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1.30 18:21
수정 : 2013.01.30 18:21
[매거진 esc] 나의 점집문화답사기
사주점편 외전-성명점편 ⑥
결정적 무리수와 패착을 피해 가며 다정다감한 고객 프렌들리 멘트를 앞세워 피점술자를 노련하게 요리해 가던 ○○할머니. 이에 결국 액상으로 분해되어 버리고 만 ○○○씨는 급기야 답사보조로서의 본분을 완전히 망각한 채 “맞아, 맞아!” “정말로요!” 등의 내면방출형 멘트들을 흐물흐물 누설하기에 이르고, 이 상승세 어찌 감히 놓칠쏜가, ○○할머니는 “그게 이름에 다 나오거든. 그러니까 이름을 바꿔야 돼. 이름을” 등의 과감한 영업지향성 멘트까지 날리며 기염을 토하던 중, 그녀는 아무 예고도 없이 “올해에 삼재가 나가거든요?”라는 멘트로 점술을 미래예측 스테이지로 전격 진입시킨다.
이때쯤 이미 노크귀순 초소에 필적하는 무방비 상태로 ○○할머니 향해 내면세계 활짝 개방하고 있던 ○○○씨. 그는 즉각 “어쩐지. 올해는 좀, 손재수도 있었고” 등의 조흥구로 할머니 부르심에 응답하였고, 질세라 ○○할머니는 “아휴, 올해까지 나빠, 올해까지가 나빠, 절레절레”라며 스스로의 점술능력에 감동하는 등, 답사는 필자의 통제를 벗어나 점입가경의 형국에 접어들고 있었더랬다.
그 와중에도 나름 ○○○씨의 옆구리를 찌르거나 발등을 밟는 등 최선을 다해 답사자로서의 품격 유지 및 대오각성을 촉구하던 필자. 하지만 불현듯 튀어나온 ○○할머니의 “삼재에서 나가는 올해가 나쁜데, 내년엔 괜찮아. 내년엔 귀인의 도움이 있어. 끄덕끄덕”이라는 미래예측 멘트에 필자의 귓바퀴 역시 곧추설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다, ‘삼재’와 ‘귀인’이라는 고전 점술용어가 콤보로 구사된 이러한 멘트는 나름 ‘모더니즘’을 표방하던 이제까지의 답사처에서는 전혀 접할 수 없었던 빈티지 클래식이었던 만큼 그것이 안긴 감흥은 참으로 훈훈한 것이었더랬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할머니가 내놓은 미래예측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는 점이었다. 이후의 멘트들은 “회사생활 대신 자격증 따서 독립적으로 살면 좋아”(누군 안 그러고 싶나)라든가 “해외로 진출하는 것도 괜찮아. 워낙 고독을 즐기는 성격이니까”(결론적으로 해외 진출이 괜찮다는 건지 아닌 건지) 등의 ‘어쩌라고요’성 덕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니 이 어찌 아니 안타까울쏜가.
게다가 ○○할머니는 그야말로 푸근한 할머니 인심을 바탕으로 내친김에 필자까지 봐 주겠다 자청, 필자는 얼결에 즉석 변조된 성명과 생년월일시를 내놓기에 이른다. 뭐, 섬세한 지면 사정상 점술 결과를 모두 적긴 어렵겠고, 아무튼 여기서도 삼재가 어김없이 등장하여(“올해가 들삼재 중 중간해야”) 필자의 연속삼재 기록이 또다시 경신되는 쾌거 이루었다는 소식 전해드리는 가운데, 뭐 이건 어차피 가짜 성명에 대한 점술 결과니 그렇다 치고, 정작 희한하였던 것은 그밖의 멘트들에는 얼추 맞아떨어지는 것이 제법 많이 섞여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렇다. 가짜 성명과 생년월일시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건 대체 어찌 된 영문일까.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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