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1.12 14:37
수정 : 2012.01.2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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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듀크 동상이 있는 와이키키 해변의 중심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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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소설가 서진의 하와이에서 살아보기 ① 나는 왜 와이키키의 민박집 주인이 되었나
하와이. 최고의 여행지로 알려진 태평양 섬이다. 여행지가 아닌 생활공간으로서의 하와이는 어떤 곳일까. 소설가 서진(사진)씨가 쓰는 ‘하와이에서 살아보기’를 4회에 걸쳐 격주로 싣는다. 서씨는 지난해 두달 동안 아내와 하와이에 머물며, 소소한 현지의 일상과 그 빛나는 매력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왔다. 서씨는 2007년 장편소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젊은 작가다.
“비싸지 않았어요?” 작년에 하와이에서 두달을 살다 왔고, 다음달에도 그럴 예정이라고 하면 으레 사람들은 그런 질문을 한다. 하와이의 물가는 미국에서도 가장 비싼 편에 속한다. 게다가 비행기표는 100만원이 넘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 중 두달, 평소 우리의 생활비 두배가 넘는 돈을 쓰며 하와이로 가는 이유가 있다.
하와이의 좋은 것들은 최고급 호텔, 명품 쇼핑몰, 폴리네시안 투어가 아니라 청명한 공기, 열대어들과 산호초가 가득한 바다, 화려한 꽃과 나무, 보드를 탈 수 있는 파도, 종잡을 수 없는 나무와 폭포… 같은 자연이다. 그리고 하와이를 즐기러 온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 이른바 알로하 마인드(Aloha Mind)가 공기 중에 달달하게 녹아 있다. 이런 좋은 것들은 모두 공짜다. 그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짧은 패키지 여행으로는 불가능하다. 서너번 정도의 짧은 하와이 여행을 통해 그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일한 우리에게 두달의 휴식을 선물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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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설가 서진씨와 아내가 하와이에 머물며 개발한 아히포키 비빔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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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난했던 유스호스텔을 탈출하다
비행기표는 차곡차곡 쌓아놓은 마일리지로 충당했다. 문제는 두달 동안 살아야 할 곳. 다섯개의 섬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오아후 섬의 와이키키에 머물기로 했다. 대중교통이나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서 다른 섬과 다르게 자동차 렌트를 하지 않아도 사는 데엔 불편이 없을 것 같았다. 문제는 살 곳. 크레이그 리스트(craiglists.org)에 올라온 빈방 정보를 찾아봤지만 한국에서 방을 직접 보고 계약을 할 수 없어서 위험 부담이 컸다. 호텔이나 휴가용 콘도는 비싸고, 아파트 셰어도 여의치 않았다. 여행 직전까지 워낙 바빠서, 하와이니까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당일 숙소도 예약하지 않은 채로 출발했다. 전세계 거지들이 홈리스가 되고 싶은 곳 1위가 하와이다. 날씨가 따뜻하니까 길거리에서 얼어죽을 염려도 없고 관광객들의 인심도 후하니까. 최악의 경우 하와이의 홈리스가 되는 것밖에 더하겠어?
하지만 우리의 알로하 마인드는 판단 착오였다. 일단 이틀은 유스호스텔에 묵기로 했지만, 몇주일씩 한방에 묵고 있는 ‘짱’이 있는 방에 배정되어 청결 상태도 불결한데다 소음은 또 어떻게 그리 심한지. 첫날 저녁에 방에 떨어진 100달러짜리 묶음(족히 1000달러는 넘었다)을 수소문을 해서 찾아줬더니 돈의 주인은 자기가 돈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사례로 싸구려 와인 한병을 준다길래 사양했다. 틈이 날 때마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전화를 걸었지만 방 하나짜리 주방을 갖춘 와이키키 내의 저렴한 방이 짠, 하고 나타날 리가 있나. 하다못해 한국인 슈퍼의 전단지를 뒤지고 아파트 셰어도 알아보았지만 장기 렌트가 대부분이었다. 하와이에 왔는데, 영영 유스호스텔에 싸가지 없는 어린 것들과 살아야 하나 절망했지만 순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렇게 우리처럼 방을 구하기 힘든 사람도 있을 터이니 비싸더라도 방 두개짜리 아파트를 구하자. 