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5.08 18:03
수정 : 2013.05.08 18:03
[매거진 esc] 나의 점집문화답사기
지난 1년여간 당 칼럼은 장르와 세대와 기법을 초월해 각종 점집을 답사해왔다. 이제 마지막 회를 맞이하여 연재 기간 동안 독자 여러분으로부터 받은 메시지에 답 드리는 것으로 맺음말에 갈음토록 하겠다.
우선, 응원 말씀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 대단히 감사드린다. 여러분이라는 귀인들의 염력 지원이 있었기에 당 칼럼은 예약 거부와 고액 복채, 폭탄 점집의 삼재를 뚫고 지금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
또한 ‘그 점집 어딘지 알려달라’고 청하신 많은 분들, 이미 답 드린 바와 같이 아무 정보도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 하지만 원래 그런 거 알려지는 순간 영빨 신빨 순식간에 고갈된다는 것이 그 업계 정설이니 오히려 모르시는 것이 득이다.
‘어떤 장르가 최강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선 이미 칼럼을 통해 말씀드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필자에게만 그랬다는 것이지, 그 뒤 그 점집에서 헛다리 짚는 얘기만 듣고 왔다는 소비자 고발형 후기도 수차례 입수되었으니 반드시 염두에 두시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실로 안 적절하기 짝이 없게도 필자에게 운명 상담을 해 오신 여러분들, 필자는 점쟁이가 아니다(당연하잖아). 하지만 그 고민이나 선택 중 점집에 그 결정을 맡길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더라는 말씀만큼은 꼭 드리고 싶다. 결국 내 문제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물론 점집에는 미래예측 말고도 다른 기능성이 있다. ‘정신적 대일밴드’의 기능 말이다. 게다가 점집에서의 주인공은 오로지 ‘나’뿐이다. 이 세상에 ‘나’만큼 흥미로운 캐릭터와 내 인생만큼 몰입 잘되는 스토리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라도 점집에 대해 미신에 혹세무민일 뿐이라는 비난은 그다지 공정하지 못하다 생각된다. 사실 미신보다는 종교의 간판 아래 행해지는 해악이 오히려 더 많고, 또 굳이 점집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혹세무민이 각종 매체 통해 난무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 아닌가.
하지만 문제는 적절한 함량의 기능성을 보여주는 점집이 극소수라는 점이다. 필자가 찾은 답사처들은 모두 마니아들의 자문을 통해 엄선된 점집들이었으나, 그 안에도 역시 폭탄성 점집은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위험인자까지 고려한다면, 현재 점집 복채는 과도하게 높게 책정되어 있다. 뭐, 점술업이 워낙에 ‘댁의 위기가 나의 호기’ 업종인지라 이런 말 해봐야 별 소용 없긴 하겠다만, 가뜩이나 다들 먹고살기 힘든 마당에 말이야.
아참, 점집에 대해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이제까지의 답사처들은 물론이고 미처 다루지 못한 손금점집, 타로점집, 심지어 택시점집까지, 어떤 곳에서도 당 칼럼 연재 종결을 예언하지 못했다. 그렇다. 점집이란 그런 것이고 미래란 그런 것이다.
하여 필자가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것은 용한 점집 전화번호가 아닌, 뜻밖의 작은 행운에 대한 기원이다. 예기치 못한 모퉁이를 돌았을 때 마주치는 작은 행운들, 아무도 점치지 못하는 미래가 숨겨둔 작은 놀라움들이야말로 삶의 가장 멋진 선물이다. <끝>
한동원 소설가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