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6.06 16:52
수정 : 2012.06.06 17:03
[매거진 esc] 나의 점집문화답사기
사주점편 ② 입지 및 외관
지난 회, 2002년 월드컵 당시 우리의 답사 대상이 내놓은 예언이 마니아들 사이에서 전설로 떠돈다는 얘기까지 했다. 전설에 따르면 당시 이 사주점집은 각종 언론을 통해서 “한국 팀이 최소한 8강까지 진출할 것이며, 4강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당시로선 매우 획기적인, 거의 초현실적이기까지 한 예언을 내놓았다.
그런데 필자가 주목했던 대목은 예언의 적중 그 자체보다는 이 적중에 적용된 예언공학적 메소드였던바, (나름 멀쩡한 정신세계의 보유자들임을 거듭 강조드리는) 필자의 지인들에 의하면 이 점집은 ① 한국 대표팀 선수 전원의 성명 및 출생 연월일시를 수집한다. ② 이를 토대로 선수와 코칭스태프 전원의 사주를 분석한다. ③ 이 사주에 나타난 2002년 전과 후의 운세를 상호 비교한다. ④ 그 결과, 한국 팀 관련자들 중 2002년 이후 금전운이 급상승하거나 해외진출운이 나타나는 경우가 다수 검출되었다. ⑤ 고로 이 정도의 결과가 나오려면 적어도 8강 이상 성적은 거둬야 할 것이다. 예언 끝. 이라는 공정을 통해 당해 예언을 추출했다는 것이다. 코오… 이거 나름 말 된다.
이에 별 번민 없이 당해 점집을 즉각 답사 재료로 선정해버리고 만 필자는, ‘○아카데미’라는 상당히 엘레강스한 분위기 풍기는 관계로다가 더더욱 미궁스러운 이름의 이 사주점집에 예약전화를 걸었는데, 예약 대기 기간은 명성에 비해 의외로 짧은 2주가량이었던바, 이는 필자의 예약 시기가 설날 전후에 집중되는 점집 수요가 한 차례 소화된 직후였기 때문일 것이라 추정되었다. 그렇다. 점술업계에서도 분명 성수기와 비수기가 엄존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다못해 해수욕장 민박집도 아니거늘, 한 인간의 운명철학을 취급한다는 점집에서 어찌하여 비수기 할인 및 평일예약 추가할인 등의 특전이 존재치 않는 것인가! 아무튼.
○아카데미는 점집업계의 두바이라 할 역삼동 테헤란로 인근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보살과 공통점을 보였는데, 이 점집이 입주한 곳은 주택가 다세대주택이 아닌 역삼역의 초역세권에 위치한 소형 빌딩이었다. 이 빌딩은 매끄러운 스테인리스 몰딩으로 마감된 멀쩡한 엘리베이터까지 구비한데다, 심지어 엘리베이터 버튼 옆에는 상호가 적힌 안내스티커까지 반듯이 붙어 있었으니, 가정집적 은폐성과 친누나/친언니적 카리스마를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던 ○보살의 하우스와는 달리 ○아카데미는 뭔가 전문직스럽고도 냉철하고 이지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전략으로 확고한 장르적 차별성을 긋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하우스 입구로도 그대로 이어져,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문으로 된 개방형 출입구는 점집보다는 정수기 대리점이나 동네 치과의 외관에 훨씬 근접해 있었는데, 다만 그 위에 붙은 “○uman Mentoring & ○inancial Designs”라는 은폐성 강한 간판은 이곳이 바로 그곳임을 강력 시사하고 있었더랬다. (다음 회에 계속)
한동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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