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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4.24 17:44 수정 : 2013.04.24 17:44

[매거진 esc] 나의 점집문화답사기
관상집편 ⑤

지난 회, ×선생의 헐벗은 점술결과로 도탄에 빠진 필자는, 숙달된 조교 ○씨에 대한 점술결과에 마지막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그 역시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궤멸되고 마니, 선생은 ○씨의 미세성형으로 인한 운명 향배의 변화는커녕, 수술 사실 자체도 전혀 파악하지 못하였음이라. 더구나 필자와 대동소이한 허허실실 점술 와중 슬며시 흘린 ‘가정을 잘 꾸려나갈 현숙한 여인’이라는 멘트는 필자의 모든 기대를 거둬가고 마니, 이는 ○씨가 결코 그런 여인일 수 없단 뜻에서가 아니오라, 선생이 이제껏 수차례 반복하였던 “여자가 정숙지가 못해!”라는 관상학적 판단과 정면배치되는 접대 향응성 멘트였기 때문이다.

결국 휴가까지 내가며 원거리 점술원정을 떠난 ○씨로 하여금 이러한 결과를 접하게 한 책임을 통감한 필자, 복채 전액을 부담하며 나름의 속죄를 하였으되, 이로써도 금번 답사가 안긴 실망감은 도무지 막을 길 없었음이라.

하나 속세로 복귀하는 택시 안에서 ○씨는 담담한 어조로 ‘연세 지긋하신 할아버님께서 어린 것들을 데리고 일상의 쓸쓸함을 잠시나마 달래신 듯하니 그로 족하다’는 심경을 토로함으로써 선생의 두 멘트 중 ‘현숙한 여인’이라는 멘트 쪽에 한층 더 무게를 더했다. 그나저나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점집이란 원래 운명철학적 판타지를 통하여, 퍽퍽한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소정의 위안을 주는 걸 그 본분으로 삼는 법. 그런데 오히려 피점술자가 점술자에게 위안을 드리다니. 하지만 세속의 관점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이러한 운명철학적 무역 역조에, 필자 또한 왠지 모르게 수긍이 절로 가는 신묘한 기운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니, 아아, 이는 도합 110년 경력에 빛나는 점술 1세대의 고적한 말년을 긍휼히 여기시는 도봉산 관상장군의 자애로운 보듬으심이런가….

하지만 그건 그거고, 답사는 답사다. 왕복 택시비와 복채를 합친 드높은 비용과 거의 하루에 가까운 시간 투자에도 운명철학적 성과는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얻지 못한 금번 답사결과를 순수한 피점술자가 똑같이 경험했더라면 그 타격은 쉬이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리. 하여 필자는 답사 중에도 심심찮게 걸려오던 예약전화의 주인공들에게 심심한 동병상련적 위로를 전한다. 당 답사 최고의 관심사였던 ‘외모로 때려잡기 학설은 타당성 크게 없음’으로 결론 낸다.

물론 이러한 결론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의 위험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선생은 지금껏 업계뿐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관상업계 1인자로서 상당한 명망을 누린 대표주자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그 답사는 단 한차례로도 나름의 무게를 가진다 할 것이다.

그래도 단 한 방으로 그런 결론을 내는 건 너무 성급하고도 미흡한 처사라고? 좋다. 그렇다면 다음 회엔 ×선생과는 정반대 스타일을 추구하는 ‘외모점’ 장르를 한차례 더 답사, 발본색원적 고찰을 시행토록 하겠다.

한동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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