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5.23 17:21
수정 : 2012.05.2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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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원 나의 점집문화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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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나의 점집문화답사기
사주점편 ① 개요
신점은 전산화될 수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컴이 저절로 셧다운과 부팅을 반복하고, 하드디스크 아르피엠(rpm)이 갑자기 미친 듯 치솟다가, 입력하지도 않은 뷁뛟뤿 등의 텍스트들을 출력하더니 급기야 한 번도 본 적 없는 백발 수염의 할아버지-앳된 용안의 임금님-라이방낀 유에스에이 제네랄 등의 이미지를 모니터에 띄우는 기이 증상을 보여 즉시 에이에스(AS) 불렀더니, 고객님 이건 바이러스 먹은 게 아닌데요, 하드웨어 쪽도 아무 이상 없어요라는 얘기만 듣다가, 결국 속는 셈 치고 용산에서 가장 용하다는 만신급 용팔이에게 들고 가자, ‘쯧쯧쯧, 왜 이제야 왔어. 이 컴은 고장 난 게 아니야. 다른 방법이 없어, 내림굿밖엔’이라는 마른 하늘에 벼락 같은 말을 듣고 내 컴 처한 모진 운명에 몇날며칠을 밤새 목 놓아 울다 지쳐 결국 용하다는 슈퍼컴퓨터를 찾아가 신 내림 받아, 인간의 명령어 아닌 천지신명의 명령어에 따라 작동하게 되었다는 기구한 팔자의 보살형 컴퓨터가 대량 속출하지 않는 한.
반면 주역, 토정비결 등 각종 고전을 매뉴얼삼는 점술 시스템인 사주점은 신점에 비해 화려함은 떨어지나 훨씬 안정적이라는(즉 덜 돌팔스럽다는) 평가를 받으며, 오래전부터 전자 오락실, 놀이공원, 동네 문방구 등지에서 꾸준히 전산화 향한 노력을 경주하여왔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아이티(IT) 혁명을 맞이하여 마침내 결실을 맺기 시작, 최근 스마트 기기의 등장은 그 꽃을 만개시키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현재 각종 사주앱들이 저마다 궁극의 인생 내비게이션을 자임하며 거대시장을 놓고 패권을 다투는 작금의 형국이 라이벌인 신점업계 전반에 타격을 입혔는가 하면, 세상사가 또 그리 단순치만은 않았으니, 점술업계의 진정한 트렌드 세터인 점집 마니아들이 인터넷으로 간 사주점집 대신 신점집으로 대거 몰림으로써, 결국 업계 주도권 자체가 신점으로 넘어가는 역전 현상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더구나 각종 사주앱들은 점괘 데이터베이스를 짜깁기하는 안이한 예언메소드로 서로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점괘 문구를 내놓는 치명적 약점을 노출하고 말아, 나만의 맞춤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강한 젊은 마니아들의 반발을 야기, 위축을 점점 가속화시켰다. 근데 이런 건 왜 미리 사주풀이로 예측 못 했나 몰라. 아무튼.
그러나 되는 자는 어떻게든 된다 하였던가. 이러한 위기에도 나름의 명성을 구가하고 있는 사주점집 역시 엄존하니, 심지어 보통 점집의 2배에 해당되는 고액의 복채를 호가하면서도 성업중에 있다는 사주점집에 대한 첩보가, 점집 생태계에서 짚신벌레나 미토콘드리아가량의 지위를 점유하고 있는 필자의 귀에까지 흘러들게 되었던 것이다. 대체 얼마나 용하길래.
특히 마니아들이 제보해 온 당해 점집의 각종 예언 사례들, 그중에서도 특히 지난 2002년 월드컵 당시의 예언이 금번의 답사를 결정케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바, 대체 어떤 점이 그리도 솔깃했는가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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