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8.15 18:30
수정 : 2012.08.15 18:30
[매거진 esc] 나의 점집문화답사기
사주점편 ⑦ 미래예측 (상)
지난 시간, 필자를 매우 번민토록 하였던 ○소장의 기습적인 신상털기 요청 얘기까지 했다. 그런데 번민은 뭔. 사실 ○소장의 ‘상담’은 ① 기초 사주상식(사주의 기본구조, 운의 고저/경중, 운의 상승/하강 등등등)에 대한 짤막한 해설 ② 그에 따른 피상담자의 기본 사주/성향에 대한 개략한 레이아웃 브리핑 ③ 피상담자의 연령별 인생 추이 브리핑 그리고 ④ 신상털기의 순으로 진행되었던바, 필자에 대한 미래예측은 이미 ③번 프로세스에서 과거 예측과 함께 통으로 이루어졌더랬다. 다시 말해 ○소장은 신상털기 요청 이전에 이미 필자의 유효노동연령에 준하는 25살부터 69살까지의 인생 추세를 통으로 브리핑해버렸다는 것이다.
더구나 앞서도 말씀드렸듯, 이 과정에서 ○소장은 필자의 과거 행적에 대한 여러 구체적 사안들(예컨대 ‘전공이 바뀌었거나 전공과는 전혀 다른 일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같은)을 집어내었고, 그 탄력과 여세를 몰아 필자의 미래에 대해 39살, 44살, 49살, 69살 등의 단위로 꽤 구체적인 묘사를 하였더랬으니, 맞건 말건 암튼 나올 것은 일단 다 나온 상황에서 굳이 필자는 저항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였다. 게다가 신상털기를 거부함으로써 답사를 원활히 수행해내지 못하는 경우 독자님들의 노여움을 사 3년간 칼럼 짤림의 화를 입는 수가 있음을 아는 필자, 다소곳이 현재 직업 및 과거 적중 여부를 실토하였더랬는데 이에 대한 ○소장의 논평은 “결국 본인 사주대로 살아오셨네요”라는 덤덤한 한마디뿐이었다. 허망하게도.
자, 그럼 그의 미래 예측은 어떠했을까. 뭐, 필자의 인생이 흥업상품은 아님과 동시에 들어 봐야 별로 흥미진진하거나 대하서사스러울 것도 없으므로 구체적으로는 말씀 안 드리련다. 다만 가장 인상 기억에 남았던 대목 하나는 ‘시대’에 대한 언급이었다. 즉 필자가 만일 옛날(말하자면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의 삶을 살았을 것이나 현대는 그때와는 반대로 가는 시대 흐름이기 때문에 이러이러한 운으로 살게 되었고, 또 이러저러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좁은 지면이다만 이 대목에서 우리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 한 대목을 인용해보지 않을 수 없겠다. ‘재능 있는 연금술사가 19세기로 이주해 오면 무엇을 할까? 수백의 운송업자들이 해상 운송을 주무르는 오늘날이라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무엇이 되었을까? 연극이 아직 존재하지 않거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대라면 셰익스피어는 무엇을 쓸까?’ 다소의 단순화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이 질문에 대한 ○소장의 답은, 콜럼버스가 대형 해운회사 사장이 될 가능성 및 셰익스피어가 잘나가는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가 될 가능성은 없거나 매우 낮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인생은 타이밍’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인데, 그렇다면 우리 삶은 운명(또는 명운/사주/팔자/운때)이라는 틀에 부어진 쇳물에 불과하다는 것인가? (다음 회에 계속)
한동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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