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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민준. 정지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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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심정희의 반하다
멋진 스타일, 우직한 경상도 사나이로 포장된 배우 김민준의 진심 혹은 속내 김민준은 당신이 아는 그 김민준이 아니다. 김민준에 관한 기사를 접할 때마다 신기했다. 왜 세상의 모든 기사들은 그를 두고 ‘남자다운 배우’ ‘멋진 몸과 스타일에 경상도 사나이의 뚝심을 탑재한 배우’라는 이야기만 할까? 알고 보면 김민준, 꽤 ‘쪼잔’한데(트위터에서 발끈하는 것 좀 보라고!)… 가만 보면 귀여운 구석도 있고… 그런데 다른 사람들 눈엔 그게 안 보이나? 어쩌면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김민준=성실하고 뚝심 있는 배우’의 최면에 걸려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24일 직접 만나러 갔다. ‘최근 한남동에 오픈한 사케바가 궁금하다’는 핑계를 대고, 그가 다른 인터뷰에서와는 달리 쪼잔하거나 귀엽거나, 가끔 엉뚱하기도 한 본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며. “사람들이 저를 두고성실하고 매너 좋다는 얘기만 하니까
고마우면서도 불만스러워요” 우리가 처음 만난 게 11년 전인데 그때와 비교하면 뭐가 가장 달라졌나요? “주름이 늘었죠(웃음)… 그거 말고는 음… 죄책감이 들어요. 모델 활동을 할 때는 철저하게 청교도적인 삶을 살았거든요. 스스로의 단점을 아니까 최고가 되려면 0.01밀리까지도 나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설탕도 나트륨도 거의 안 먹었어요. 패션쇼라고 해봤자 수십 초, 화보 촬영은 그야말로 찰나인데 일을 하지 않는 동안도 자신을 가다듬고 만들어가는 데만 온 힘을 집중했어요. 일종의 강박증이었죠.” 그래도 멋있긴 진짜 멋졌어요. 카메라 앞에 서면 각이 착착 나왔잖아요. “콤플렉스 덩어리였어요. (송)종호를 비롯해 또래의 다른 친구들보다 보디 프로포션도 좋지 않고, 얼굴도 패션계에서 선호하는 얼굴이 아니다 보니… 매 순간 ‘어떻게 하면 최고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나중에는 ‘옷이라도 내가 더 잘 이해하자’ 이러면서 없는 돈 투자해 정장 사서 입고 다니고 그랬어요. 정장 입을 자리도 아닌데 몸에 익게 만든다고(웃음).” 그런데 지금은 나태하고 게을러졌나요? “경험이 쌓이다 보니 꼼수를 쓰게 된 거 같아요. 예를 들어 몇 달 동안 운동하는 대신 촬영 전날 수분 조절을 해서 몸이 좋아 보이게 만든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예전에는 대본 연습하느라 밤을 꼴딱 새우고 촬영장에 갔는데 요즘은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 그러고 그냥 자버리는 거죠. 그러다 현장에서 당혹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당황 안 한 척 연기를 해요(웃음). 근데 생각해보면 예전의 강박증적인 모습과 지금의 이런 모습을 절충해야 하는 거 같아요. 저는 제 캐릭터가 좀 변화무쌍했으면 좋겠어요. 가끔 보기 싫을 정도로 악랄한 느낌도 들고, 어떨 땐 띨띨해 보이기도 하고… 근데 사람들이 저를 두고 성실하고, 모범적이고, 매너 좋다는 식의 얘기만 하니까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불만스러워요. 그래서 그런 말 들을 때마다 뼈 있는 농담을 던지곤 해요. “아, 연기만 잘하면 딱인데. 씨이~!” 하면서(웃음).” ‘김민준은 성실하고, 근면하고, 남자답다’는 최면에 빠져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그러게요. 사람들은 그냥 하는 말인데도 ‘남자답다’는 평가가 순간순간 제 발목을 잡을 때가 있어요.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저도 모르게 남자다운 쪽이 뭔지를 생각하게 되거든요. 