·밤도망 엮어 장편소설로도
사단법인 강릉바우길 이사장으로서 바우길 조성을 이끈 이순원은 지난해 8월 제주 올레, 지리산 둘레길, 통영 이야기길 등 전국의 20여개 길 관련 단체가 모여 만든 ‘한국길모임’의 초대 상임대표를 겸하게 됐다. 제주 올레 이후 이곳저곳에서 우후죽순 격으로 생기고 있는 길 모임들끼리 정보도 교환하고 바람직한 걷기 문화를 모색하고자 만든 단체가 한국길모임이다. 이순원의 관심이 바우길을 넘어 ‘금강산 길’을 향하는 데에는 그런 배경이 있어 보였다. “배와 버스로 가던 금강산 길마저 지금은 막힌 상태인데, 그 길이 다시 뚫리더라도 걸어서 금강산 가는 길을 따로 만들어야 합니다. 비무장지대를 횡으로 걷는 식의 답사 프로그램도 좋지만, 휴전선과 비무장지대를 종으로 통과하는 통일 지향적인 길이 필요해요. 세계 어디에도 없는 길이기 때문에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기에도 좋다고 봅니다.” 금강산 길은 아직 먼 얘기라 해도, 당장 바우길에 중국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계획은 가시권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여행 관련 업체들과 협력해서 내년 봄부터 중국의 신혼여행객들을 바우길에 오게 할 계획입니다. 바우길의 26만주 붉은 금강소나무가 중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주 놀라운 장관이라고 해요. 5구간 ‘바다 호숫길’의 해송숲에서 결혼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으면 한 편의 영화처럼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을 확인도 할 겸 이번에는 5구간을 걸어 보기로 했다. 김도연이 운전하는 차에 편승해 바다 쪽으로 내려갔다. 선교장과 경포호를 지나 송정 해변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코스 전부를 걷지는 못하고 송정에서 강문까지 3.6㎞의 해변 솔숲길을 걸었다. 동양 최대의 해송숲이라고 했다. 오른쪽으로 푸른 바다를 두고 울창한 솔숲을 걷는 기분은 그만이었다. 과연 중국 신혼여행객들을 홀릴 만해 보였다. 이순원이 중국의 신혼여행객들에게 관심을 쏟는 것은 민간 단체인 강릉바우길을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꾸려 가기 위해서다. 그는 바우길을 사회적 기업으로 만들어 직장 연수와 수학여행, 치유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는 한편 ‘바우길’을 상표로 등록해서 지역 특산품을 유통하는 일에도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것이 도움이 되더라고도 했다. 바우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든 인터넷 카페 회원이 5천명이 넘고 강릉에도 바우길을 걷는 택시 기사 모임이 생길 정도로 바우길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바우길 자체가 지닌 매력이 큰 몫을 했겠지만, 단체 대표로서 이순원이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이 그 매력을 극대화시킨 것 역시 엄연한 사실이다. 이렇듯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정작 그의 부인은 바우길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단다. 소설 쓸 시간을 빼앗긴다는 이유에서라고. 사실 그는 바우길을 한창 개척하던 2010년 1월에 장편소설 <워낭>을 낸 뒤 아직까지 신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누구 못지않게 바지런한 전업작가인 그로서는 이례적으로 오랜 침묵이다. “바우길을 만들고 운영 체계를 잡는 데에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만큼 저도 저의 원래 자리인 소설로 돌아오려 합니다. 사실 올봄부터 다시 글을 쓰고 있어요. 우선 다음달에 자연과 추억을 소재로 한 짧은 ‘힐링 픽션’(치유 소설)을 모은 책이 나올 예정이에요. 단편도 다시 쓰고 있구요, 연말에는 장편도 낼 계획입니다. 지금 3분의 1쯤 썼는데, 길을 주제로 한 작품이에요. 다섯살 때 처음 걸었던 길에서부터 시작해 학창 시절의 소풍, 군대의 행군, 그리고 청년기의 밤도망 등 길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삶 자체에 대해 성찰해 보려구요.” 비록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바우길을 만들고 걸으면서 이순원은 작가로서의 길 역시 새롭게 열어 나가고 있는 듯했다. 최재봉 문화부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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