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6.20 17:08
수정 : 2012.06.20 17:08
[매거진 esc] 나의 점집문화답사기
사주점편 ③ 첫 대면
역삼역 초역세권의 멀쩡한 업무용 빌딩에 입주하고 있음은 물론, 파티션에, 컴퓨터와 복합기기에, 번듯한 리셉셔니스트까지 갖춰, 흡사 동네 치과를 방불케 하던 사주점집 ○아카데미.
보란 듯 연꽃무늬 수놓아진 개량한복을 상하 공히 착용하고 있던 ○보살의 비서(겸 매니저 겸 배우자)와는 달리, 곧장 일상생활에 투입될 수 있는 복장상태를 갖춘 이 여성 리셉셔니스트는 간단한 신원 확인 뒤 곧장 필자를 대기실로 안내하였는데, 밀집한 대기자들이 서로의 존재를 부인코자 유체이탈을 시도하던 ○보살의 대기실(거실)과는 달리 군소 점집이라면 거의 하우스 하나 오픈할 수 있을 정도 크기의 이곳 대기실에는 오로지 필자뿐이었다. 이는 필자가 그날의 마지막 손님이었기 때문으로 추정되었던바, 마니아들 사이에 회자되던 공무원 사회 능가하는 ○아카데미의 칼출칼퇴 방침은 이렇게 확인되고 있었다.
이렇듯 철두철미한 절제와 냉철함을 유지하던 ○아카데미. 하지만 신문·잡지 가지런히 비치된 대기실 탁자 너머 벽에 걸린 액자, 즉 금강산으로 추정되는 기암괴석과 낙락장송 어우러진 산의 대형사진에서만큼은 자신의 지향하는 바를 묵묵히 웅변하고 있었더랬으니, 약 15분간의 대기시간 동안 이 이름 모를 명산의 기를 염력흡수하며 앞으로 전개될 점술자와의 기싸움에 대비하던 필자는, 마침내 호명된 성명과 함께 출타했던 정신을 긴급히 수거, 상담실(신점집의 ‘법당’에 해당하는 공간)을 향했다. 그리고 때마침 상담실을 나서던 선행 고객을 마주칠 수 있었는데, 한눈에도 상당히 고가로 보이는 새빨간 트렌치코트를 입은 50~60대의 이 여성은 뭔가 입신양명 및 재테크 지향적 분위기를 농밀하게 노출하고 있어, 반말에 욕설마저 서슴지 않는 보살큰언니/누님의 카리스마에 여린 마음 한 점 의탁코자 하는 20~30대가 주종을 이루던 ○보살 고객들과의 극명한 차별점을 보였더랬다. 그렇다면 궁금했다. 20대와 60대 중간에 낀 연령대인데다, 나름 정체 및 직군이 쉽사리 파악되지 않는 모호한 비주얼의 소유자인 필자에 대한 점술자의 초기대응은 과연 어떠할 것인가.
하지만 필자의 그러한 궁금증은 상담실 진입 즉시 여지없이 궤멸되고 말았으니, 이곳의 운영자 겸 점술자인 ○소장은 사무용 회전의자에 앉은 채 필자를 향하여 약 0.74초가량의 응대용 미소 및 목례만을 날린 뒤, 곧장 다시 테이블에 놓인 백색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던 것이다. 이러한 자유방임적 응대방침은 법당 진입 순간부터 저격수 같은 시선 정조준하며 적극적 기싸움에 임하던 ○보살과 또다시 극적 대조를 이루었던바, 말하자면 ○보살은 창, ○소장은 방패의 형국이라 할 것인데, 이에 필자의 가슴은 브라질과 이탈리아의 A매치를 앞둔 축구팬처럼 두근거리고 있었다…면 좀 오바이겠으나, 아무튼 그렇다면, 창과 방패의 본의 아닌 간접대결은 과연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 (다음 회에 계속)
한동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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