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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2.12 17:01 수정 : 2012.12.13 15:00

[매거진 esc] 나의 점집문화답사기
사주점편 외전-성명점편 ③

지난 회, 필자는 오랜 절친인 숙달된 조교(34살·회사원)를 피점술 재료로 투입하고, 그 과정에서 기혼자인 그를 미혼으로 위장시켰다는 얘기까지 했다.

이제 본격 점술의 시작. 숙달된 조교의 성명과 생년월일시를 받은 ○○할머니는 흑색 모*미 사인펜 뽑아 일필휘지로 A4용지 위에 그의 성명과 생년월일시에 해당되는 12간지를 각각 한자로 적어 내리고는, 자신의 춤추는 듯 유려한 필치에 스스로 감탄한 듯 이를 잠시 응시하더니 곧 점술에 돌입하였다.

점술은 다음과 같은 공정으로 이루어졌다. ① 이름 옆에 각 글자의 획수를 적는다. ② 뭔가 정체 불상의 주문을 웅얼거리며 모종의 규칙이 있는 듯 보이는 성명철학적 연산을 수행한다. ③ 이 연산결과를 토대로 피점술자의 성격·기질·개성·재수·팔자 등을 산출한다.

그런데 가만히 들으니 ②번 공정에서의 정체 불상의 주문이란 다름 아닌 덧셈 뺄셈 등의 암산 과정을 일본어로 읊조리는 것이었던바, 이것은 일제강점기에 초등교육을 이수하였던 고연령층에서 흔히 관찰되는 행동일 뿐 작두만신적 의미는 없는 것으로 최종 판별되었다.

암튼 이렇듯 약 30초간 작명철학적 분석에 몰두하던 ○○할머니. 그가 내놓은 결론은 과연 어떠했을 것인가. ① ‘어라, 이 이름과 사주로는 이미 짝을 만난 걸로 나오는데?’ 등의 족집게적 멘트로 그를 추천한 점집 마니아들의 지지와 성원에 부응했을 것인가, 아니면 ② ‘이름이 그래서 그래. 그래서 그 나이 먹도록 여태 짝을 못 만난 거야’라며 숙달된 조교의 위장 신분에 낚이며 무너져 갔을 것인가.

결과는 ②였다. 안타깝게도. 게다가 그 멘트에는 ‘잘못된 이름’으로 인하여 이러한 고독한 운명에 빠지게 된 피점술자에 대한 동정과 함께 ‘부모님이 나 같은 작명전문가를 찾아왔더라면 이런 사태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텐데 쯧쯧쯧’이라는 질타가 하나로 모아져 형상화된 듯한 강력한 탄식과 혀 차기까지 곁들여져 있었더랬다.

무릇 점술의 흥행 성패는 일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도 같아 첫 5분 이내에 피점술자를 무장해제시킬 정도로 신기한 점술력 및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가에 있다. 하지만 ○○할머니의 경우는 안타깝게도 단 한 개의 가짜 데이터를 두고도 점술능력을 증빙해내지 못하였으니, 이 어찌 은근 민망코도 실망스럽지 아니할쏜가.

그러나 아직 속단은 이르다. 점집이 무슨 올림픽 피겨 결승전이나 체조경기도 아닌 마당에, 실수 하나로 메달 색깔이 왔다 갔다 하는 인정머리 없는 시스템을 적용해서야 어디 되겠는가. 게다가 고의적 함정수사는 원래 법적 효력을 득하지 못하는 법인데다, 답사 대상은 점술 도중에도 수시로 “내가 이놈의 허리가 아파서 쉬어야 되는데 사람들이 이리도 날 냅두지 않는다, 내가 못 산다”며 한탄을 터뜨리시는 할머니가 아니신가 말이다. (다음 회에 계속)

한동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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