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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2.02 14:37 수정 : 2012.02.15 11:16

‘은하 해방 전선’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의 윤성호 영화 감독

[매거진 esc] 심정희의 반하다

‘은하 해방 전선’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의 윤성호 영화 감독


여자들의 전화번호를 받기 위해 영화를 만든다는 남자. 고백건대 나는 이미 오래전 윤성호에게 반했다. 2010년 그의 영화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를 보기 시작한 지 정확히 5분35초 만의 일이었다. 영화 속에서 스태프 중 한명이 “감독님은 (도대체) 영화를 왜 찍어요?”라고 따져 물었을 때, 그가 하는 말(“영화 만들고 좀 알려지니까 여자들이 전화번호를 막 줘. 그러다 보니 섹스도 더 자주 할 수 있고…”)을 들으면서 나는 그를 내 마음속 ‘친구 삼고 싶은 사람’ 폴더에 저장했다.

페르소나를 통해 자신의 찌질함을 드러내는 감독도 만나기 힘든 ‘고매한 작가들의 시대’에 자기 입으로 찌질하기 그지없는, 게다가 실화일 리 틀림없는 고백을 능청스레 털어놓는 감독이라니! 그 뒤 1년여 동안 그를 예의주시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여자와 연애, 성에 관해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솔직한 사람이지만 그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지적이며 어눌하고 생각 없어 보이는 영화 속 모습과는 달리 여러 사회문제를 예리하고 정확한 시선으로 분석할 줄 알며, 때로는 차분하게 때론 강경하게 자신의 의견을 펼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한마디로 그는 완벽한 남자였다. 옷을 아무 생각 없이 입는다는 것만 빼고.

“감독이라고 하면 여자들이
좋아하니까 영화 찍는다”
능청스런 고백에 반한 윤성호 감독

그럼 여기서 잠깐,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의 제작발표회장으로 가보자. 2월4일 첫방송되는 그의 첫 티브이 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의 제작발표회장. 티브이 시리즈로는 자신의 첫 연출작을 세상에 소개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그는 검은색 재킷에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줄무늬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빨간 운동화를 신고 있다. 두툼하게 발등을 감싼 운동화가 그의 청바지 밑단을 우글우글하게 만들고 그 운동화가 전체적인 옷차림에 비해 좀 튀긴 해도 관대한 눈으로 보자면 그다지 흠잡을 데 없는 차림이었다. 그가 배우도 아닌 감독이라는 점, 감독도 편당 억 소리가 날 만큼의 연출료를 받는 감독이 아니라 저예산을 쪼개고 또 쪼개 가며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런데 우리 너무 쉽게 관대해지지 말자. 그가 누군가. 그냥 영화감독이 아닌 윤성호다. 내가 본 그의 첫 영화 첫 시퀀스에서 “감독이라고 하면 여자들이 좋아하니까 영화 찍는다!”고 말해 나를 반하게 한 사람, 그 순간 나의 ‘워너비 친구 목록’으로 성큼 걸어 들어온 사람. 그러므로 내겐 그를 만나 “옷을 조금만 더 신경 써서 입으면 훨씬 더 많은 여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려줄 의무가 있다, 이 말씀.

“감독님, 옷이나 스타일에 대해 고민해본 적 없죠? 그러지 말고 스타일이라는 것에 좀더 의미를 둬보세요. 그럼 여자들 사랑받기도 한결 쉬워질걸요? 진짜 고수가 되려면 자기가 하는 일, 눈빛이나 태도뿐 아니라 옷으로도 여자들에게 말을 건넬 줄 알아야 돼요. 같은 티셔츠라도 브이넥이냐 라운드넥이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고, 똑같은 셔츠라도 소매를 걷느냐 그러지 않느냐에 따라 하는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여자들은 그 다른 뉘앙스를 남자들보다 훨씬 더 잘 알아듣거든요. 그나저나, 까까머리 중학생들이나 좋아할 법한 ‘운동화 중의 운동화’ 말고 다른 신발은 없나요?” 그에게 하고픈 잔소리를 일발 장전하고 그를 만났다.


윤성호의 변명 아닌 변명. “처음 영화 시작했을 때부터 2~3년 전까지 정말 많이 걸었어요. 돈은 없고 시간은 남아도는 시절이었으니까 차비를 아끼려는 심산도 있었지만 움직이는 걸 워낙 좋아했거든요. 근데 그때 너무 많이 걸었는지 몇 년 전부터 무릎이 아파서 쿠션 있는 운동화만 신게 됐어요. 그렇지 않아도 이젠 무릎도 괜찮아졌고 여자친구도 운동화 대신 로퍼를 신으라고 자꾸 권해서 바꿔 신어 볼까 생각하던 참이었어요.

조금씩 늘어나는 스태프들
책임감 커진 만큼
이전에 없던 욕심 생겨나

사실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좀 늦된 구석이 있어요. 2003년이었나, <씨네21>이랑 처음으로 인터뷰할 때 어쩐지 좋은 옷을 입어야 될 것 같아서 집에 있던 ‘추리닝’ 중에 젤 좋은 거 입고 가서 사진 찍었다니까요. 대학교 졸업반 때였는데 정신연령도 옷에 대한 의식 수준도 중학생 수준에 멈춰 있었던 거죠. 운동만 하던 시절이라 ‘추리닝’밖에 없기도 했고….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에서 스물네살 때 처음 여자랑 자봤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늦게 이성에 눈떴어요.

보통사람들은 이성에 대해 시들해하는 나이인 30대 중반이 되어서도 이렇게 머릿속이 여자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한 걸 보면 늦바람이 무섭다는 말이 사실인가 봐요(웃음). 아, 근데 제작발표회 때 제 옷차림이 그렇게 이상했나요? 나름대로 신경 쓴 건데….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입고 다녔지만 나이를 어느 정도 먹으니까 너무 아무렇게나 하고 다니는 것도 보기 안 좋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옷을 좀 잘 입어야겠다, 하고….”

스타일로 승부할 윤성호의 2차전, 개봉박두 옷입기에 대한 고민은 인생에 대한 고민과 비슷하게 찾아온다는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는 요즘 옷뿐 아니라 영화 만들기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아졌다고 했다. ‘제한된 조건에서 영화 만들기’를 숙명처럼 받아들인 채 이야기하는 방식이나 상황을 변주함으로써 색다른 영화를 선보여왔지만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할 때가 되었음을 느낀다고 했다. 조금씩 늘어난 자신의 식구들-자신과 일하는 걸 가장 즐거워하는 배우들과 스태프들-로 인해 책임감이 커진 만큼 미장센이라든가 이야기의 완결성처럼 지금껏 그다지 욕심 부리지 않았던 것들에 욕심이 생긴다고도 했다.

그리하여 나는 준비해 간 잔소리를 처음 상태 그대로 장전한 채 돌아왔다. 누군가 강요하지 않았지만 영화 만들기에 있어 그가 새로운 욕심을 내기 시작한 것처럼, 내 잔소리 없이도 그는 이미 옷입기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으며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인 만큼 혼자 힘으로 뚝딱 답을 찾아낼 테니까. 우리 역할은 그가 답을 찾을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는 일, 그러다 그가 답을 찾으면 “니가 힘들 때 옆에서 지켜준 사람 누구였지?” 하며 생색내는 일. 단, 그는 늦되는 사람이니 조바심 내기 없기. 너무 늦어지면 어쩌나 걱정하지도 말기. 그는 늦될지언정 한번 불붙으면 걷잡을 수 없이 활활 타오르는 사람이니까(여자에 대한 관심이 그러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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