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로 번역하는 분야는 ‘사료’이다. 번역을 처음 시작하고 몇년간은 <일성록>을 번역했고, 지금은 <조선왕조실록> 재번역 사업팀에 소속되어 <정조실록>을 번역하고 있다. 이런 사료를 번역하다 보면 수도 없이 많이 다루는 게 바로 ‘상소’이다. 신문에 칼럼을 쓰게 되었을 때 누군가 내게 말했다. 칼럼이 옛날로 치자면 상소가 아니겠느냐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이 말이 칼럼을 연재하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둘은 비슷한 걸까? 다른 걸까? 처음에는 비슷해 보였다. 상소에 실리는 내용 때문이었다. 상소에는 임금의 잘못을 지적하는 내용, 어떤 정책에 대한 의견, 문제를 일으킨 정책에 대한 개선책, 풍속의 문제점, 다른 신하에 대한 탄핵 등이 실리기 때문이다. 칼럼도 이런 등등의 내용이지 않은가? 그러나 곧이어 둘의 차이점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받는 대상에 있었다. 상소는 받을 사람이 분명한 글이다. 바로 ‘왕’이다. 그러나 칼럼은 누구를 향하는 글인가 생각했을 때 조금 모호했다. 일차적으로 이 신문의 독자였지만 독자‘뿐’이지도 않았다. 왜 이런 모호함이 생긴 것일까? 이 문제는 국가의 체제에서 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은 ‘왕국’(王國)이었다. 나라의 주인이 왕이었다. 그래서 신하의 글은 오로지 왕을 향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민국’(民國)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은 왕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이 나라의 ‘왕’인 체제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반도에는 내내 왕조국가의 형태만 이어져 왔고, 국민들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민주공화국 체제가 들어선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민주’의 개념이 아직까지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너와 나 우리 모두가 각각 왕이라는 생각보다 대통령을 왕으로 착각하는 오류를 쉽게 범하곤 한다. 나 스스로가 책임감을 가지고 이 나라의 모든 것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피지배’에 익숙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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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헌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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