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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1.28 19:14 수정 : 2012.11.30 10:28

[매거진 esc] 나의 점집문화답사기
사주점편 외전-성명점편 ②

이름처럼 극히 가정집스러운 아파트 1층에 자리한 ‘○○할머니집’. 현관문을 열고 필자를 맞이한 사람은 그야말로 할머니였는데, 여기에서 음산한 바람에 백발 휘날리며 세월이 할퀸 주름 깊은 곳 우물바닥처럼 귀기 서린 검은 눈 번득이는 소복 할머니를 상상하시면 곤란하지. 요즘 할머니들이 얼마나 영하신데들.

 ○○할머니는 이제까지의 마르고 예리한 인상의 젊은 점술자들과는 달리, 푸근한 살집과 푸근한 얼굴형과 푸근한 패션을 자랑하고 계셨는데, 만일 버스 안 같은 곳에서 마주쳤다면 ‘자리 양보를 해드리긴 해야겠는데, 그랬다간 혹여 지금 나 노인 취급 하는 거냐며 화를 내시지는 않을까’ 하는 번민에 빠지기 딱 좋았을 것이다. 그렇다. 이곳은 문자 그대로 ○○에 사시는 할머니의 집 그 자체였던바, ‘○○할머니 집’이라는 하우스명은 과연 성명점을 취급하는 곳 본의 아니게 다운 정확한 하우스명이었다 할 것이다.

 ○○할머니의 지시로 필자는 거실 베란다 앞 탁자에 착석하였는데, 탁자만이 오로지 당해 하우스의 점집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유일한 지점이었던바, 그곳에는 ①실무 핸드북 스타일의 각종 성명점/사주점 매뉴얼들 ②A4 절반 사이즈의 종이 뭉치와 검정 모△미 사인펜 ③○○할머니의 성명 석 자 박힌 명함통, 그리고 ④매우 화려한 다리 장착된 황금테 돋보기 등의 장비들이 놓여 있어 앞으로 진행될 점술의 향방을 점치게 하고 있었더랬다. 베란다 밖 화단에는 소나무가 심어져 있어 가정집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해줌과 동시에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피점술자를 엄폐해주고 있다. 흠. 본의 아니게 꽤 치밀하다.

 뭔가 집안일(설거지로 추정)을 마무리한 뒤 주방에서 손을 닦으며 나온 ○○할머니. 그녀는 착석 즉시 기초점술 데이터(성명 및 생년월일시)를 물었는데, 잠깐, 이 대목에서 밝혀둘 것이 한가지 있다. 이번 답사에서 필자는 본인을 점술재료로 사용하는 대신, 신원을 밝힐 수 없는 숙달된 조교를 대동해 그를 피점술 재료로 투입하였다는 것이다.

 맞다. 엄정한 점술능력 감별을 위해서는 필자 자신을 피점술 재료로 사용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본 칼럼 연재 이후, 필자는 이상하게도 필자의 성명을 대기만 하면 예약을 거부하는 (도대체 왜일까) 점집들을 계속해서 마주치게 되었던바, 딴 장르도 아닌 성명점집에 가명을 대고 예약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해서, 부득이 숙달된 조교를 전격 투입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단, 거기에서 끝나면 재미없지. 그러는 김에 필자는 아예 ○○할머니의 점능(점술능력)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숙달된 조교의 인적사항 중 결정적인 부분 하나를 사실과 다르게 이야기하기로 결정하였다. 기혼인 그를 미혼으로 설정한 것이다.

 자, 이에 대한 ○○할머니의 작명철학적 반응은 과연 어떠할 것인가. (다음 회에 계속)

한동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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