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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2.09 15:20 수정 : 2012.02.09 15:22

차이나타운의 뮤지션 작업실에서 열린 미니 콘서트.

소설가 서진의 하와이에서 살아보기③
차이나타운에 모여든 젊은 작가들…작은 축제들이 여행자 발걸음 잡네

난로도 에어컨도 필요없는
공기 좋은 작업실에서
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작가들이 꿈꾸는 삶이 아닐까

지난 1일,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하와이로 향했다. 그 첫째 주에 우리는 두 가지의 지역축제를 다녀왔다. 그곳에서 하와이의 젊은 예술가들과 고등학생의 행복한 모습을 보았다.

매월 첫째 금요일은 차이나타운의 갤러리들과 작가들의 작업실이 활짝 열리는 날이다. 베이징의 군수공장이 798예술구가 된 것처럼, 뉴욕의 텅 빈 공장을 예술가들이 점령하여 소호와 첼시를 만들었듯이, 하와이의 오래된 빈 건물에도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카피올라니 커뮤니티 칼리지의 농산물 직거래 장터.
지난번에는 아쉽게도 놓쳤던 첫째 금요일 행사를 이번에는 놓치지 않았다. 차이나타운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보통은 저녁에 사람들이 별로 없는데 오늘이 축제일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갤러리마다 사람들이 미어터질 정도로 많았다. 오래된 건물이 가득한 이곳에 젊은 예술가들이 터를 잡고 작업과 거주를 동시에 해결하고 있었다. 정부나 시의 지원이 있는 것도 아니란다. 판화로 물고기를 그리는 작가(작업실 이름이 피시마켓이다), 구름이 잔뜩 낀 그림도 좋지만 침대가 더 맘에 드는 작가, 50~60년대 남녀를 재현하는 사진작가의 작업실이 재밌었다.

음악소리가 나는 곳을 가보니 하우스 콘서트가 진행중이다. 뮤지션이 사는 작업실의 소파와 바닥에 관광객들과 옹기종기 앉아 컨트리풍의 음악을 들었다. 와이키키와 이곳은 분위기가 판이하다. 먹고, 자고, 마시고, 입고 하는 일차적인 것들을 기를 쓰고 해결하려고 하는 곳이 와이키키라면 이곳은 그 이외의 것들을 어떻게 즐길 수 있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곳이다. 나는 예술의 역할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윤활유를 뿌려주는 것. 생존경쟁에 치인 사람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려 주는 것.

오바마가 나온 고등학교 축제
전 주민의 참여 행사로…
교감 선생님이 밴드 전원 끊었던
고딩 시절 떠오르네

비록 글을 쓰는 작가의 오픈 스튜디오는 없었지만, 내가 여기 살면서 작업을 한다면 하와이를 배경으로 한 단편을 써서 사람들에게 읽어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생각해 보니 소설가의 작업실은 그닥 재미있지 않을 것 같다. 이런 곳에 오면 작가보다 미술가나 음악가가 훨씬 사람들과 소통하기 쉽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와이의 바다와 나무, 꽃을 그린다면 이곳에서 보는 작품들보다 훨씬 멋진 작품을 만들어낼 한국의 몇몇 젊은 작가들이 떠올랐다. 난로도 에어컨도 필요 없는 천장이 높은 오래된 건물, 맑은 공기를 쐬면서 그림을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은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삶이란 많은 작가들이 꿈꾸는 삶일 것이다. 정부나 시의 지원 없이, 작가들이 스스로 꿈을 가꾸었다는 점이 가장 부러웠다.

푸나호 스쿨은 오바마 대통령이 다닌 학교로 유명한 하와이 최고의 사립 고등학교다. 대학교라 해도 될 정도로 넓은 캠퍼스와 최신 시설을 갖추고 있다. 매년 2월 첫주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학교 운영 자금 마련을 위해 축제를 연다. 소소한 고등학교 축제이겠거니, 하며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가 보았는데 웬걸, 호놀룰루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다 이곳에 모여 있다고 여겨질 정도로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바이킹과 회전목마까지 설치된 놀이기구 코너엔 아이들이 몰려들었고, 햄버거와 타코, 스무디와 도넛을 파는 먹거리 천막에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다. 농산물 장터, 중고품 자선매장, 중고서점, 자선갤러리 등이 성황을 이루었다. 먹거리를 구입하려면 일단 우표처럼 생긴 티켓을 구입하고 그것으로 돈을 대신한다. 해변에서 읽을 책도 단돈 50센트에 사고, 도넛과 타코 샐러드, 생과일주스로 배를 채웠다. 맛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이런 행사를 진행하는 사람들이 모두 귀여운 고등학생들이라 기분이 좋아졌다. 문득 고등학교 시절 치렀던 축제가 떠올랐다. 학교 쪽은 학생들이 축제를 한다는 것 자체를 싫어해서 밴드가 강당에서 공연을 하는데 교감선생님이 전원을 내려버렸다. 대학교 축제는 술판이나 다름없었던 거 같다.

