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2.07.22 19:22 수정 : 2012.07.22 19:22

윤지영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동정’과 ‘혐오’,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이 두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선량한 사람은 대체로 동정심을 가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주노동자를 혐오하는 사람이 악한 사람인 것도 아니다. 진보적이라고 자부하는 사람, 특히 노동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 중 상당수가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 적’으로서 이주노동자를 바라본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동정과 혐오에도 공통점은 있다. 즉흥적인 감정이라는 것, 대상과 주체가 융화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이주노동자를 알지 못한다. 그들이 어떤 절차로 대한민국에 들어왔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른다. 어쨌거나 우리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다.

정부 입장에서 무관심과 무지는 좋은 징조다. 감시하고 혼내는 사람이 없으면 제멋대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해당사자인 이주노동자는 말을 하고 싶어도 말을 할 수 없고, 다른 이해당사자인 국민은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정부는 마음 놓고 이주노동정책을 펼친다. 다만 중소업체 사장들은 다르다. 그래서 이주노동정책은 주로 이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일은 힘들고 위험한데 임금은 적은 업체에 사람이 모일 리가 없다. 이런 경우 일할 만한 환경을 조성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도록 하는 게 순리겠지만 업체는 다른 방식을 택한다.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일을 그만두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싼값의 외국 인력을 국내에 들여오고 직장을 못 바꾸게 하는 것만큼 중소업체에 유리한 정책도 없다. 정부는 이 방식을 택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수요를 파악한 뒤 외국인력 도입규모를 정하고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송출국 정부를 통해 이주노동자를 들여온다. 이렇게 들어온 이주노동자는 정부로부터 관리·감독을 받는다. 만약 일이 힘들어 출근을 하지 않으면 본국으로 추방을 당하고 일을 그만둘 때는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한다. 직장을 변경할 때도 허가를 받아야 하며 정부가 소개하는 업체로만 변경이 가능하다. 허가를 받더라도 3개월 안에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추방이다. 직장 변경 횟수도 3년 동안 3회를 넘지 못한다.

그런데 드디어 고용노동부가 이러한 정책에 쐐기를 박는 지침을 냈다. 직장을 구하는 이주노동자는 업체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직장, 노동조건 등에 관한 정보를 먼저 확인한 뒤 원하는 직장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모르는 회사에서 연락 오기를 기다려 의사에 반하여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는 그렇지 않다. 현재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들에게 “8월1일부터는 구직자가 사업장에 연락을 할 수 없고 사용자의 연락에 의하여 채용절차가 진행됩니다. 따라서 언제든지 연락이 가능한 전화번호 등을 반드시 기재해야 합니다”라고 안내하고 있다. 이쯤 되면 이주노동자는 노예, 중소업체는 주인, 정부는 노예거래상과 다를 바 없다.

사실 이주노동자를 노예처럼 부릴수록 이주노동자를 적으로 여기는 이들에게는 득이 될 게 없다. 그럴수록 회사는 이주노동자를 더 많이 사용할 테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비난의 화살을 이주노동자에게 겨누고 있다. 이주노동자 때문에 일자리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노동자를 함부로 대하는 회사, 그리고 그런 회사가 원하는 대로 정책을 펼치는 정부 때문에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번 지침에 반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지영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2030 리스펙트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