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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27 18:01 수정 : 2013.03.27 18:01

[매거진 esc] 나의 점집문화답사기
관상집편 ③

각종 난관을 뚫고 마침내 ×선생의 문간방 앉은뱅이책상 앞에 당도한 필자와 숙달된 조교 ○씨. 하지만 안도도 잠시, 필자는 착석과 동시에 날아든 ×선생의 “이름하고 생년월일시 불러 봐요”라는 한마디에 화들짝 상반신 기립치 않을 수 없었던바, 이름과 생년월일시라니? 관상이란 모름지기 얼굴, 몸통, 사지 등등의 형상을 통해 운명철학적 분석을 행하는 장르 아닌가. 그런데 성명생년월일시라니? 이에 필자는 저도 모르게 불신지옥적 심령세계를 누설키에 이르니, 그것은 다음과 같은 반사적 질문을 통해서였다.

“저, 관상에서도 그런 게 필요한가요?”

이어진 싸늘한 침묵. 그를 뚫고 날아든 ×선생의 최종병기 화살촉 같은 눈길. 그는 초장부터 판을 깨지 말 것을 촉구하며 필자의 무릎 쿡쿡 찌르던 ○씨의 손톱 끝보다도 첨예하였으니, 안 그래도 팽팽하던 분위기를 더욱 일촉즉발의 상태로 몰아간 필자는 꿀 훔쳐 먹다 들킨 아기곰 푸우의 표정 지으며 상황을 모면하려 헛되이 애쓸 수밖에 없었더랬다.

영원처럼 느껴졌던 그 침묵 끝, 마침내 “이런 제길”을 필두로 만수위 팔당댐처럼 방류를 시작한 ×선생의 장광설은 곧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화려한 점술이력 브리핑으로 이어지며 온 방안을 범람키에 이르니, 그에 따르면 선생의 점술경력은 사주 60년에 관상 50년으로 도합 110년에 육박하며, 그동안 만나 온 인물들 또한 대기업 총수, 정관계 최고인사, 언론계, 문화계, 체육계 유명인사들 등등으로, 그 수와 지위에 있어 필자 따위의 일개 민간인이 감히 의문을 제기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됨은 말할 것도 없고, 선생의 관상술은 이러한 두루통달장르통합 점술시스템에 기반하고 있는 관계로, 모든 점술의 시작이자 끝인 성명생년월일시를 묻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인데, 어디서 감히 따져, 뭘 모르면 가만히 있기나 하지, 이런 제길- 이시라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해일처럼 좌중을 휩쓴 장광설에도 여전히 분기가 풀리지 않은 선생은 앉은뱅이책상 위에서 몇십 겹의 지층을 형성하고 있던 각종 명함들과 신문 스크랩 쪼가리들을 일거에 펼쳐 보이며 그간 본인이 섭렵하여 온 드넓은 인맥과 저명한 고객층에 대한 브리핑을 스리슬쩍 ‘본인의 군 생활 경험을 통하여 체득한 한민족의 태생적 기질에 대한 특수이론을 바탕으로 유추된 본인의 조카사위의 직장 상사의 행동패턴에 대한 비판적 소고 등등등’으로 발전시켜 무려 20분이 훌쩍 넘는 시간을 소진하고 있었으니, 아아, 대관절 점술은 언제 시작될 것인가, 귓전에서 범람하는 선생의 칼칼한 음성 도무지 감당해낼 길 없던 필자의 정신세계는 하염없이 공중을 부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맞은편 창문을 통해 보이는 베란다의 세탁물 건조대에 덕장의 명태처럼 내걸린 선생 부부의 각종 언더웨어류들은 필자의 시선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었으니.

이에, 숙달된 조교 ○씨는 25분 경과 시점에서 참다못해 드디어 국면 전환을 위한 칼을 뽑기에 이르는데…. (다음 회에 계속)

한동원 소설가 @HahnDong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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