푸나호 축제에 등장한 놀이기구.
프린팅 아티스트의 목판화 시연.

고등학교의 재정 마련을 위한 축제가 지역 주민들에게도 확대되어 연중행사로 정착되다니, 그걸 조직한 학교도, 즐기러 온 지역 주민들도 부럽기는 마찬가지다. 잔디밭에 누워서 신발을 던져가며 장난치는 아이들, 공연을 준비하는지 머리에 꽃장식을 단 아이들을 보면서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과연 이런 행사를 준비할 시간이라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와이의 좋은 날씨 때문에 지역 행사는 대부분 야외 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여는 거리축제 형식으로 진행된다. 필요한 건 장바구니와 지갑, 빈속과 호기심이다.

농작물 직거래 장터인 파머스 마켓은 미국 전역에서 열린다. 우리가 머무는 와이키키에서는 와이키키 한가운데인 킹스빌리지에서 매주 금요일, 동쪽 카피올라니 공원에서 매주 일요일 열린다. 다이아몬드헤드 근처의 카피올라니 커뮤니티 칼리지 부근에서 열리는 토요일 장터는 하와이에서 생산된 농작물만 판다.

예전 하와이는 사탕수수와 바나나, 파인애플 등의 주요 생산지였지만 관광산업의 발달로 땅값이 치솟아 농사를 짓기엔 수지가 맞지 않는 땅이 되어 버렸다. 장을 보러 슈퍼마켓을 가도 채소와 과일 코너는 미국 본토에서 건너오거나 동남아에서 수입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필리핀에서 난 바나나를 하와이에서 산다. 세계화의 바람에 하와이의 농작물도 예외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섬에 있고, 그걸 구입하려는 사람들도 섬에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농작물 직거래 장터가 성행하게 되었다. 자료에 따르면 오아후 섬 전역에는 60개의 장터가 매주 열리고 있다. 선제(아내)는 꽃을 좋아해서 열대에서 나는 커다란 난과 화분을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나는 지역농산물을 재료로 한 음식을 파는 부스에서 참치와 국수를 튀긴 메뉴로 아침을 대신했다. 양파와 오이, 꿀과 빵 등을 직접 만드는 사람들과 가족들에게서 사니 어쩐지 맘이 든든해졌다. 이곳에서 장을 보고 다이아몬드헤드에 올라 사방으로 트인 와이키키 전망을 구경했다.

글·사진 서진/소설가


travel tip

슈퍼마켓에서 살 수 없는 신선한 지역 농산물을 장터에서 구입할 수 있다. 오아후 섬에서는 60여개의 장터가 주중·주말을 가리지 않고 열린다. 하와이의 땅값이 올라 농사를 짓는 것이 힘든 일이지만 아직도 지역농산물을 재배하고, 사는 사람들이 직거래를 이용해 축제처럼 장터를 즐기고 있다. 먹거리도 준비되어 있으니 뱃속을 비워 가는 것은 필수. 와이키키에서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가볼 만한 장터는 다음과 같다.

킹스빌리지 장터(금요일 오후) 와이키키 한복판에서 열리므로 가장 이용하기 쉽다. 아기자기한 킹스빌리지 쇼핑몰도 구경하고 농산물도 구입할 수 있는 게 장점이나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편이다.

카피올라니 커뮤니티 대학 장터(토요일 오전) 다이아몬드헤드 입구에서 열리는 장터로 하와이에서 생산된 농작물만을 취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사진) 레스토랑에서 직접 개발한 신메뉴를 맛보는 것도 즐겁다. 간단히 장을 보고 다이아몬드헤드에 올라가서 와이키키 전경을 구경하는 것도 좋다.

알라 모아나 장터(토요일 오전) 규모는 조금 작지만 알라 모아나 쇼핑몰에 들르는 김에 5층에서 열리는 장터에 가보는 것도 좋다.

카피올라니 공원 장터(일요일) 와이키키 서쪽의 공원에서 열리는 비교적 큰 규모의 장터, 농산물뿐만 아니라 각종 기념품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주변에 동물원과 아쿠아리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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