남은 방은 민박을 치면 될 게 아닌가! 발상의 전환을 하늘도 도왔는지 와이키키 한가운데에 있는, 이틀 뒤에 비우게 되는 방 두개짜리 아파트를 두달 동안 빌릴 수 있게 되었다. 유스호스텔 생활을 하루 더 하고, 호텔에서 이틀을 더 묵었지만 집을 구하니 그렇게 마음 편할 수가 없었다. 두달을 지내는 동안 방값의 반 이상을 절약한 것은 물론이고, 민박으로(우리는 최저 가격에 방을 빌려주었다) 세계에서 온 재미난 친구들도 사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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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와이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바니안나무. 4. 편의점에서 파는 모든 물건들이 모여 있는 에이비시(ABC) 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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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에서 살고 싶은 이유 중의 하나는 먹거리 때문이다. 본토에서 공수한 먹거리는 비싸지만 현지에서 나는 것들은 그리 비싸지 않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근처 마트나 농산물 직거래 시장에서 구입한 재료로 밥을 해 먹었다. 동양인이 많아서 한국과 일본 사람들이 먹는 모든 재료를 대형 마트에서 구할 수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히(Ahi)라는 하와이 근해에서 잡히는 참치다. 국내에서 비싼 가격에 먹을 수 있는 냉동참치 따위가 아니라 생참치다. 1만원이면 둘이서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다. 각종 양념에 아히를 깍둑 썰어서 버무려 먹는 게 하와이 전통음식인 아히포키인데, 한국식으로 초고추장과 참기름에 버무려서 코나 맥주와 함께 먹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문어도 근처에서 잡히고 새우도 잡힌다.
특히 다운타운의 차이나타운에서는 채소와 열대과일을 놀라울 정도로 싼값에 구할 수 있다. 하와이 사람들은 바비큐를 즐겨 먹기 때문에 공원과 해변에서 주말이 되면 고기 굽는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그래서 한국 음식인 갈비가 인기가 많아 테이크아웃 갈비 체인점이 있을 정도다. 선제(아내)가 좋아하는 한국 바비큐점에서는 밥 위에 커다란 갈비 바비큐와 네가지 한국 반찬을 곁들여 준다. 하나로 둘이 먹어도 충분한 양이다. 쿠폰이라도 있었더라면 공짜로 한두번은 먹었을 것 같다.
참치와 커피와 맥주, 하와이에서의 성찬
그리고 코나 커피를 빼먹을 수 없다. 미국의 유일한 커피 재배지역인 빅아일랜드의 코나에서 나는 커피는 마니아들에게서도 열대과일향의 좋은 느낌과 예민한 신맛으로 정평이 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가에 구입할 수 있지만 와이키키에서는 동네 마트에서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코나 지역의 또다른 특산물은 내가 좋아하는 맥주다. 코나 제조 맥주(Kona Brewing Company)는 작은 제조 맥주 전문점에서 시작해서 병에 담아 미국 전역에 유통될 정도로 인기가 높아졌다. 버드와이저보다는 약간 비싸지만 색다른 과일맛, 커피향 맥주도 있어서 즐겨 마시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도수가 조금 높지만 쌉싸름한 ‘캐스트어웨이 아이피에이(IPA)’다. 이상적인 하루는 진한 코나 커피로 시작해 점심으로 아히를, 저녁으로 바비큐를 먹고 밤에는 맥주를 마신 뒤 잠이 드는 것이다.
글·사진 서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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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쪽지 영수증 모아 선물받자
⊙ 하와이는 섬이 다섯 개다 | 수도인 호놀룰루는 오아후 섬에 있고, 와이키키는 호놀룰루 안에 있는 해변지역을 말한다. 이외에도 빅아일랜드(하와이 섬), 마우이, 몰로카이, 라나이 섬이 있다. 가장 큰 섬은 이름 그대로 빅아일랜드로 이곳에 아직도 분출하는 화산이 있다.
⊙ 물가가 비싼 이유 | 섬이기 때문에 수송비가 그만큼 많이 든다. 농산물이나 과일은 이곳에서 기르면 되지 않나 싶지만, 이미 하와이는 농사를 짓기엔 턱없이 비싼 땅이 되어버렸다.
⊙ 에이비시(ABC) 스토어엔 모든 게 다 있다 | 와이키키 한 블록마다 에이비시 스토어가 있는데 편의점에서 파는 모든 것, 물놀이 기구, 간단한 식사와 기념품, 커피까지… 모든 걸 다 살 수 있다. 처음엔 지겹다가, 나중엔 정겨워지는 이상한 가게다. 영수증을 모아 선물을 꼭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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