사실 저 되게 ‘쪼잔’한데…. 저를 10년 넘게 보셔서 아시겠지만(웃음)… 가령, 트위터에서 사람들과 논쟁이 생길 때도 대인배답게 “허허,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러면 쉽게 끝날 걸 꼭 잘잘못을 가리려 들어요 제가.” <다모>부터 시작된 이미지가 아직까지 이어지는 거죠. “순간 뜨끔할 때가, 누군가 ‘<다모> 때 눈빛 참 좋았는데’라고 할 때…(웃음) 그때는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할지 몰라서 카메라가 무섭고, 하지원이 무섭고, 이서진이 무서워서 콘택트렌즈를 빼고 갔어요. 사실 저는 지금도 카메라가 무서워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식구들 같은 스태프들이 모여서 살갑게 이야기해요. 그러다 슛을 가면 스튜디오가 갑자기 적막해지면서 나를 뺀 모든 사람들이 카메라 뒤로 가버려요. 다 모니터 뒤로 가버렸는데 카메라 앞에 혼자 서 있으면… 무서워요(웃음). (아직도 무서워요?) 당연히 무섭죠. ‘아, 이거 큰일났다’ 하는 심정… 그 두려움은 죽을 때까지 극복 못할 것 같아요. 매 순간 “에라 모르겠다” 이러면서 평생 하게 되겠죠.” “눈빛이라는 건 거짓말 못하니까
그러려면 내 삶을 살아야겠다
나만의 삶을 살아야 내 연기가
나오겠구나” 처음 연기 시작했을 때는 사투리라든가 발음을 교정하려고 부담을 많이 갖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편해 보여요. “사실 뭐 한국 최고의 배우도 아직까지 사투리를 쓰시니까(웃음).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사투리를 지적하는 건 그게 사투리라서가 아니라 편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잖아요? 자연스럽고 감정전달이 잘되고, 재미있다면 굳이 지적하지 않을 테니 사투리 그 자체에 대해선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발음에 대해선 고민 많이 해요. 공부도 많이 하고….” 모델로서 최고의 위치에 있을 때 처음 봐서 그런지 배우로서는 굉장히 천천히 간다는 느낌을 받아요. 타의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스스로 느리게 가길 택한 느낌이랄까…. “저는 브래드 핏이 부럽지 않아요. 그보단 베니치오 델 토로가 미치도록 부러워요. 어려서부터 베니치오 델 토로나 아사노 다다노부처럼 되고 싶었어요. 두 사람 다 ‘펀치’가 대단하고 자기 세계가 확실하잖아요. 그건 타고난다기보다는 오래도록 내공을 쌓아야만 되는 거예요. 언젠가 이재규 감독님이 저한테 그러시더라고요. ‘선감정 후대사’라고. ‘감정을 먼저 보여주고 대사는 도와주는 거다. 감정을 먼저 보여주려면 남자는 눈빛밖에 없다’고. 그때 깨달았어요. 아, 눈빛으로 대사를 해야 되는구나…. 눈빛이라는 건 거짓말을 못하니까 그러려면 내가 내 삶을 살아야겠다. 다른 사람과 다른, 나만의 삶을 살아야 내 연기가 나오겠구나, 라고.” ‘남자는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여야 멋있어진다’는 말은 극히 일부분만 ‘참’이고 대부분은 거짓이다. 모든 남자가 나이 먹는다고 멋있어지는 게 아니라 이런 남자만이 세월과 함께 멋있어지는데 제대로 나이 먹는 남자란 극소수에 불과하니까. 적어도 내 보기에 김민준은 설탕도 먹지 않던 완벽 모델 시절보다 지금이 훨씬 더 멋진 것 같다. 그는 이제 기능이나 기술이 아닌 세상 모든 일의 바탕 재료인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 같으니까. 그래서 인터뷰 마지막은 지금껏 그에게 건넨 적 없는 최고의 찬사로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멋진 마무리’가 잘 안됐다. 아, 삼십대 중반 남자의 능청스러움을 이길 게 무엇이랴. “좋아 보여요. 나이를 제대로 먹어가고 있는 느낌이랄까.” “편안해진 게 아니라 늙어서 그래요. 눈꺼풀이 처졌잖아요! 아, 나 요즘 왜 이렇게 쌍꺼풀이 생기나 몰라. 거울 보면 징그러워 죽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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